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이나 신사를 거닐다 보면 연못 한가운데나 바위 위에 작은 두꺼비 조형물이 놓여 있는 모습을 마주할 때가 있다. 왜 하필 두꺼비일까 하는 생각에 그 앞에서 괜히 멈춰 서게 된다. 흉물스러운 얼굴, 느린 걸음, 칙칙한 피부의 두꺼비가 재물과 행운을 상징하며 사람들의 기원이 모인다.
머리 위와 주변에는 동전이 수북이 쌓여 있다. 연못이나 항아리에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풍경은 세계 어디서나 낯설지 않다. 둥근 몸을 웅크린 두꺼비는 그런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처럼 보인다. 흉물스러운 모습인데도, 그 앞에는 동전과 시선이 함께 모인다.
두꺼비에 대한 인식은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오래전부터 재물과 복을 부르는 상징으로 여겨졌다. 집 안에 두면 돈이 모인다는 믿음 속에서 황금 두꺼비가 만들어졌고, 아이에게는 “떡두꺼비 같다”는 말을 건네며 복스러운 기운을 빌었다. 설화 「은혜 갚은 두꺼비」처럼 위기에서 집안을 돕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겨울을 지나 봄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습성은 귀환과 순환의 이미지까지 더한다. 하이트진로 소주 ‘진로’ 병 위의 파란 두꺼비 마스코트에서도 이런 모습이 이어진다.
일본 후쿠오카현 오고리시에 있는 뇨이린지(如意輪寺)는 이러한 상징이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이곳은 ‘카에루지(かえる寺)’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데, 경내에 약 1만여 개의 두꺼비 인형과 석상이 놓여 있어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종교적 수행의 공간이라기보다 상징과 기원이 일상적인 풍경 속에 스며드는 정원 중심의 사찰 분위기를 보여준다.
일본어로 개구리를 뜻하는 ‘카에루(蛙)’는 ‘돌아오다(帰る)’와 발음이 같다. 두꺼비 역시 카에루의 범주 안에서 함께 불리며,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돈이 들어오고 무사히 돌아오며 행복이 집으로 굴러들어오길 바라는 뜻이 덧붙는다. 신사나 정원, 연못가의 두꺼비 주변에는 동전이 쌓인다. 동전 하나하나에는 소망과 함께, 장난처럼 던져진 마음도 얹혀 있다.
발음의 유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일본에는 언어유희를 바탕으로 한 길상 개념이 일상 깊숙이 스며 있다. 5엔짜리 동전 ‘고엔(五円)’은 ‘인연’을 뜻하는 고엔(御縁)과 발음이 같아 신사 참배 때 즐겨 쓰인다. 원숭이 사루(猿)는 ‘떠나다(去る)’와 소리가 같아 재앙이 물러가길 바라는 부적이 된다. 일본어로 합격을 뜻하는 고우카쿠(ごうかく)와 오각을 뜻하는 고카쿠(ごかく)는 발음이 비슷해 길상의 상징으로 쓰인다. 다자이후 텐만구 앞 돈코츠 라멘 가게 ‘이치란’의 라멘 그릇이 오각형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인들은 이렇게 일상 속 사물에 의미를 보태며 재물과 행운, 소망이 깃들기를 바란다.
두꺼비 조형물 주변에 쌓인 동전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품은 저마다의 바람이 전해진다. 두꺼비뿐 아니라 연못이나 항아리, 신사와 정원의 작은 형상 위에도 동전이 쌓인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물건이나 조형물, 자연이 만든 형상에 마음을 담는다. 동전의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마음이다. 작은 행위 하나에도 기도와 소망을 담아내는 인간의 습성은 어쩐지 따뜻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아주 잠깐이지만 동전을 던져 넣기보다 ‘몰래 한 움큼 쥐어갈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어처구니없게도 남들의 소망 앞에서 내 마음은 엉뚱한 쪽으로 기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