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뱃길을 걸으며

by 포말

글이 써지지 않는다.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머릿속에선 수많은 생각들이 뒤엉키고 부딪히고 있지만 그것들이 글로 엮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 처가에 다녀왔다. 우리 집은 인천 계양, 처가는 부평이다. 차로 20분이면 가는 거리라서 자주 다녀온다. 물론 내입장에서 자주 다녀온다는 말이다. 아내의 입장은 다를 수도 있다. 우리 집과는 다르게 처가는 일반 주택이다. 반지하를 1층으로 하자면 3층 집이다. 거기다 마당도 있고 옥상도 있다. 그래서 애들이 뛰어 놀 곳이 많다. 마당에서 야구놀이를 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어른 걸음으로 스무 발 남짓밖에 되지 않는 공간이지만 9살, 6살 아이들에게는 마치 학교 운동장인 듯 느껴지나 보다.


그 녀석들은 처가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사촌 형들과 뛰어노는 것도 좋고 녀석들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잘 챙겨줘서 그렇지 않을까 한다. 매번 처가에서 올 때면 가기 싫다고 눈물바람을 잔뜩 뿌리며 신파극을 찍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녀석들을 놓고 왔다. 딱 하루만 더 있다 오라고 두고 왔다. 놓고 온다고 하니까 작은 녀석은 무조건 좋고, 큰 녀석은 지 엄마와 헤어지는 것이 맘에 걸리는지 살짝 눈물을 비치기 했지만 그래도 결과는 같다.




덕분에 오늘은 아침이 여유가 있었다. 한숨 더 자고 일어나 어머니가 해주시는 늦은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두부와 버섯으로 끓인 국과 날 위해 남겨두었다는 삼치 한토막 그리고 계란과 토마토를 함께 볶은 반찬에다가 시원한 열무김치가 반찬이었다. 아주 오래간만에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열무김치를 보니 주말에 보았던 TV 프로그램 삼시세끼의 김치말이 국수가 생각이 났다. 김치말이 국수라고 하면 따로 김치를 담고 동치미를 담고 고기육수를 내어 만들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차승원은 참 간단하게 만들었다. 냉면육수에 김치 국물을 적당한 비율로 섞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간단하게 만드는 법을 알았으니, 조만간 시원한 냉면육수를 좀 사 와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에 앉았다. 글을 써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집중도 되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정리를 할 수가 없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노트북을 넣고 책을 한 권, 두권, 세권 담았다. 바인더도 챙겼다. 가방을 싸다 보니, 책을 넣다 보니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내는 내가 가방을 싸놓으면 한 번씩 꼭 들어본다. 그리고선 읽지도 않을 책을 그리 많이 챙기냐고 한소리를 한다. 물론 책을 많이 챙겼다는 핑계로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닐 내 어깨를 걱정해서다.


아무 생각 없이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발길이 닿는 대로 아니 핸들이 돌아가는 대로 그냥 갔다. 가다 보니 아라뱃길로 왔다. 그냥 걷고 싶었나 보다. 집중이 안되고 맘이 어수선할 때는 걷는 게 최고다. 그리고 지금 내게 필요한 것도 하염없이 걷는 것일 테고... 책 한 권과 물 한 병을 챙겼다. 시간을 보니 곧 약 먹을 시간이길래 약을 먹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걸었다. 그냥 걸었다. 계속 걸었다. 걷다 보면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글로 쓸 수가 없다. 이제는 생각이 글로 옮겨지지 않는다.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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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뱃길은 원래 자전거 길이다.(자전거길이 아니라 뱃길이겠지만...) 대부분이 자전거로 지나다닌다. 나처럼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걷는 길이 별도로 있긴 하지만 자전거길로 가야 옆에 뱃길을 끼고 걸을 수가 있다. 뱃길 옆으로 걸어야 기분도 상쾌하고 걷는 맛이 난다. 그래서 걷는 길로 가지 않고 자전거 길 옆 길로 조심히 걷는다.


아라뱃길을 걷다 보면 갈매기가 자주 지나간다. 그때 생각을 한다. 맞다. 이 길의 끝이 바다이지!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갈매기는 여기까지 왜 왔을까? 바다와 다르게 먹이가 풍부한 것도 아닐 텐데 여까지 왜 왔을까? 그냥 나처럼 목적지 없이 그냥 온 것일까? 생각을 해본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이 길의 끝은 약 10km 정도이다. 그곳에는 정서진, 서해갑문이 있다. 그곳이 아라뱃길의 끝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곳까지 갈 것이다. 나도 그곳까지 걸어가 볼까? 10km면 두어 시간이면 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마 조만간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아직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하고 왔다. 조만간 다시 준비를 하고 도전해야겠다.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봤다. 갈매기 뒤편으로 지나가는 비행기가 보인다. 김포공항으로 착륙을 하는 비행기다. 아마 제주도에서 오는 비행기일 테다. 요즘 비행기 요금도 싸니까 나도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년에 한라산을 다녀왔을 때 생각을 했다. 다시 한번 가고 싶다. 그때처럼 당일치기 코스도 좋고 며칠 푹 걷다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행기 뒤쪽으로는 북한산도 보인다. 북한산도 가고 싶고 한라산도 가고 싶다.


이번 주 수요일 병원에 다녀오고 난 뒤에는 어디든 가봐야겠다. 제주도든 북한산이든. 아님 아무 곳이든.


그늘에 앉아 책을 읽는다. 약기운이 퍼져서 그런가? 집중이 잘 된다. 요즘 산만한고 집중이 잘 안 되는 편인데 다행이다. 김훈산문 '라면을 끓이며'를 읽는데 참 좋다. '목수', '줄'이라는 글을 읽는데 감탄을 하며 읽는다. 어쩜 이렇게 글을 쓸 수가 있을까?


나도 언젠가 꼭 저런 글을 써보리라~라며 다짐을 해보지만, 자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