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설계도에 없던 것들
2024년 말, 신화건설에서의 5년과 GS건설에서의 30년, 도합 35년이라는 긴 여정을 마치고 비로소 건축 기술인으로서의 무거운 직함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거친 현장을 누비며 흙먼지와 세월에 깊게 팬 주름, 어느새 서리가 내린 듯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 그리고 이젠 좀 쉬게 해 달라며 아우성치는 몸과 마음의 신호를 보니, 참으로 지칠 줄 모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이제 그만하면 됐다, 할 만큼 했다며 인생의 은퇴를 말하던 바로 그 시기, 나에게는 역설적이게도 꽤나 달콤한 유혹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고액 연봉의 대표직이나 화려한 임원 타이틀. GS건설에서의 임원 경력에 걸맞은, 누가 봐도 그럴듯한 자리들이었다. 하지만 제안의 포장지를 벗겨내면 알맹이는 단 하나였다. 기술자로서의 혜안이 아니라, 내가 평생 쌓아온 인맥을 방패 삼아 후배들에게 부탁을 해서 수주를 하거나 공사비를 더 받아내는 청탁의 도구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평생을 엔지니어로 살아온 나에게 기술자가 아닌 영업맨의 가면을 써 달라는 요구였다. 잠시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끝내 그 손을 잡지 않았다. 경북 상주의 가난한 시골 소년이 건축공학이라는 낯선 길을 선택하고, 졸업 후 처음 건설회사에 입사하며 가슴에 품었던 꿈은 결코 화려한 겉치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은 기초 다지기부터 시작되었다. 1990년 울산 유곡동의 척박한 땅에서 사원아파트를 올리며 처음 레벨기를 잡았고, 1995년 대구 지하철 1호선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안전이라는 기초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배웠다.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단단한 건물을 짓 듯,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끄럽지 않은 기술자의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 건물 전체를 흔들기도 했다. 2003년, 사스(SARS)가 창궐하던 북경 LG 타워 현장. 가족들을 먼저 한국으로 대피시키고 텅 빈 북경의 밤하늘 아래 홀로 현장을 지켰던 그 시간은, 건물을 지탱하는 내력벽처럼 내 안의 책임감을 단단하게 세워주었다. 그 시련을 견뎌냈기에 여의도의 마천루인 SIFC Tower와 JW Marriott 동대문 호텔의 고귀한 위용도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또한, 2021년에는 신구대학교 강단에서 ‘건축환경설비’라는 과목의 강의 활동을 통하여 현업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과 경험들을 아직 사회에 때 묻지 않은 대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건축기술의 세포를 이식해 주었던 일들은 지금도 뿌듯하다.
건축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毒)은 부실공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를 대충 다지고,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가야 할 철근을 빼먹는 행위는 결국 언젠가 무너질 비극을 잉태하는 법이다. 인생 또한 건축과 다르지 않다. 인생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마감 공사를 초라한 욕심으로 채워 넣는다면, 내가 35년간 정직하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은 순식간에 모래성이 되고 만다. 나는 내 인생의 준공 검사에서 만큼은 스스로에게 당당히 적격 판정을 내리고 싶었다.
결국 나는 화려한 지휘봉 대신, 후배들의 앞길을 묵묵히 비추는 감리라는 이름의 등불을 들기로 했다. 이 기록은 한 건축 기술인이 척박한 대지에 뿌린 땀방울의 보고서이자, 한 인간이 끝내 지켜낸 자존심의 역사다. 설계도에는 차마 그려 넣지 못했던 사람의 온도와 명예의 무게를 이제 이 글에 온전히 담아보려 한다.
부디 이 글이 꿈과 열정을 불태우고 있을 후배 기술자들에게 작은 위로와 나침반이 되고, 차가운 콘크리트 너머에서 뜨겁게 살아 숨 쉬는 기록으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