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 이미애 옮김
<필사>
우리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서로를 대면할 때 거울 속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우리의 눈에는 흐리멍덩하고 유리처럼 뿌연 빛이 감돈다. 미래의 소설가들은 거울에 비친 상을 더욱 중요하게 인식할 것이다. 물론 그 상은 하나만이 아니라 거의 무한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그들이 탐구할 오지이고, 그들이 뒤쫒을 환영이다. 그들은 현실 묘사를 그들의 작품에서 점점 더 빼 버릴 테고, 현실을 아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길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그랬고 어쩌면 셰익스피어가 그랬듯이, 하지만 이런 일반화는 매우 무가치한 일이다. 일반화라는 단어가 풍기는 군사적 어감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단어는 주요 신문 기사라든지 각료들을 연상시키고, 실로 우리가 어렸을 때 사물 그 자체라고, 표준적이고 진짜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연상시킨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무서운 저주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p12
일반화라는 말은 왠지 몰라도 런던의 일요일, 일요일 오후의 산책, 일요일의 오찬을 연상시키고, 또한 죽은 자들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나 의복, 또 누구도 좋아하지 않지만 모두 한방에 모여 어느 시간까지 앉아 있어야 하는 규범 같은 관습을 떠올린다. 모든 것에 표준이 있었다. 그 특정한 시기에 식탁보의 표준은 왕궁의 복도에 깔린 카펫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작고 노란 부분들이 두드러진 태피스트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종류의 식탁보는 진짜 식탁보가 아니었다. 이런 진짜들, 일요일의 산책, 시골 대저택, 식탁보들이 전부 진짜가 아니라 실은 절반쯤 환영이었고,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저주라는 것이 실은 규칙을 벗어난 자유로움일 뿐임을 알게 된 것은 얼마나 큰 충격이었던가. 하지만 또 얼마나 경이로웠던가. 그런 것들, 그 진짜 표준적인 것들을 이제 무엇이 대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남자들은 어쩌면 여자가 되어야 할 게다. 남성적 관점, 즉 우리의 생활을 통제하고, 표준을 정하고, 훠터커의 공직 서열표를 결정한 남성적 관점은 전쟁 이후 많은 남자와 여자들에게 절반은 환영이 되었을 테고, 바라건대 마호가니 찬장과 랜드시어의 그림들, 신과 악마, 지옥과 기타 등의 환영들이 들어갈 쓰레기통으로 머지않아 조롱을 받으며 들어갈 것이며, 우리를 규칙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에 취하게 만들 것이다. 자유가 정말 존재한다면....p13
<단상>
얼른 읽히지 않아 좀 당혹스러웠다. 첫 단락부터 재독再讀, 음독音讀을 했다. 안되겠다 싶어 검색을 했더니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쓰여진 소설이란다.
‘아, 그래? 그럼 그냥 흘러가보자. 굳이 무엇을 이해하거나 해석하려하지 않고 그냥...’
‘버스와 지하철에서 서로를 대면할 때 우리는 유리 너머로 비치는 그들을 들여다본다.’ ‘우리의 눈에 흐리멍덩하고 뿌연 빛이 감돈다’ 는 문장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것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우리를 그리고 규범 같은 관습, 표준에 도전하고자 하는, 그 시대의 억눌린 여성으로서 비판을 넘어, 해방감을 느끼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도 읽혔다. 그러고 나니 그의 글이 좀 읽힌다. 자유롭게 큰 강을 따라 흘러가면서 보여지는 것들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과 사유. 인간의 생각은 선형적이지 않고 수만 가지 방향으로 튕겨져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역시 인간은 무한한 창조의 힘을 가졌다.
긴 천변을 걷다 마주친 하수구의 어둠 속에서 나도 가끔 환상에 빠진다. 바삐 움직이는 들쥐들과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는 한 사람. 그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은 억누를 수 없는 서사가 되어버린다. 쉼 없이 팽창하는 상상 속에 잠깐씩 머물다가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오늘 하루는 울프 덕분에, 나의 흐름을 제어하지 않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