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건설인의 골조를 세우다_2

분당 매화마을에서 스승을 만나다

by 김영조

분당 매화마을 주공아파트 4단지: 15층 8개 동, 643세대의 기록


논밭이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다


1990년대 초반, 대한민국은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 호 건설이라는 유례없는 국가적 과업 아래 거대한 건설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었다. 분당, 일산, 평촌등 1기 신도시를 동시에 시작한 그 역동적인 시기, 나는 분당 신도시의 시작이었던 야탑동 매화마을 주공아파트 4단지 현장으로 발령받았다.


그곳은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현장이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평화롭게 논밭을 일구던 땅이 자고 일어나면 수십 동의 아파트 골조로 채워졌다. 하지만 전례 없는 대규모 공사가 단기간에 집중되면서 여러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했다.


사회적으로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던 문제는 세척되지 않은 바다모래를 사용한 것이었다. 골재 부족 사태로 염분이 제거되지 않은 바다모래가 현장에 대량 유입되어 철근 부식과 건물의 내구설을 단축시키는 부실공사와 안전성 논란이 컸었다.


또한 공기 단축을 위해 공장에서 제작된 콘크리트 판을 현장에서 조립만 하는 PC(Precast Concrete) 공법이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는데 기술적인 완성도가 낮아 접합부의 정밀도 부족으로 인한 누수와 단열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아울러, 동시 다발적인 대규모 공사는 전국적인 자재난으로 건설시장의 수급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시멘트, 철근, 골재등 핵심주요 건자재의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건설원가 상승과 공급지연으로 이어졌다. 국내산 시멘트는 구경조차 힘들었고, 현장에는 중국산 시멘트와 터키산, 일본산 철근이 쉴 새 없이 밀려 들어왔다.


그 와중에 당시 갑 중의 갑은 레미콘사였다. 레미콘 공급이 워낙 부족하여 물량을 할당받기 위하여 항상 음료수와 급행료 봉투를 가지고 레미콘 공장 출하실에 직원이 상주하여야 했고, 현장에서는 레미콘 운반차량 기사들한테 음료수며 빵이며 온갖 아양을 떨어야 했고, 심지어는 담뱃값까지 웃돈을 얹어 주며 잘 보여야 겨우 1개 층 콘크리트 타설이 완료 될 정도였다.


또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현장이 열리다 보니 숙련된 기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이는 결국 미숙련 인력 투입과 낮은 완성도로 이어져 시공 품질 저하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분당신도시.jpg 분당 신도시 건설 당시 모습(사진: AI 재구성)


논과 밭이었던 분당 전체가 공사장이 되다 보니 비라도 온 다음날은 움푹 파인 구덩이와 임시로 개설된 도로 침수로 인하여 승용차는 다닐 수 조차 없어 트럭을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분당 전체가 온통 흙먼지로 인하여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엄청난 역사였다.


내 인생의 나침반, 지창* 대리님과 한 권의 책


당시 한국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건설 용어들은 일제의 잔재인 일본어 은어(소위 노가다 용어)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나 역시 울산 현장에서 친절하신 목수 반장님한테 다양한 일본어 용어들을 배우고 외우고 하면서 마치 전문가인 것처럼 흉내를 내고 있었을 때다. 아니 어쩌면 일본어 용어를 모르면 일할 줄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을 때였다.


하지만 사우디에서 현장을 경험했던 그는 결이 달랐다. 그는 일본식 용어 대신 세련된 영어 표준 용어와 글로벌 스탠더드를 구사하는,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자였다.


현장엔 평생을 아파트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현장소장님을 비롯 강ㅇㅇ 공사과장이 있었으나 지창* 대리가 실질적인 공사과장의 역할을 하였다. 건축직으로는 나를 비롯해서 여섯명이나 있었는데 우습게도 그중 경력 2년 차인 내가 제일 선임이었다. 다들 비슷비슷 하다보니 다툼도 있었지만 선의의 경쟁같은 노력들로 현장은 일사분란하게 잘 진행되었다.


