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기온 입구의 야스카 신사(八坂神社)에는 옛 복장을 하고 후덕하게 웃는 작은 브론즈 노인상이 서 있다. 오른손에는 가늘고 긴 낚싯대를 들고 있는데, 가까이서 보면 낚싯대는 브론즈가 아니라 진짜 대나무가 꽂혀 있다. 왼손에는 큼직한 생선을 옆구리에 끼고 있으며, 받침대에는 ‘에벳상(えべっさん)’이라 적혀 있다. 에비스(恵比寿)를 친근하게 부르는 애칭이다.
배가 나오고 몸집이 넉넉한 모습은 풍요와 재물, 장수를 상징한다. 둥근 볼과 웃는 얼굴은 편안하게 곁을 내줄 것 같은 인상이다. 에비스는 상업과 어업, 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장사나 사업 이야기가 나오면 자주 등장한다.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으로, 지역 생활 가까이에서 복을 비는 ‘동네 복신’처럼 여겨진다. 멀리서 받드는 신이라기보다, 곁에 두고 마음을 기울이는 신이다.
도쿄 에비스에도 에비스를 모신 작은 신사, 에비스 신사(恵比寿神社)가 있다. 관광객의 발걸음이 몰리는 길에서 한 발 비켜난 자리에서,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 한 해의 생업과 장사가 잘 풀리기를 빈다. 앞에 내세우기보다는 곁에 두는 신이다. 에비스가 왜 늘 웃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멀리 모셔진 신이 아니라, 언제든 곁에 둘 수 있는 신이기 때문이다. 1890년부터 생산된 에비스 맥주(ヱビスビール)의 얼굴이 된 것도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에비스 맥주 공장에 있었던 도쿄 에비스(Ebisu)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의기양양하게 옆구리에 끼고 있는 생선은 도미(鯛)다. (에비스는 보통 한 마리의 도미를 옆구리에 끼고 있지만, 도쿄 에비스 박물관 입구에 쌓인 수많은 에비스 맥주캔 가운데에는 예외처럼 두 마리의 도미를 끼고 있는 에비스가 숨어 있다.) 일본에서 도미의 발음 ‘타이’가 ‘메데타이(めでたい, 경사스럽다)’와 닮았다고 해서, 도미는 축하와 경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설날이나 결혼식, 축제 같은 날이면 도미 요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다. 붕어빵처럼 생선 모양 간식이 있는데, 이름이 타이야키(たい焼き)다. 물론 맛도 속도 도미와는 상관이 없다. 모양과 발음만 빌려왔는데, 일본식 언어유희는 이쯤 되면 꽤 솔직하다. 무늬만 도미지만, 이름 덕분에 이미 반쯤은 축하용 간식이 되었다.
일본에는 복을 부르는 칠복신(七福神)이 있다. 농업, 장수, 예술 등 각 분야에서 ‘잘 되는 일’을 맡은 신들의 집단으로, 에비스는 그중 유일한 일본 토착 신이다. 나머지 여섯 신은 인도와 중국, 힌두 문화권에서 건너온 다국적 멤버들이다. 큰 자루와 작은 복 망치를 들고 있는, 재복과 풍요를 상징하는 다이코쿠(大黒天)도 익숙한 얼굴이다. 에비스처럼 배도 나왔다. 불교와 도교, 민간 신앙이 뒤섞인 느슨한 신들의 세계는 생각보다 생활 밀착형이다. 신사와 사찰, 동네 어귀에서 사람을 맞는다. 에비스 맥주를 마실 때마다, 낚싯대를 들고 도미를 옆구리에 낀 배 나온 노인을 마주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설마 내 배가 점점 나오는 건, 에비스 맥주 때문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