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태수
<필사>
S가 진심으로 자신을 믿게 된 순간은 의외로 주변의 응원을 마음껏 받은 순간이 아니라, 처음으로 학교 쪽지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결국 받은 응원의 양이 아닌 해낸 성공들의 합이었다. 그게 아무리 작을지라도.(p214)
(중략) 사람들은 또 안 된다고 늦었다고 말했지만, S는 귀를 막고 자신의 과거 중 하나를 꺼내온다. 가족들조차 까맣게 잊은 과거로 돌아가 작은 성공들을 몰래 찾아온다. 그리고 다짐한다.
“할 수 있어.
그때처럼.”
나는 이제 내 사람들을 그렇게 위로해주고 싶다.
“살아”라는 무책임한 한마디가 아니라.
살아볼 만한 하루를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 p226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아무 일도 없이 하루가 지났다.
아침 지하철은 늦지 않고 역에 도착했고 회사 일은 별다른 이슈 없이 여느 때처럼 순탄하게 지나갔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무난한 날씨에 야근 없이 집에 도착한 날. 그런 날이면 문득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된다.
“아... 행복하구만.”
조용한 게 좋다. 심심한 건 편안하다. 나른한 건 안정적이다. 짜릿함은 여전히 즐겁지만, 뭐랄까. 조금 피곤하다. 예상치 못한 일은 이제 기쁜 이벤트가 아닌 새로운 숙제다. 어제와 같은 하루가 나쁘지 않다. 즐거워할 일은 없지만 실망할 일도 없는 이 일상에 감사하게 된다. 나도 이제 어른이 다 됐나 보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짜릿함보다는 안도감에, 특별함보단 일상적임에 더 가깝다. 아무 탈 없이 일할 수 있어서, 아픈 곳 없이 가족과 통화할 수 있어서, 희망은 없어도 절망도 없이 내일을 또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할 수 있는 게 지금의 내 삶이다. 누군가는 그토록 조용한 인생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냐고 묻겠지만, 물론.
조용함은 웃을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울 일이 없는 상태니까. 기쁜 일이 없는 하루가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하루니까.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이 조용한 하루들은
우리 인생의 공백이 아닌,
여백이니까.(p227~229)
사람의 진짜 우아함은 무너졌을 때 드러난다고 한다.
윗사람에게 깨진 날 후배를 대하는 태도나 안 좋은 일이 넘친 날 웃으며 인사할 줄 아는 여유에서 우린 그 사람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우아함이란 다시 말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두 조각난 날에도 평소처럼 인사하고 웃고 공들여 사과할 수 있는 태도. (p247)
<단상>
불쑥 찾아온 상담이 있었다. 남의 눈에 띌까 싶은 평범한 외모에 말수도 적었다. 늘 다른 이의 곁에만 있던 사람이다. 문을 열고 나서는 내게 불쑥 다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건 의외였다. 그녀는 특정 문제에 대한 고민을 20년도 넘게 반복하고 있었다. 그 고민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요지는 고민의 내용 이면에 자리 잡은 강박적 기제였다. 다른 증세를 찾아보았다. 처음엔 전혀 없다고 부인했지만, 쓰레기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버려질 물건 속에 중요한 무엇인가가 섞여 있을까, 확인을 재차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에 쓰레기가 쌓여있겠군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밤, 그러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를 볼 수 있었다. 매일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나, 누군가의 숙제라도 건네받아 뭐라도 해야만 되는 나 역시 강박이다. 생산적이지 못한 시간에 대한 나의 불안이나 그녀의 불안이나 형태는 좀 다르지만, 무언가에 붙들려 있기는 마찬가지다.
나 자신에게 말해본다.
“아무 일을 안 해도 된다. 심심하게 그냥 뒹굴어도 좋다. 나른한 나를 그냥 그대로 햇살에 내려놔도 괜찮다. 가끔씩 그래도 되는 나, 나를 믿자. 불안은 내가 만든 것”
나를 그렇게 다독이며, 오늘은 계획했던 운동도 가지 않았다. 내게는 이것도 용기다.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이 조용한 하루들은
우리 인생의 공백이 아닌, 여백’ 이듯,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게으른 하루들은 내 인생의 공백이 아닌 소중한 여백임을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