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통가옥에서 문은 경계가 아니다. 빛과 그림자, 시선과 기류가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는 얇은 막이다. 쇼지(障子)는 얇은 나무 격자 위에 종이를 덧댄 문이다. 빛을 완전히 들이지도 막지도 않는다. 바람결처럼 한 번 걸러 들인다. 아침 햇살이 스며들면 벽이 아니라 스크린처럼 빛을 흩뜨리고, 저녁이 되면 실루엣만 어렴풋이 남을 만큼 투명성이 흐려진다. 미끄러지듯 열리는 문은 실내의 소리를 바깥으로 살짝 흘려보내며 공간을 느슨하게 이어 준다.
쇼지가 빛을 다룬다면, 후스마(襖)는 그림자를 품는다. 두꺼운 종이와 섬유를 바른 불투명한 미닫이문이 방과 방 사이를 가린다. 집 안에는 작은 공간들이 겹겹이 생긴다. 손으로 밀면 옆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하고, 소리 없이 벽이 된다. 필요에 따라 공간의 크기와 쓰임도 달라진다.
비워 둔 경우도 있지만, 사찰이나 성, 다이묘 저택에서는 후스마 전체를 화폭 삼아 수묵화나 채색화를 펼쳐 놓기도 한다.
시대극이나 사무라이 영화의 실내 격투 장면에서는 후스마가 종종 길을 가로막는다. 칼을 뽑아 든 인물이 망설임 없이 후스마를 베어낸다. 종이와 나무로 이루어진 문은 쉽게 찢어지고, 방과 방을 나누던 경계는 단숨에 무너진다. 칼날 하나에 허물어지는 장면은 후스마가 얼마나 얇은 경계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 공간을 여러 크기로 나누어 쓰다가도 필요하면 다시 열어 하나로 만들 수 있었던 일본 전통가옥의 유연함은 이런 문에서 비롯된다.
장마루와 중정, 방과 중정 사이에 놓이는 유리 미닫이문 마도(窓)는 근대 이후 유리 사용이 늘면서 등장했다. 투명한 유리는 바깥 풍경과 계절을 집 안으로 들인다. 비 오는 날이면 물방울이 유리 위를 작은 음표처럼 굴러가고, 눈이 내리면 중정의 하얀 풍경이 유리를 통해 잔잔히 드러난다. 얇은 유리막 하나가 외부와 내부를 이어 주며 공간 안으로 계절과 빛의 온도를 들여놓는다.
쇼지를 바라보면 한옥의 창호가 떠오른다. 얇은 종이를 통과해 번지는 빛과 손으로 밀 때 종이가 살짝 울리는 감촉이 닮았다. 창호 역시 빛을 자르기보다 거르고, 바깥의 기척을 완전히 막지 않는다. 아침이면 방 안에 은은한 녹차빛이 스며들고, 해가 기울수록 종이 위에 그림자가 얹힌다. 창호에는 한지를, 쇼지에는 와시(和紙)를 바른다. 종이의 결이 빛과 바람, 기류를 부드럽게 조절한다.
쇼지와 창호는 빛과 바람을 다루는 태도에서 서로 닮아 있다. 하지만 여닫는 방식에서는 차이가 또렷해진다. 한옥의 문짝은 대청과 마당을 향해 활짝 펼쳐진다. 열리는 순간 문은 사라지고, 경계가 비워진다. 바람과 시선이 한 번에 교차한다. 반면 일본의 문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쇼지와 후스마, 마도는 옆으로 미끄러질 뿐이다. 경계를 흐리고 번지게 하지만 끝내 비우지는 않는다.
두 나라의 문은 서로 다른 감각을 드러낸다. 한국의 문이 자연을 한 번에 들이는 넉넉한 여백이라면, 일본의 문은 빛과 그림자, 계절과 온도가 겹쳐지는 얇은 필름이다. 문 하나만 보아도 집이 서로 다른 호흡으로 숨 쉬는 장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