신입사원이 많다 보니 나에게 자연스레 공구장의 역할을 맡기면서 상가동등 부속 건물과 아파트 4개 동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대리하고 밀착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시간이 지나니 눈빛만 보아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선물한 영어 원서『Architectural Graphic Standards』는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밤마다 책상 앞에 앉아 영한사전을 옆에 끼고 파고든 그 책 속의 디테일과 공학적 원리들은 나에게 “건축이란 이런 것이야, 제대로 공부해라”라고 말해 주었다.


그 덕분에 훗날 내가 어떤 복잡한 현장에서도 기술적으로 당당할 수 있었고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일본어 잔재에 머물러 있던 나를 글로벌 기술자로, 기본기를 갖춘 진정한 건축기술자의 세계로 이끌어준 그 책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내 기억 속 가장 소중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 인생의 나침반이었던 지창*형님, 나는 이 현장에서 스승을 만났다. 감사합니다.


분당3.jpg 건축 가이드 북 (미국)


뼈아픈 실수


태양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깊은 법 일까. 분당 현장은 나에게 기술적 성장뿐만 아니라 가장 뼈아프고 부끄러운 기억도 남겼다. 골조공사 중 10층 높이에서 측벽 거푸집이 추락했던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사고 당시의 처참한 광경에 난 큰 충격을 받았었다. Gang Form(갱폼)이라는 철제 거푸집이 없던 때라 목재로 제작한 대형 거푸집을 지름 48.6mm 철제 파이프 두 개를 기둥 삼아 체인블록으로 한 층 씩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는데, 여러 번 사용한 철제 파이프가 손상되어 부러지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이다.


다행히 경험 많은 골조업체 현장소장이 신속하게 수습하여 외부에 알려지진 않았으나, 작업 전 자재 상태를 점검하지 않았던 작업자의 조그만 실수 하나가 저렇게 엄청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또한 지하층에 보관해 두었던 단열재에 용접 불꽃에 의한 화재가 발생한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부끄럽게 한 것은 상가동 파일 공사 중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였다.


요즘에는 파일(PC Pile)을 시공하기 위해 GPS기반으로 측량을 하여 파일 위치를 표시하지만 그 시절에는 소위 파일 꽃 심기를 한다고 하였는데 목수 반장이 파일 위치를 측량해서 바닥에 붉은색 천을 못에 감아 파일 위치를 표시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곤 백색 횟가루를 뿌려서 눈에 잘 보이게 표시를 하였다. 물론 건축 시공담당이 확인 작업을 한 후 감리단 검측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도면 오류로 인하여 지하층이 없는 상가동 출입구 계단 하부의 파일 2본(pile)이 누락된 것이다.


잘못된 사실을 차마 보고할 용기가 없었던 젊은 날의 나는,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고 내가 가진 구조 지식을 동원하여 자체 검토한 결과 원 지반의 지내력 만으로도 지지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협력업체 소장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 고민 끝에 밤을 새워 포클레인을 동원해 땅을 파서 매트 기초를 만들어 모래와 자갈과 시멘트를 배합하여 콘크리트를 부어 넣고, 매트 기초 형식으로 변경하여 실수를 감추기로 했다.


비밀스럽게 진행된 그 밤의 작업은 평생 나의 양심을 짓누르는 무거운 채무가 되었다. 물론 하중을 많이 받는 주요 부위도 아니어서 굳이 파일이 필요 없는 부위였기도 하였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물에는 아무런 문제는 없지만 내 임의대로 판단해서 처리한것은 항상 찜찜하였다. 하지만 그때의 비겁함은 이후 나를 '정직하지 않으면 기술자가 아니다'라고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가장 쓴 약이 되었다.


분당에서의 시간은 나를 기술적으로 성숙하게 했고, 동시에 도덕적으로 단련시켰다. 매화마을의 그 높은 아파트들은 나의 실력과 양심, 그 두 가지 기둥 위에 세워진 결과물이다.


김포6.jpg 비밀의 야간 작업(사진: AI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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