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에 머무는 신

by 도간


인형은 없지만, 공간만 정교하게 축소해 놓은 미니어처가 있다. 인형의 집에서 사람만 비워 둔 듯한, 룸 박스라 불리는 형식이다. 미니어처를 만드는 일은 크기를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실제보다 작아진 공간 안에 생활의 자취를 더하고, 금방이라도 누군가 들어와 살 것 같은 모습까지 갖춘다. 사람은 없는데도, 생활이 막 시작될 것 같은 장면이 또렷하다. 작은 탁자와 의자, 창가의 커튼, 선반 속 그릇 같은 것들이 놓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손과 눈이 함께 닿는 크기로 세계를 가늠해 보고 싶어진다. 너무 크고 멀게 느껴지는 현실을 잠시 줄여 재어 보려는 마음이 그 안에 섞여 있다.


골목은 사람들의 생활이 가장 가까이 드러나는 곳이다. 교토의 골목에서 마주치는 오지조상(お地蔵さん)은 그런 마음이 공간을 다루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한적한 주택가를 걷다 보면, 담벼락 앞이나 집 모퉁이에 축소된 한 채의 가옥처럼 생긴 사당이 있다. 때로는 빌딩 옥상에서, 혹은 도심의 대형 쇼핑몰 옥상에서도 고개를 내민다. 높이 1m 남짓, 기단까지 합해도 사람 키를 넘지 않는다. 손으로 비례를 재어 볼 수 있을 만큼 아담한 집 한 채가 녹청이 스민 동판 지붕을 이고 있다. 나무 격자 사이로 불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향로에는 사그라진 향내가 엷게 남아 있다. 양옆에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꽃이 늘 꽂혀 있고, 사당 입구에는 노렌이 드리워져 안쪽 풍경을 은근히 가린다.



이런 작은 신앙 공간은 ‘호코라(祠)’ 혹은 ‘지조도우(地蔵堂)’라 불린다. 골목 주민들은 훨씬 더 친근하게 ‘오지조상(お地蔵さん)’이라 부른다. 웅장한 대사찰과 달리, 축소된 규모 안에 신앙과 삶의 감각이 함께 들어 있다. 사람들의 생활 곁에 놓인, 낮은 신성함이다.



모신 분은 한둘이 아니다. 지조보살은 세상을 떠난 아이를 돌보는 보살로 여겨진다. 그래서 작은 불상에는 붉은 턱받이가 둘리어 있는 경우가 많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베푸는 이로 불리며, 사람들은 그 앞에서 소원을 빈다. 미륵보살은 먼 훗날 나타나 아직 오지 않은 생을 구원할 이로 전해진다. 때로는 신사와 불교가 섞인 형식도 눈에 띈다. 사당 하나하나에는 주민이 빌고 남긴 마음이 스며 있다.



주민들은 계절이 바뀌는 순간이나 일상의 틈에서 사당을 스쳐 지나듯 곁에 둔다. 새해가 되면 향을 피우고, 아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붉은 턱받이를 고치거나 새로 달아주기도 한다. 꽃은 늘 꽃병에 꽂아 두고, 제사나 특별한 의식이 아니더라도 소소한 행위들이 사당과 사람, 그리고 일상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이 풍경은 한국의 서낭당이나 할매당을 떠올리게 한다. 서낭당은 마을 어귀나 길가에서 사람들의 안전과 풍요를 빌었고, 할매당은 집 주변이나 마을 안 작은 터에 신을 모셔 안녕을 구하던 곳이다. 뿌리와 종교 체계는 다르지만, 작은 터의 신에게 무사와 풍요를 비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다만 일본에서는 이런 사당이 지금도 골목 곳곳에 남아 있지만, 한국에서는 도시화와 근대화를 거치며 상당수가 자취를 감추었고 일부 지역에서만 명맥이 이어진다.


마을 사람들은 사당 앞을 지나다 잠시 멈춰 서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한다. 하루의 안녕을 빌고, 오가다 잠시 발걸음을 늦춘다. 각자의 방식으로 머무는 짧은 시간이 그 자리에 쌓인다.



출퇴근이나 등하교처럼 반복되는 하루가 사당 앞을 스쳐 간다. 장을 보러 가는 사람, 아이의 손을 잡고 오가는 부모, 집 앞을 쓸다 잠시 허리를 펴는 손길이 골목을 채운다. 먼발치에서는 란도셀(일본 초등학생 가방)을 멘 아이들이 오가고, 고양이는 격자 아래에서 햇볕을 쬔다. 그렇게 이어지는 생활의 움직임 속에서 사당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지금도.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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