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만으로 충분했던 사람들, 김포 신화아파트
김포 사우리 신화아파트: 15층 9개 동, 654세대
분당 매화마을의 거친 소용돌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우리 조직은 약속이라도 한 듯 김포 사우리 신화아파트 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5층 높이의 9개 동, 총 654세대에 달하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 현장은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두 개의 공구로 나누었는데, 나는 운 좋게도 분당에서 내 인생의 지표가 되어주었던 지창* 형님과 다시 한번 같은 공구에서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이미 수많은 우여곡절을 함께 넘나든 사이여서 일까. 지창* 과장님과는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척하면 삼척이라는 말처럼, 공정의 흐름과 문제 해결의 방식이 물 흐르듯 맞아떨어지는 경험은 기술자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현장 생활의 고단함을 잊게 해 준 양념 같은 추억도 선명하다. 낚시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직원들과 인천 앞바다 덕적도로 배낚시를 떠났다가 갑작스러운 태풍에 휘말려 이틀간 섬에 갇혔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비바람 치는 섬마을에서 우리끼리 나누던 투박한 대화들은 거친 현장 밖에서 서로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만든 소중한 시간이었다.
또한 이 현장에서 창*형님, 용*, 상*이와 나 이렇게 넷은 수시로 아이들을 포한한 가족 동반 모임도 자주 가지고, 여행도 다니면서 너무나도 막역하게 가족처럼 지냈고, 서로의 모든 것을 대신해주기도 하는 그야말로 형제나 다름없이 지냈다. 이 인연으로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때의 아련한 추억들이 그리워지곤 한다. 이젠 다들 시간이 흘러 몸도 마음도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그 시절을 회상하며 가끔 씩 안부를 묻곤 한다.
이 현장에서 만난 골조업체의 형틀목공 출신 전관* 소장은 내 인생에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 중 한 분이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망치질로 시작한 형틀목공 출신으로, 일하다가 오른쪽 검지 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 나간 거친 손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몇 살 더 많았지만, 그는 권위나 허세를 내세우기보다 진심 어린 소통으로 현장을 이끌었다. 단 한 번도 안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어떠한 경우라도 항상 이렇게 하면 어떻겠나? 저렇게 하면 어떻겠나? 하면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는 분이었고 도면을 보는 눈이 아주 정확한 분이었다.
어떤 자리에 있던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고 기술적 지식의 완성도가 높아야 함을 많이 느끼게 해 준 분이다.
그 투박한 손으로 그려내는 현장의 그림은 누구보다 정교했다. 그와 쌓은 정은 깊어서, 내가 해외 현장에 나가 있을 때도 국내에 잠시 복귀할 때면 늘 만나 밥을 먹고 우정을 이어갔다. 지금도 경조사를 챙기며 연락을 주고받는 그는, 기술자의 실력이란 결국 사람을 향한 진심에서 나온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고마운 인연이다.
지창*, 박용*, 박상*, 이수* … 함께 쉼 없이 소통하며 형제처럼 지냈던 그 전우들이 있었기에 김포의 하늘도 무사히 올릴 수 있었다.
기술적인 면에서 김포 현장은 나에게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었다. 당시 건설 업계에서 한창 유행하던 ALC(Autoclaved Lightweight Concrete) 블록을 발코니와 거실 벽체에 처음으로 적용하게 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아파트 발코니 확장은 입주 후 개인이 별도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벽체는 대부분 시멘트 벽돌 위에 몰탈과 페인트로 마감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ALC는 달랐다. 습기에 취약하고 강도가 약하다는 단편적인 정보와 전용 몰탈인 수지미장으로 마감한다는 것 외에는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문제였다.
내가 담당하는 동(棟)에서 모든 후속 마감공사의 Pilot Mock up을 하였는데, 우천 시 자재 관리의 중요성을 간과했던 탓에, 비에 젖어버린 ALC 블록을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파렛트 통째로 폐기하며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은 일도 있었고, 시공 완료한 ALC 벽체가 비에 젖어 상당 부분을 철거하고 재시공하는 오류도 있었다. 새로운 자재가 마치 만능인 것처럼 달콤한 유혹에 빠진 실수였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겉에 보이는 것 만이 전부인양 아는 체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변수와 유지 관리의 어려움을 뒤늦게 깨달으며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새로운 기술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며, 지식의 깊이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적용은 곧 하자로 이어진다.
이 뼈아픈 경험은 35년 건설 인생 동안 내가 기본과 원칙에 더욱 집착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