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이로 흐르는 교토 시라카와(白川)의 물줄기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난젠지(南禅寺)에 이르렀다. 경내에 들어서면 난젠지의 상징 같은 문, 2층 누각 형태의 산몬(三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넓은 기둥 아래를 지나자 이끼 정원이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눈에 띄게 크고 묵직한 석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낮에는 주변 풍경 속에 스며들지만, 해가 지면 길 위로 부드러운 빛을 드리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햇살과 나뭇잎 그림자가 석등 표면에 미묘한 변화를 만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둠 속에서 깨어날 등불을 떠올린다.
석등은 일본어로 이시도로(石灯籠)라 한다. 사찰과 신사가 겹겹이 들어선 도시에서는, 석등이 풍경의 일부처럼 스며 있다. 오래전부터 일본의 사찰과 신사, 정원 문화 속에서 축이 되는 자리와 사람의 발걸음이 모이고 흘러가는 길목에 놓여 왔다. 석등의 구조는 간결하다. 받침대와 기둥, 등불 상자, 지붕으로 이어지는 기본 구성 위에, 지붕은 절의 대공을 닮은 맞배지붕형,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보주형, 처마선만 남긴 판석형 등으로 나뉜다. 지붕 끝과 처마선, 꼭대기에는 연꽃이나 보주(寶珠) 같은 조각을 얹은 화려한 형식부터, 장식 없이 선과 비례로 완결된 형태, 돌을 다듬지 않고 결을 그대로 드러낸 소박한 형태까지 형식이 다양하다.
석등은 쓰임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사찰과 신사에서는 제의 공간을 밝히는 석재 의례등인 다이도로(臺燈籠)가 제단 주변이나 중심이 되는 길목에 놓여 제례의 분위기를 더한다. 정원에 놓이는 오키토로(置燈籠)는 낮고 절제된 형태로 연못 가장자리나 시선이 머무는 지점에 자리해, 돌의 묵직한 질감으로 균형을 잡는다.
석등이 돌로 중심을 세운다면, 목재로 만든 모쿠세이토로(木製燈籠)도 있다. 아라시야마의 도게츠교(渡月橋)가 가로지르는 가쓰라강(桂川) 변에는 목등 형태의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다. 해질 무렵이면 강을 따라 켜지는 불빛이 길 위에 잔잔한 흐름을 만든다. 다리 가까이에 자리한 순백의 큐브를 닮은 % ARABICA Kyoto Arashiyama 카페와 마주한 풍경에서는, 전통과 현대가 한 장면 안에 공존한다.
목등은 주로 길가나 동선 가까이에 자리한다. 낮에는 편백이나 삼나무의 따뜻한 결이 녹음과 어우러져 온기를 더하고, 밤이면 내부의 빛이 잔잔하게 번져 주변을 감싼다. 계절과 햇빛, 바람이 새겨 놓는 표정이 또렷하다. 기와지붕에 창틀을 얹어 작은 건축 모형을 옮겨 놓은 듯한 모습도 인상적이다. 신사 경내에서는 주색(朱色)으로 칠한 목재 등롱이 선명한 색으로 무게를 더한다. 석등만큼 오래 버티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표면이 바래고 결이 드러난다. 흔적은 또 다른 장식처럼 남는다.
돌이든 나무든, 빛으로 자리를 지킨다는 역할은 다르지 않다. 다시 석등을 바라보면, 등불 상자 양옆에 보름달과 초승달을 닮은 창을 두는 경우가 많다. 내부의 빛이 밖으로 번져 나올 때, 창의 형태는 달의 차오름과 이지러짐을 떠올리게 한다. 자연을 직접 그리기보다 자연의 흐름을 구조 안에 은유적으로 담아내려는 미감이 읽힌다.
석등은 주로 신사나 사찰 입구 좌우에 쌍으로 배치된다. 참배길을 따라 길게 이어지듯 놓이기도 한다.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발걸음에 리듬을 더한다. 정원을 장식하면서도 방향을 암시하는 등불이다. 낮에는 돌의 덩어리로 묵묵히 서 있다가, 밤이 오면 길 위에 숨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