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2북스 / 글 태수
<필사>
‘행복하다’라는 말을 해본 것이 언제일까. 어릴 때는 했었나. 안 했던 것 같은데. 행복이란 말은 어딘가 쉬워지면 안 될 것 같아 아끼고 또 아꼈다. 즐거움만으로는 부족했다. 짜릿함도 아쉽고 뿌듯함 역시 딱 들어맞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머리에 폭죽이 터지는 순간이 아닌 이상 행복이라는 단어는 감히 쓸 수 없었다. 참아온 세월이 얼만데. 겨우 이 정도가 행복이라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인생은 무미건조했다. 솔직히 꽤 인상적인 순간들도 많았던 것 같은데, 제대로 명명되지 않는 순간들은 조금씩 퇴색되어 그저 그런 기억들로 퉁쳐졌다. 부끄러워하다 보니 무뚝뚝해진 그 옛날의 아버지들처럼 나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메말라가고 있었다.
어제저녁,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문득 하늘을 쳐다봤다. 분홍빛 하는. 여름 석양이 저리도 예뻤었나. 나도 모르게 기분이 보송해졌다. 값싸게 구매한 삼겹살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계산한 타이밍도 모두 완벽했다. 해서 이 모든 순간들을 또 습관처럼 잊지 않기 위해 용기 내어 이름표를 붙여본다. 조용하게.
“아, 행복하다.”
“뭐라고?!” 산통을 깨듯 아내가 묻는다. 눈치도 없지. 나는 벌컥 답한다.
“아. 행복하다고!”
푸하하. 아내가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하늘은 여전히 핑크빛이고, 나는 이제 안다.
행복은 선언이다.
<단상>
그렇다. ‘행복하세요’는 의례적인 인사인 양 많이 빌어주었지만, 정작 내 입으로 ‘나 행복합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머리에 폭죽 터지는 그런 것들만 행복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감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행복이었다.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잔잔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는 것 같다.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해야겠다는 결심, 갑자기 직접적으로 말하기가 쑥스러워 엄한 우리 집 강아지 복만이를 내세워 ‘복만아, 우리 행복하네~~’라고 말했다. 나에게는 얼른 내어 사용하지 않았던 행복을, 더 자주 ‘행복’이라고 이름 붙여줘야겠다.
이미 봉긋해진 목련나무를 바라보며 ‘행복하다!’
볕 쬐라 내어놓은 화분에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니 ‘행복하다!’
너무너무 좋은 좋은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했다며, 그걸 보내와 주는 딸이 있으니 ‘행복하다!’
다리가 자유롭지 못해 출입이 어렵지만 내 전화를 받아주는 엄마가 있느니 ‘행복하다!’
먹이 주는 것을 깜빡 잊고 지내다가 들여다봐도, 살랑살랑 춤추며 다가오는 물고기가 여전히 살아있으니 ‘행복하다!’
‘행복하다’와 ‘감사하다’는 서로 쌍둥이 같다. 닮은 꼴이다. 감사를 머리로 발견했다면 행복은 가슴으로 느끼는 것?! ‘감사합니다’라는 말 대신에 이제는 행복하다는 말도 자주 해야겠다. 먼저 나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