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도 걷는 사람

홍대에서 인천까지 26km 걷기

by 포말


*일시 : 2019년 05월 09일(목)

*장소 : 서울 홍대부근 ~ 인천 계산동 우리집

*거리 : 약 26km

*시간 : 약 6시간 20분 소요


언젠가부터 걷는게 좋아졌습니다.

딱히 꼬집어서 말은 못하겠지만 산을 찾기 시작했고, 버스, 지하철을 탔습니다. 한 두정거장은 걸어다녔고, 할일이 없으면 일단 걷습니다. 특별하게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 때문이라거나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라거나 그런것도 아닙니다. 물론 걸으면 글을 쓰는데 도움도 되고, 건강에 도움도 되는 등 장점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것 때문에 걷는건 아닙니다.


그냥.

정말 그냥 걷는게 좋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걷는게 좋고,

걸으며 생각하는게 좋습니다.

이야기 하면서 걸어도 좋고,

손을 잡고 걸어도 좋습니다.

걷는건 다 좋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오늘은 홍대에서 집까지 걷는 겁니다.



14시쯤부터 계획(?)대로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홍대부터 집까지 약 26km 걷기입니다. 지도에서 도보로 검색을 하니 시냇길로 안내를 해주더군요. 그래서 자전거로 다시 검색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자전거 길로 가는게 더 안전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실제 걷기로 마음을 먹게 된 것도 집근처에 아라뱃길을 지나다닐때 였습니다. 많은 자전거를 보았고 그 자전거길이 한강과 연결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오늘의 길은 한강공원을 따라 올라가서 아라뱃길을 타고가는 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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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에 올라서니 이제 진짜 실감이 납니다.

저... 진짜 걸어갑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요.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나 : "여보! 나 이제 서울에서 출발해요"

천사 : "네~ 조심히 와요"

나 : "근데 나 오늘 조금 늦어요"

천사 : "무슨말이에요? 어디들려요?"

나 : "아니요. 걸어갈꺼에요"

천사 : "네? 뭐라구요?"

나 : "걸어갈꺼에요 집까지요"

천사 : "미친거 아니에요?"


천사같은 아내의 입에서 처음으로 미쳤단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당당히 말해줬습니다.

"한라산 등반보다 오래 안걸려요. 그땐 9시간 걸렸고 이번은 6시간 예정이라구요."

말이 먹혔을까요. 아님 말이 막혔을까요?

어쨋든 천사님께서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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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 위에서 전경이 참 좋네요.

바람도 선선히 불고 햇살도 적당히 따사로운게 걷지말고 뛸까? 하는 더욱 미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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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생각을 하다 고개를 돌리니 'SOS생명의전화기'가 눈에 보였습니다. 기막힌 타이밍입니다.

TV에서만 보던 전화를 실제로 보았습니다.

이 전화 덕분에 많은 분들의 생명을 살릴수 있다고 합니다.


나도. '나도 반드시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겠다' 라는 꿈을 생각하며 다시금 가슴을 '퉁퉁' 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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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거의 건너갈 즈음입니다. 아래보이는 노랑색이 너무 예뻤어요. 여기 서울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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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내려오니 정말 좋네요.

그러고보니 한강공원 정말 오랜만이에요. 맨날 산으로만 다녀서인지 이런 분위기 참 낯섭니다. ('너! 참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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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천천히' 라는 주의판이 있네요.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만 주의하라는 것은 아닐테죠? 저도 이 표지판을 보며 천천히 두리번 거리며 걸었어요.

사고는 함께 조심해야하는 거죠.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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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슨 꽃일까요?

길따라 펴있는 꽃을 보고, 못보던 풀도 보고, 아래 영상처럼 지나가는 벌레도 보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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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를 하는 조사님들을 보니, 이러다 나도 언젠간 저렇게 물고기를 낚을때도 오겠다 싶었습니다.

지금은 맨날 사람만 낚고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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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강을 바로옆에 두고 걸으니 심심하지 않고 재미는 있어요. 그렇지만 이게 10km가 넘어가니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10km에 두시간 남짓을 걸으니 슬슬 골반쪽이 불편해지면서 허리도 아파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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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졸릴시간인지 잠까지 몰려오네요.

생각해보니까 군대에서 행군할때 걸으면서 졸기도 했는데 딱 그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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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탈출구(?)가 나타났습니다.

저곳으로 가면 마곡나루역이 근처에 있을것만 같습니다.

'10km 걸었으면 많이 걸은거야!' '이상태로 앞으로 16km를 어떻게 걸으려는 거니?' 하며 상태안좋은 애가 자꾸 말을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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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따윗 상태 안좋은 애한테는 과자랑 사탕이 최고입니다. 우걱우걱 먹여놨더니 좀 조용해졌어요.

역시 단것은 언제나 옳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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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공원이 끝나고 나니 조금 더 자연적인 길이 나타납니다. 여기부턴 자전거 타시는 분들만 지나가시네요.

이전까지 보였던 걷는 분들은 주변에 사시는 분들께서 산책나오신거였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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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분들은 날 보며 무슨 생각하실까?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얼마전에 읽었던 '부의 추월차선' 책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땐 무조건 추월차선 = 빠른길로 가야할 것 같았는데, 걷다보니 다른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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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서울에 야생동물 출몰지역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만 몰랐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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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터졌습니다. 맹꽁이주의 라는 표지판도 있네요.

그러면서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분들껜 작은돌 하나 작은 생명체 하나라도 위험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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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 어느새 아라뱃길이 코앞이네요.

