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니(鬼)와 도깨비, 두 얼굴의 이야기

by 도간


온천으로 유명한 오이타현 벳부(別府)에는 ‘지옥 순례’라는 관광 코스가 있다. 벳부 일대에 흩어진 온천을 차례로 둘러보는 일정으로, 지옥을 떠올리게 할 만큼 뜨겁고 기묘한 색의 온천들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피가 끓는 듯 붉은 물,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수증기, 손을 담글 엄두도 나지 않는 온도. 이름은 험하지만 분위기는 의외로 여유롭다. 가족 단위 관광객도 많고, 다들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지옥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잘 정돈된 관광지다.


그중 하나가 오니야마 지옥(鬼山地獄)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야를 가로막는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온몸이 붉고,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달려 있으며, 손에는 큼직한 철퇴를 쥐고 있다. 설명을 읽지 않아도 안다. 아, 오니(鬼)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종종 마주치는 얼굴이다. 축제 포스터에서, 신사 근처의 그림에서, 아이들 그림책에서. 익숙한 얼굴인데, 입구 한복판에서 마주하니 낯설다.



오니는 대체로 이런 모습이다. 붉거나 푸른 피부, 두 개의 뿔, 날카로운 송곳니, 그리고 철퇴. 붉은 오니는 분노와 욕망을, 푸른 오니는 냉혹함과 이성을 상징한다. 오니는 인간 세상 바깥에 머문다. 산속이나 지옥, 혹은 경계의 장소에 자리한다. 벌을 내리거나 쫓아내야 할 무서운 대상으로 여겨졌다. 절분 날 “오니는 밖으로!”를 외치며 콩을 던지는 풍습도 같은 맥락이다. 오니는 이해의 대상이라기보다 두려움이 얼굴을 얻은 형상이다. 감정은 투사해도 관계는 허락하지 않는다.


오니는 인간 사회가 두려움을 바깥으로 끌어내어 정돈한 결과다. 재앙과 질병, 분노처럼 공동체를 흔드는 것들, 설명하기 어려운 불행과 통제하기 힘든 사건은 오니라는 이름 아래 묶였다. 오니는 선과 악이 뒤섞였다기보다,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에 또렷한 윤곽을 부여한 형상이다.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질서의 바깥에 두고 관리되는 이름으로 남는다. 두려움은 공동체의 경계를 만들고, 경계는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질서를 이룬다.



오니의 뿔은 대부분 두 개다. 좌우로 솟은 뿔이 균형 잡힌 위압을 만든다. 붉거나 푸른 몸에 호랑이 가죽 훈도시. 생활의 옷이 아니라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드러내는 표식이다. 문명과 규범의 바깥에 놓였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오니는 늘 같은 모습으로 서 있고, 같은 역할을 반복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중심에 서기보다 경계에 세워진다.


오니가 쥔 철퇴도 다르지 않다. 철로 만든 무기는 때리기 위한 것이고, 내려치는 순간 결말은 하나다. 응징, 제압, 종결. 철퇴는 오니의 성격이 연장된 신체다.



오니를 보면 한국의 도깨비가 겹쳐 보인다. 뿔과 방망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도깨비도 호랑이 가죽을 두른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뿔은 대개 하나다. 머리 한가운데에서 비스듬히 솟는다. 좌우로 맞선 두 뿔이 만드는 대칭의 위압과는 결이 다르다. 무섭다기보다 익살맞고, 때로는 어수룩하다. 쫓아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이야기 속을 함께 떠돈다.


도깨비의 옷차림은 고정되지 않는다. 호랑이 가죽을 두르기도 하고, 도포를 걸치거나 누더기를 입는다. 지역에 따라 갓을 쓰기도 한다. 사람의 옷을 슬쩍 빌려온 듯하다. 마을 어귀에 나타나 집 안으로 들어오고, 씨름을 걸고 술자리에 끼어든다. 생활의 자리 가까이에서 마주친다.



도깨비 방망이도 철퇴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역할은 다르다. ‘금 나와라 뚝딱!’ 같은 주문이 먼저 떠오르는 물건이다. 내려치면 끝나는 무기가 아니라 두드린 뒤에 이야기가 이어진다. 부를 불러오기도 하고 사라지게도 한다. 내리치고 나서야 사건이 시작된다.


관계를 맺는 방식도 다르다. 오니가 질서를 위협하는 타자라면 도깨비는 질서를 시험한다. 벌을 내리기보다 골탕을 먹이고, 혼을 내기보다 한 수 가르친다.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욕심 많은 사람은 빈털터리로 만든다. 기준은 신의 법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길들여진 감각이다. 오니의 철퇴가 처벌의 도구라면 도깨비 방망이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오니야마 지옥에 서 있다. 오니 조형물 뒤편에서는 ‘지옥’이라 불리는 온천이 끓는다. 이곳은 악어 지옥으로도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온천의 열을 이용해 악어를 사육한다. 기이하고, 어딘가 잔혹해 보이는 풍경이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설명을 읽은 뒤 다음 지옥으로 이동한다. 오니는 그 과정을 말없이 내려다본다. 벌을 내리지도, 말을 걸어오지도 않는다. 제자리를 지킬 뿐이다.


벳부의 지옥 순례는 잘 짜인 관광 코스다. 동선도, 설명도, 기념품 가게도 준비되어 있다. 입구를 지키는 오니 역시 제자리를 지킨다. 질서 정연한 지옥, 관리되는 공포. 그 풍경을 보며 도깨비가 떠오른다. 어쩌면 도깨비는 이런 식으로 관리되고 설명되고 정리되는 자리에 서기엔 너무 부산스러울지도 모른다. 말이 많고, 엉뚱하고, 사람들 틈에 섞여 있다.



오니는 끝내 인간 세계로 들어오지 않는다. 설명되고 전시되며 구경의 대상으로 남는다. 반면 도깨비는 이야기를 타고 사람들 사이로 내려온다. 밤길에서 만나고, 술자리에 끼어들고, 때로는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무섭지만 낯설지는 않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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