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에서는 달마 그림을 집 안에 걸어두면 좋은 기운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삼천리 방방곡곡 퍼져 있었다. 사람들은 둥글고 한껏 치켜뜬 눈을 가진 달마 얼굴에서 묘한 친근함을 발견했다. 수행자의 단단한 기상은 부드럽게 희석되고, 달마를 걸어두면 집안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지며, 돈복도 슬쩍 트이고, 정신을 집중시키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생활 부적처럼 여겨졌다.
일본의 달마 인형, 다루마(ダルマ)도 다르지 않다. 전통적으로 몸통 없이 둥근 얼굴만으로 표현된 다루마는, 소원을 빌며 한쪽 눈을 먼저 그려넣고, 소원이 이루어지면 나머지 눈을 완성하는 의식의 주인공이다. 이는 다이어리 첫 장에 새해 목표를 적는 것과 비슷하다. 빈 눈에 소망을 빌고, 시간이 흐른 뒤 나머지를 채우며 한 해의 결실이나 마음의 매듭을 짓는다. 종교적 엄숙함보다는, 기다림과 완성의 과정을 즐기는 데 의미를 둔다.
다루마는 장식에 그치지 않고 놀이로도 변주된다. 다루마 오토시(だるま落とし)라는 방식이다. 몇 개의 원통형 나무를 차곡차곡 쌓고, 제일 위에 다루마를 얹은 뒤, 나무망치로 아래쪽 나무를 옆으로 살짝 쳐 다루마를 떨어뜨리지 않고 하나씩 빼낸다. 다루마 놀이는 집중과 기술을 드러낸다. 둥글고 묵직하게 쌓인 형태 사이에서, 인형을 무사히 남기려면 손끝에 온 신경을 모아야 한다. 한쪽 눈만 그린 채 다루마에게 비는 소망이, 짧은 몰입의 순간과 겹쳐진다.
떠오르는 것은 중국의 화룡점정 전설이다. 용 그림에 마지막으로 찍힌 눈 한 점이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이야기. 마지막 한 획에 의미를 담으려는 마음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공통된 감각이다. 다루마의 ‘눈’을 그려넣고 다루마 오토시에서 옆으로 나무를 조심스레 치는 순간, 소망과 몰입, 손끝의 움직임이 하나로 엮인다.
달마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모두 얼굴에서 펼쳐진다. 한국에서 달마 그림을 걸어두고 좋은 기운을 바라는 마음도, 일본에서 눈 하나 비워둔 다루마 인형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마음도, 나무망치로 다루마를 쳐내는 놀이 속 집중과 기술도 마찬가지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에 등장하는 머리만 덩그러니 통통 튀는 카시라(かしら)처럼, 다루마의 얼굴만으로도 상상은 여기저기로 튄다. 믿거나 말거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썰이 많다. 자꾸 한쪽 눈만 그려두어 답답한 나머지 직접 확인하러 갔다는 소문도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