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예와 생활 문화를 소개하는 문화 편집숍 ‘우나기노 네도코(ウナギの寝床·장어의 잠자리)’에서 종이 호랑이 인형을 만났다. 살짝 건드리면 고개를 끄덕이듯 머리를 앞뒤로 움직인다. 일본에서는 이런 인형을 ‘하리코 토라(張り子虎)’라 부른다. 전통 종이공예 ‘하리코(張り子)’ 기법으로 만든 것으로, 머리를 상대적으로 크게 하고 몸통을 비워 무게를 머리 쪽에 싣는다. 두 부분을 연결하면 작은 손길에도 고개가 움직인다. 일본어로는 ‘구비후리(首振り)’ 인형이라 한다.
이름만 들으면 맹수를 떠올리지만, 표정은 민화 속 호랑이처럼 느긋하다. 전통 장난감이라기엔 어설프고, 장식품이라기엔 앙증맞다. 그 어정쩡함이 오히려 눈길을 붙든다. 에도 시대 이후 일본 각지에서는 가볍고 값싼 종이공예 장난감이 널리 만들어졌고, 머리를 따로 달아 움직이게 한 ‘구비후리’ 형식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구조가 단순한 만큼 지역마다 표정과 비례에 조금씩 차이가 생겼다. 이름은 달라도, 머리는 흔들렸다.
머리를 따로 매단 인형으로는 후쿠시마 아이즈 지방의 향토 민예품 ‘아카베코(赤べこ)’가 있다. 붉은 소의 형태로, 역병을 막았다는 전설과 함께 액막이와 무병장수를 상징해왔다. 오늘날에는 장난감이자 장식품으로도 소비되지만, 지역적 의미가 분명한 인형이다. 이에 비해 하리코 토라는 특정 지역 전설에 깊이 묶이지 않고, 일본 전역에서 제작되어온 민속 장난감이다. 남자아이의 건강과 성장을 기원하는 의미로 단오와 연결되기도 했지만, 상징성보다는 형태와 움직임이 먼저 다가온다. 무게가 실린 머리가 앞뒤로 끄덕이듯 흔들리는 단순한 구조가 먼저 눈에 남는다.
이러한 감각은 현대 공공 공간에서도 이어진다. 도쿄 긴자의 메종 에르메스 외벽에 설치된 신구 스스무(新宮晋)의 『우주에 바침(宇宙に捧ぐ)』은 바람과 빛에 반응하는 거대한 모빌이다. 규모와 재료는 다르지만, 바람에 따라 각도가 달라지는 금속 판은 건물의 얼굴을 시시각각 바꾼다. 건물 외벽 위에서 느리게 움직이며 도시 풍경을 조금씩 다르게 보이게 한다.
고개가 흔들리는 인형은 일본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1970~80년대에 걸쳐, 머리가 흔들리던 인형들이 있었다. 흔히 ‘못난이 삼형제’라 불렸고, 세 개가 한 세트를 이루어 TV 위나 장식장, 책상 위에 놓이곤 했다. 파마머리에 검은 피부,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모습으로 사람의 움직임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신앙적 상징과는 무관한, 공간에 작은 웃음을 보태는 물건이었다. 하리코 토라와 못난이 인형은 기원과 문화적 맥락은 다르지만, 움직임이 주는 즐거움만큼은 닮아 있다. 작은 손길에도 반응하며 일상 속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공간의 리듬을 바꾼다.
이러한 감각은 생활 공간을 넘어 도시의 외벽으로까지 확장된다. 도쿄 긴자의 메종 에르메스 외벽에 설치된 신구 스스무(新宮晋)의 『우주에 바침(宇宙に捧ぐ)』은 바람을 동력으로 삼는 거대한 모빌이다. 규모와 재료는 다르지만, 바람에 따라 각도를 달리하는 금속 판은 건물 측면 외벽에 미묘한 편차를 남긴다. 바람에 이끌려 천천히 각을 바꾸며, 같은 표면이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의 차이가 더해진다. 움직임은 경과에 가깝고, 변화는 도시의 일상 속에 조용히 섞여 있다.
바람이 건물의 표정을 바꾸듯,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것도 있다. 도쿄 시오도메 닛폰텔레비전 본사 외벽에 설치된 니텔레 대시계(日テレ大時計)는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가 디자인한 거대한 기계 시계다. 톱니바퀴와 레버, 작은 인형들이 층층이 얽힌 구조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떠올리게 한다. 정해진 시각이 되면 외벽은 잠시 하나의 무대가 되어, 톱니바퀴가 돌고 인형들이 동작을 펼치며 극적인 퍼포먼스를 만든다. 평소 도시의 배경처럼 서 있던 건물이, 시계의 움직임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는 주인공이 된다. 바람에 맡겨진 모빌과 달리, 니텔레 대시계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정확히 움직인다. 계산된 동작은 장면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작고 소박한 흔들림에서 거대한 외벽 장치까지, 크기와 형식은 달라도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움직임 속에서 형태가 완성된다면, 이미 키네틱 아트(Kinetic Art)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