마치 거의 다 온것같은 기분이었지만 사실 앞으로도 약 10km정도가 남은 거에요. 이때부터 슬쩍 갈등이 옵니다. 저희 천사님도 자꾸만 꼬시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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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몰랐는데 '강서생태습지공원'이라는 곳이 생각보다 괜찮은것 같더라구요. 아라뱃길 초입과 바로 붙어 있을 정도로 집이랑 가까워서 나중에 아이들과 한번 와봐도 좋을 것 같았어요. 살짝 '뇌' 구석에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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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풍경이 나와서 일까요? 아라뱃길로 들어서니 마음이 포근해지고 안심이 되네요. 그동안 걸어온 길은 내가 모르는 길이였고, 앞으로 걸을 길은 내가 아는 길이라서, 얼마나 가면 뭐가 있고 하는걸 다 아니까.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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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도 날씨도 너무 좋지 않나요?

꼭 멀리까지 아니더라도 아라뱃길까지 와서 걷고 뛰는 것을 많이 해봐야겠어요.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게 지을땐 그리 반대를 하고, 운영하는거에 불만이 그리 많긴 하지만 또 내가 편하고 좋으면 이럽니다. 나는 참 챙피하도록 간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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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출발한지 4시간이 지났네요.


점심때 먹고 남은 김밥한줄을 꺼냈어요. 함께 먹었던 스콘도 챙겨왔는데 사진을 못찍었네요.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지금이랑 그때랑 맛이 다른 것은 누구랑 먹었는지, 어디서 먹었는지, 뭘하다 먹었는지가 달라서 그렇겠죠?

뇌란 녀석도 그렇지만 혀란 녀석도 믿을게 못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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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배도 채웠겠다. 남은 물을 마시며 공원을 둘러보는데 저 멀리 계양산이 보입니다. 이토록 멀리 보이는데도 위로와 위안이 되네요. 늘 한자리에 있는 것 만으로도 위로와 위안이 된다는 것. 참 놀라운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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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긴 하지만 보이시나요? 죠~ 쪼그만게 비행기에요.

근처에 캠핑장이 있는데요. 거기서 캠핑할땐 비행기 소리가 엄청 시끄러웠어요. 바로 근처가 김포공항이라 오르고 내릴때 엄청 가깝게 날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그 소리가 너무 반가운거 있죠.

아시죠? 사람마음 간사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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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전용이라고 써있는데 아이모습이 '여자아이'네요. 나도 딸아이와 걷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꿈을 딸로 이룰지, 손녀로 이룰진 모르겠지만 이뤄지지 못할거란 생각이 안드는 것을 보면 어떻게든 이뤄질 건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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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고 있어요.

이때부터 또 아까 그 아이가 또 튀어나왔어요.

왜 있잖아요? 아까 마곡나루에서 지하철 타라고 꼬셨다는...

'날이 어두워지면 위험해', '날이 추워질까야', '이대로 가다간 쓰러질껄?' 하면서 또 꼬셔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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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계양역을 보고 있자니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찰나 보면 안될 메세지를 하나 보고야 말았죠.



제가 오늘 걷고 있단 것을 페이스북에 올렸거든요.

거기에 댓글로 지인께서

"정말요? 27km를....세상에나~~ 대단하시네요" 라고 남겨주신거를 하필 이때 봤습니다.


여기서 넘추면 21km에서 끝이나는 거거든요.

미안하지만 계양역과는 ByeBye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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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지나다닐땐 계양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이 인도가 좁고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왠걸 이렇게 넓은거 있죠?

위험하기는 커녕 텐트치고 자도 되겠어요.

저는 매번 지나다니면서 도대체 뭘 본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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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집근처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냥 증거용으로 찍은 사진인데 색감이 참 좋네요.

마치 저때의 제 마음이 담긴듯해요. 맘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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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집앞이에요. 14시쯤 출발을 했는데 도착시간은 20시15분 정도 되었네요. 6시간을 걸었어요.

이쯤 걸었으면 나도 '걷는 남자' 라고 자칭해도 괜찮죠?





처음 걸으려고 마음을 먹은 건 어제가 아닌 그제였다.

홍대에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걸어오면 좋겠다 싶어서 동선이랑 예상시간 확인을 하고 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만큼을 걸으면 정말 많은 글감이나 아이디어 그리고 복잡한 생각들이 다 정리가 될 줄 알았다. 엄청 큰 깨달음이 있을꺼라는 기대 말이다.


그렇지만 왠걸 그건 착각, 실수였다.

10km가 넘어가면서 고민같은 생각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끝까지 갈수 있을까? 이제 얼마나 남았지? 배가 고프다, 좀 더 가면 앉을데가 있을까? 다음 화장실은 어디지? 등등 온통 내 몸 상태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게 난 오랜만에 두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오롯이 나한테만 집중하고 내 걱정만 하는 시간을 보냈다. 고맙다.


집까지 두정거장쯤 남은 곳 부터는 번화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다. 지난번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오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미소가 보인다. 나는 예전에 그렇지 못했던 것 같은데. 퇴근길에 만났던 사람들의 표정은 썩어가는 모습이었는데. 이날 보았던 사람들의 표정에는 미소가 숨어있다. 하나같이 다들 그랬다. 신기하다. 아마도 내눈에 필터장치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썩었기에 그리 보였나보다.


걷는다고 하면 늘 등산만 생각했다. 오를때처럼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해야 제대로 걷는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6km 걷는건 쉽다고 생각했다. 가볍게 걸을뿐이고 단지 시간만 많이 걸린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골반부터 시작해서 허벅지, 다리, 어깨, 등 등 점점 아픈곳이 늘어나고 지쳐갔다.


같은거리를 두시간동안 뛰는 사람과 6시간 걷는 사람 누구를 더 대단하다고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번으론 잘 모르겠다. 앞으로 몇번을 더해봐야겠다.


2019년 5월 10일

나도 걷는 사람 최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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