다산북스/ 클레어 키건 소설 / 홍한별 옮김
<필사>
다시 길로 나와 펄롱은 새로 생긴 걱정은 밀어놓고 수녀원에서 본 아이를 생각했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 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어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 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p99
< 단상 >
지금의 나는 괜찮다. 모든 것이 편안하고 어쩜 그보다는 약간 더 행복한지도 모른다. 마흔을 바라보도록 뭔가 분명한 것도 없고 발전도 의미도 찾기 어려운 날들에 대한 것들을 가끔 고민한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이고 딸들에게 제각각 선물을 할 수 있으며 살아갈 수 있음은 참으로 다행이고 일상의 평온함이 가능하다. 부유하거나 일상의 행복을 만끽하며 자라지 않았지만, 이제는 가장이 되어 아내도 있고 딸들은 세인트 마거릿 여학교에 보낼 수도 있다.
이렇게 살아가는 석탄 장수이자 다섯 딸의 아버지 빌 펄롱은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여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갇혀 있었다. 수녀원이 예사롭지 않다. 자꾸 신경이 쓰인다. 아내와 주위 사람들은 잊으라고 한다. 모르는 척하란다. 자신의 일상이 건드려질 수 있다는 만류에 생각을 내려놓기도 했다. 하지만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소녀 사라를 수녀원에서 구출해 나왔다. 사라는 차가운 석탄 창고에 갇혀 있었다. 뒷일은 모른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의 두려움이 솟구쳤지만, 이 아이가 이미 겪은 또는 앞으로도 겪어야 할 고통에 비하면 자신의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녀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을 펄롱이 해냈다. 그런데 나는 눈앞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펄롱과 그의 가족들을 걱정하게 된다. 수녀원의 실체를 어렴풋이 알면서도, 또는 모르는 척 침묵하는 사람들에겐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펄롱 가족이 겪을 고통에 대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펄롱이 사람들에게 ‘사소한’ 친절을 그동안 보여주었지 않았나. 이웃들 덕분에 잘 견딜 수 있었으리라. 그랬기를 바란다.
오늘날 우리가 정의를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은, 펄롱처럼 과거 누군가가 보여준 ‘사소한 용기’ 덕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에는 용기없는 편이 더 많다. 나부터도 잘못된 것을 알지만 나의 무력함만을 탓하며 그저 바라보거나, 갈등의 자리를 피해버리는 정도의 비겁한 용기로 산다. 나부터, 펄롱의 용기가 아직 더 필요하다.
클레어 키건의 문체는 아름답다. 몹시 추운 날씨와 억눌린 사회 분위기 속에 묻힐 수 있는 진실들이, 크리스마스의 화려함 이면에서 무심한 다정으로 조용히 빛난다. 그 작은 빛이 빌 펄롱의 조용하지만 우렁찬 용기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