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이 있다. 남자가 코가 크면 다른 것도 크다더라. 농담처럼 흘려 말하지만, 은근히 믿는 사람도 있다. 공공연히 꺼내기엔 조금 민망해서 대개 웃음 뒤에 숨는다. 생각해 보면 이 말에는 오래된 시선이 묻어 있다. 보이는 신체 일부를 통해 보이지 않는 욕망이나 힘을 짐작하려는 태도 말이다. 인간은 종종 얼굴을 핑계 삼아 사람 전체를 단정한다.
이러한 시선은 특정 문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욕망을 직접 드러내기 어려울 때, 눈에 띄는 부분을 빌려 상징과 과장을 통해 의미를 덧씌운다. 코는 특히 시선을 모으는 부위라 크기를 비교하기 쉽고, 다른 의미까지 덧씌우기 좋다. 코를 통해 자만과 힘, 욕망을 짐작하는 시선이 만들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시선이 종종 웃음과 민망함 사이에서 작동한다. 농담처럼 흘려 말하지만, 사람들은 겉모습을 통해 성격이나 힘을 짐작하려 한다. 형상과 의미가 얽히는 과정에서, 인간은 보이는 것만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과장된 형태로 드러내기도 한다.
텐구(天狗)를 처음 마주하면 잠깐 시선을 어디에 둘지 주저하게 된다. 선홍색으로 칠해진 얼굴,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얼굴 한가운데서 과장되게 튀어나온 코 때문이다. 큰 코 앞에서 순간 시선이 멈추며 움츠러든다. 코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집요하고, 다른 이름을 붙이자니 상상력을 먼저 드러내는 것 같아 머뭇거린다. 텐구는 그런 주저함을 즐긴다. 애초에 진지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요괴다.
원래 텐구는 산에 사는 수행자, 야마부시(山伏)의 적이거나 타락한 야마부시로 여겨졌다. 하늘을 날고 사람을 골탕 먹이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존재였다. 일본어에서 ‘코가 높다(鼻が高い)’는 말이 자만을 뜻하는 것처럼, 텐구의 긴 코는 오만을 드러내는 표현이었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믿는 마음이 얼굴 밖으로 튀어나온 결과다. 수행의 길에서도 방심하면 그렇게 된다는 직설적인 경고처럼 느껴진다. 거짓말을 할수록 코가 길어진다는 피노키오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는 것은, 비슷한 상상 위에서 자라난 이야기들이 서로 살짝 스치며 겹쳐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텐구의 코를 보면, 코를 중심으로 한 상징적 상상력이 일본에서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얼굴 중앙에서 과장되게 돌출된 코는 생명력과 힘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우스꽝스럽고 풍자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일본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제주도의 돌하르방 역시 코를 만지며 아이의 건강과 성장을 기원하는 행위로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텐구의 코는 낯설지만, 코를 통해 힘과 욕망이 상징적으로 겹쳐 보인다.
민속과 풍자가 만난 자리에서 길쭉한 코는 점점 다른 뉘앙스를 띠기 시작한다. 지나치게 길고 과장된 신체 일부로 묘사된다. 사람들은 여기에 남성성, 정력, 과잉된 힘을 겹쳐 보았다. 우키요에 속 텐구는 능글맞고, 때로는 노골적인 농담 속으로 끌려 들어가기도 한다. 코는 더 이상 얼굴의 일부가 아니다. 웃음을 불러오는 대상으로 변했다. “저 정도면 코가 아니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이미 모두가 아는 얼굴이다.
텐구는 늘 애매한 위치에 서 있다. 신이면서 요괴이고, 수호자이면서 문제아이며, 근엄한 얼굴로 서 있으면서도 어딘가 민망하다. 긴 코는 권위의 상징이자,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과잉된 남성성은 위엄이 아니라 풍자의 대상으로 바뀐다. 강해 보이려고 애쓸수록 우스워지는 존재, 텐구는 그런 인간적 속성을 정직하게 닮았다.
텐구의 코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정말 그렇게까지 돌출될 필요가 있었느냐고. 산속을 가르며 날던 요괴의 얼굴에 남은 과장된 돌출부는 욕망과 자만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을 웃음으로 받아들여 온 민속의 태도까지 함께 드러낸다. 텐구는 무섭기보다 우습고, 신성하기보다 인간적이다. 너무 인간적이어서, 얼굴 한가운데에 긴 코를 달고 있다. 코 때문은 아니지만, 저가 팩 사케 마쯔리 텐구(祭り天狗)에 자꾸만 손이 간다. 기린과 에비스에 이어, 또 술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