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피우는 돼지, 부타코로(ブタ香炉)

by 도간


여름 저녁, 공기에는 아직 후텁지근한 기운이 남아 있다. 모기 향은 제 속도로 타들어간다. 바람에 잠시 흔들리다가도 다시 흐르며, 느슨하게 풀어진 시간의 결을 보여준다. 연기가 시작되는 자리에는 부타코로(ブタ香炉)가 앉아 있다. 둥글고 작은 몸통, 짧은 다리. 벌린 입과 콧구멍으로 연기를 내뿜는 돼지 모양 모기향 꽂이. 기능만 놓고 보면 돼지일 이유는 없다. 하지만 다른 동물을 떠올리면 어딘가 어색해진다.

부타코로는 오래된 물건처럼 보이지만 시간의 켜는 그리 두껍지 않다. 모기향은 메이지 시대에 등장했고, 돼지 모양 향꽂이는 다이쇼 말기에서 쇼와 초기에 자리 잡았다. 에도 시대의 전통이라 말하기에는 거리감이 있고, 현대 디자인이라 하기에는 이미 지난 시간을 품고 있다. 만든 사람의 이름보다는 오랜 쓰임 속에서 하나의 정서로 굳어진 물건이다.



이런 물건은 언제 만들어졌는지보다 왜 지금까지 남았는지가 더 선명하다. 모기향은 접시 위에서도, 금속 꽂이 위에서도 태울 수 있다. 굳이 돼지 모양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여름은 기능만으로 지나가기 어려운 계절이다. 모기는 불쾌함의 상징이고, 여름밤은 쉽게 예민해진다. 불편을 밀어내는 도구 위에 돼지라는 동물을 올려두는 감각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긴장을 낮추는 태도다. 나쁜 것을 쫓으면서도 마음을 지나치게 세우지 않도록, 여름밤의 기운을 잠시 붙잡아 두는 풍경이다.


돼지는 동아시아에서 오래도록 복과 풍요를 뜻하는 동물이었다. 살찐 몸, 둔해 보이는 움직임, 늘 넉넉해 보이는 인상. 그것은 부지런함의 상징도, 날렵함의 은유도 아니다. 오히려 ‘괜찮을 것 같다’는 인상이다. 여름의 불쾌함을 견디는 데에도 그런 기질이 필요하다. 여름은 민첩하게 이겨내는 계절이 아니라, 묵묵히 버티는 계절이다. 돼지 향꽂이가 내뿜는 연기는 빠르지 않고, 돼지 모양의 몸체는 가만히 그 자리를 지킨다.


모기향 꽂이 부타코로는 기능과 오래된 믿음, 그리고 정서가 겹쳐진 물건이다. 모기를 쫓는 실용 위에 복을 바라는 마음이 얹히고, 그 위에 여름이라는 계절의 속도까지 포개진다. 신앙처럼 간절하지도 않고, 장식품처럼 가볍지도 않은 경계에 놓인다. 생활이라는 건 원래 그런 애매함 속에서 유지된다.


부타코로를 보고 있으면 또 다른 돼지가 떠오른다. 어릴 적 집 어딘가에 으레 놓여 있던 붉은 돼지 저금통이다. 동전을 하나씩 삼키며 천천히 무게를 늘려가던 돼지. 돼지 저금통은 돈을 담는 그릇이었지만, 굳이 돼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곰이나 토끼여도 되었을 텐데, 돼지였다. 한국에서 돼지는 재물과 복의 상징이고, 저금통은 그 상징을 일상 속으로 끌어내렸다. 아이는 돈을 모으고, 어른은 복을 기대한다. 동전을 꺼내는 날이 오면 우리는 뒤집어 작은 구멍을 찾거나, 결국 배를 갈랐다. 그 순간까지 포함해서, 돼지 저금통은 ‘모으는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방법이었다.



돼지 저금통은 한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도 ‘부타노 초킨바코(ブタの貯金箱)’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 모두 길상을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복을 적극적으로 불러온다기보다 생활 가까이 두어도 부담 없었고, 집 안에 두어도 무해하며, 별도의 설명도 필요 없었다. 모기향의 돼지 향꽂이도 비슷한 자리에 있었다.


여름의 돼지와 일상의 돼지는 같은 일을 한다. 하나는 연기를 내보내며 여름밤을 견디게 하고, 하나는 동전을 삼키며 모으는 시간을 버티게 한다. 말이 없고, 앞에 나서지 않으며, 묵묵히 제 역할을 반복한다. 그래서 오래 남았다. 전통이어서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만만했기 때문이다.


여름 저녁, 돼지의 입에서 연기가 천천히 빠져나온다. 연기는 모기를 쫓고, 저녁의 흐름을 느리게 한다. 일본에서 부타코로를 곁에 두는 일은 서두르지 않는 생활의 결을 닮아 있다. 둥글고 만만한 얼굴은 집 안과 바깥의 경계에 놓여 있다.


수요일 연재
이전 10화문 앞에 서 있는 작은 수호신, 타누키(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