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상 / 무라카미 하루미 에세이
<필사>
12월 5일, 자세한 사정을 얘기하자면 길어지지만, 내 차가 도난을 당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집 앞에 세워두었던 나의 폭스바겐 코라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그곳에 흰색의 혼다 어코드가 세워져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둑맞았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에 자동차가 혼자서 제멋대로 어딘가로 가버릴 이유가 없으니까.
정말 난처하게 됐네, 하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보다 2주일 전에 하버드 광장에서 내 소중한 자전거를 도둑맞았던 참이다. 가로수의 몸통에 체인을 감고 세워놓았는데 쇼핑을 하고 15분 뒤에 돌아와보니 체인만 남아있고 자전거는 깨끗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전에는 대학의 체육관 로커가 훼손당하고 스쿼시용 운동화를 도둑맞았으니 정말 참기 힘들 정도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p144
<단상>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도 운수 나쁜 날, 또는 빡치는(^^) 일들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차가 도난당했다든지, 그 차를 찾았지만 바퀴 네개가 모두 사라져버린 채, 얼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 등. ‘대단한’사람, 하루키같은 ‘거장’에게도 안 좋은 일은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은 묘한 위안을 준다. 내 심보가 못됐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의 고통이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같은 것에 가까우니까.
항상 남의 떡이 커 보이던 사람이, 결국 남이 가진 그 떡을 가졌다. 그런데 쥐고 보니 작다고 투정하는 말을 오늘 들었다. 단단한 약속 끝에 건넨 호의를 불평으로 다시 내려놓으니 실망스러웠다.
‘타인의 삶은 늘 매끈해 보이겠지, 타인의 것은 늘 좋아보이겠지’ 그러나 그건 대개 편집된 모습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불운의 유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불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맞딱뜨린 불운에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루틴 또는 생각에 따라 우리는 다른 삶을 살 것이다. 같은 상황이지만 어떤 에너지를 생성하느냐에 따라 기분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가린다.
삶의 디폴트값은 엉망진창이고, 원래 불안전한 것이라고 설정해 두면 어떨까? 그렇게 보면 나쁜 일이란 늘 기본 옵션이고, 별일 없는 운수 좋은 날은 우리의 엄청난 노력이 기울여진 특별한 날이다. 그러면 우리는 행운아다. 그래도 이 특별한 날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꽤 자주 행운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