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시간
배낭을 들쳐 올리자, 입에서 ‘억’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필요한 물건만 챙겼는데도 이렇게 무겁다고? 이번에야말로 가볍게 나서겠다는 다짐으로 버너며 식기를 죄다 뺐건만. 불을 포기하는 대신에 편의점에서 간식을 있는 대로 털어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25L짜리 등산 가방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빈 몸으로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가방을 메고 또 한 번 올라가 본다. 무게의 차는 12kg. 맞다, 여기에 물도 넣어야 한다.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지하철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배낭끈이 어깨를 꽉 움켜쥔다. 아, 이건 틀림없는 업보의 무게다.
혹자는 어차피 올라갔다가 내려올 텐데 무엇하러 산에 오르냐고 묻는다. 그러게 말이다. 달리 보면 인생도 모두 언젠가 죽을 텐데 뭘 그리 아등바등 살지 못해서 안달일까. 내게는 온갖 욕망으로 북적이는 일상의 공간에서 잠시 거리를 두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한 자리에서 목적 수행만을 위해 몰두하다 보면 주변 공기가 침체된다. 틈틈이 환기해 주어야 맑은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 또, 마냥 걷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나 고민이 절로 풀어지거나 대수롭지 않은 것임을 자주 깨닫는다. 삶이 마라톤 같은 장거리 경주라는 건 단순히 은유에 그치지 않는다.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두 발로 가다 보면 나의 한계와 민낯을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 있다. 얼마나 인내할 수 있는지, 위험과 위기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산에 오르는 일은 스스로 부여하는 시험인 동시에 자연 속에서 호흡하며 동물의 감각을 되찾는 회복의 시간이기도 하다. 산에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더는 중요하지 않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출발한 시외버스는 인제를 거쳐 원통에 다다랐다.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였지만, 잠이 덜 깼다. 신선한 바깥공기를 쐬고 싶어 버스에서 내려본다. 이름조차 낯선 동네, 원통. 이 동네의 주요 구성원은 근처 군 부대원들인 듯 이른 시간임에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병들이 눈에 띄었다. 군장점, 순댓국집, 치킨집, 토스트집… 길 건너 편의점 말고는 모두 간판에서부터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마을과 지역을 이어주는 작은 버스터미널 앞에 서있자니 뭐든 거대하고 너무 많은 서울로부터 벌써 멀어졌구나 싶다. 다시 출발한 버스는 15분 정도를 더 달려 용대리의 백담사 입구 정류소에 한 무리의 등산객들을 내려놓았다. 다른 이들은 내가 이고 온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는 사이에 뿔뿔이 흩어졌다. 지붕 위로 제비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
설악은 내가 처음으로 오른 큰 산이다. 젊은 시절의 부모님은 오빠와 나를 데리고 전국 이곳저곳을, 특히 산을 자주 다녔다. 12살에 처음 오색 코스로 대청봉에 올랐고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나서는 깜깜한 새벽부터 한계령 코스로 올랐다. 지금도 오색 탐방로 입구의 가파른 경사가 눈에 선하다. 어린 내 눈에는 그 입구가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관문 같았고, 때마침 오늘처럼 매미가 찢어지게 우는 여름이었다. 늦가을의 한계령, 그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능선이 길게 이어졌다. 얼마나 더 가야 하냐며 우는소리를 하는 내게 아버지는 저기 봉우리까지만 가면, 저 위의 능선만 오르면 끝이라고 대답했지만, 그 문답은 아홉 번쯤은 더 이어지고 나서야 끝났다. 설악의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어느 방면으로든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중청 대피소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라면을 끓여 먹고 나무로 지은 산장에서 처음 보는 등산객들과 뒤섞여 잔다는 게 어린 내게는 한여름에 두터운 겨울 재킷을 여며야 하는 추위처럼 낯설었던,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꾸만 생각나는 경험으로 남았다.
그렇다. 설악은 이름에 ‘악’이 들어가는 만큼 이름값을 하는, 명실공히 어려운 산이다. 무엇이 이 험준한 산을 다시 찾게 했을까? 거기에는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백담사 탐방로 초입의 완만한 오솔길을 걸으며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넓은 계곡을 보니 오래전 머릿속에 새겨진 풍경이 겹쳐진다. 설악의 계곡은 정말이지, 어떤 형용사로도 온전히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설악산은 1965년에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국립공원에 지정되면서 등산객의 계곡 출입이 전면 금지되었고, 그로 인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그 어떤 산의 계곡보다 물이 맑고 투명하다. 물이 얕은 곳은 바닥의 자갈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비치고 물이 깊어져도 투명도는 그대로 간직한 채 경이로운 청록과 옥빛으로 반짝반짝 부서지며 흐른다. 이렇듯 계곡물이 너무나 투명한 탓에 그리 깊어 보이지 않을지라도 보통 성인의 키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수심이 깊은 소가 곳곳에 즐비하다. 낙차가 있거나 폭포 아래에는 물이 너무 깊어서 청록빛이 짙어지다 못해 고동빛으로 어두워지는 용소도 적지 않다. 8월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시기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땀으로 온몸을 적시며 걷고 있자니 한 번이라도 저 깊은 용소에 몸을 담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지만, 불법일뿐더러 수심을 가늠할 수 없어 위험하니-못해도 7, 8m는 쉽게 넘을 것이다-아쉽지만, 상상에 그친다.
한 시간쯤 물줄기를 따라 오르며 쉴 새 없이 감탄하다 보니 나뭇잎 사이로 기와지붕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처음으로 쉬어가는 기점, 영시암에 닿았다. 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숨 돌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안도감이 밀려온다. 작은 불상과 동자승 인형이 놓인 샘터에서 약수로 목을 축이고 있으니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다가온다. 야생동물 특유의 기민함은 살아있지만,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다. 오가는 등산객들이 주는 음식에 익숙해졌을 테다. 이 작고 귀여운 녀석이 뭐 하나 떨어지는 거 없나 하고 발치에서 알짱거리는데 마냥 무시하기는 어렵겠지. 다람쥐는 어느새 아몬드 한 알을 받아 들고 불상 옆에 앉아 포식의 자세를 취한다. 그 모습을 보고는 다들 사진 찍기 바쁘다. 영시암 앞에는 여러 대의 긴 의자와 전기로 데우는 뜨거운 물, 믹스커피도 자유롭게 이용하라며 놓여있었다. 산객들을 위한 암자의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다. 찹쌀떡과 어육소시지를 하나씩 꺼내 먹고 이리저리 뛰는 다람쥐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땀이 식었다. 말복 더위에도 강원의 깊은 산중은 울창한 나무 그늘과 계곡이 있어 견딜만하다. 골짜기를 따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그보다 더 달콤한 휴식을 계속 누리고 싶지만, 너무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쉼을 내어주는 영시암의 배려처럼 설악산도 대청봉으로 향하는 등산객의 몸이 풀리기를 순조롭게 기다려주었다. 본격적인 산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가방을 둘러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