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야의 다다미 방에 들어서면, 빛이 스며드는 쇼지 창이 먼저 시선을 붙잡는다. 열린 창 너머의 정원에 스민 초록에 붙잡혀 한동안 머물다가, 서서히 방 안쪽 옆벽으로 옮겨간다. 도코노마(床の間)가 있는 자리다. 다다미보다 한 단 높게 마련된 사각의 공간으로, 방 안으로 살짝 물러나 있다. 안에는 족자 한 폭과, 붓꽃과 청단풍이 꽂힌 화병 하나가 놓여 있다. 몇 가지 절제된 요소로 방의 기운을 정한다.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비워둘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야마모토 겐이치의 소설 『리큐에게 물어라』에서 센노 리큐(千利休)는 도코노마를 이렇게 말한다. 그곳에 놓인 그림과 꽃은 무엇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끝에 마음과 시선이 머무는 자리다. 도코노마는 무언가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남길 것을 가려낸다.
교토에서 본 도코노마는 유난히 작았다. 일반적인 도코노마가 방 크기에 맞춰 비교적 넉넉하게 자리 잡는 데 비해, 교토식 도코노마는 방 안에서 시선이 머무는 지점을 정확히 계산해 놓은 듯했다. 크기로 존재를 드러내지도, 화려함으로 중심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그저 시선이 멈출 자리를 내어준다. 장식은 절제되어 있다. 족자 한 폭, 화병 하나. 화병에는 계절을 상징하는 꽃이나 가지가 단정하게 꽂힌다. 봄에는 막 피기 직전의 꽃을 중심으로, 여름에는 푸른 잎이 돋보이게, 가을에는 열매 맺은 가지나 마른 잎이 어우러지고, 겨울에는 솔잎이나 남천처럼 계절을 견디는 식물이 자리를 잡는다.
도코노마에는 시선과 관계를 다루는 방식이 스며 있다. 손님이 도코노마를 바라보는 자리에 앉고, 집주인은 흐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등을 돌린 채 차를 낸다. 누군가를 어떻게 앉히고, 무엇을 보게 할 것인가가 이미 공간 안에 짜여 있다. 작은 장식 앞에 마주 앉는 방식에는 예절과 미학이 함께 놓인다. 도코노마는 장식 공간이 아니라, 방 안의 질서를 조율한다.
조선시대 사대부의 사랑방에는 도코노마처럼 고정된 자리가 없었다. 사랑방 한쪽 벽이나 창 아래 놓인 낮은 탁자인 경상과, 족자 한 폭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족자는 상시 걸어두기보다 손님이 오거나 자리를 정할 때에 맞춰 걸렸다. 중심은 구조가 아니라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 강조된 한 칸보다, 그때 선택된 한 장면이 방을 만들었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거실이 떠오른다. 유리 장식장 안에 진열된 양주병과 수석, 해외에서 가져온 듯한 기념품들. 손대서도 안 되고, 마셔서는 더더욱 안 된다. 용도는 분명하지 않지만, 놓이는 자리는 늘 정해져 있었다. 손님이 오면 괜히 한 번 더 바로잡고, 닦아보게 된다. 장식장은 도코노마였다. 집 안에서 시선을 모으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만들고, 집주인의 취향과 권위를 말없이 드러내는 자리. 다만 교토의 도코노마가 절제와 여백으로 중심을 잡았다면, 양주와 수석, 반짝이는 유리문이 중심을 드러낸다.
교토의 도코노마를 보면, 낯설어야 할 장면이 익숙하게 다가온다. 다른 문화를 본다기보다, 시선을 어디에 두고 무엇을 남겨둘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보여주고 숨길 것인지, 어디에 시선을 머물게 할 것인지. 공간은 말이 없지만, 선택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한다. 교토의 도코노마도, 우리 집 거실 장식장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