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하늘을 향한 도약, 황금기의 시작_1

새로운 출발, 광양의 새벽: 포스코 광양기술연구소

by 김영조

대구에서의 시련은 뜻밖의 기회를 몰고 왔다.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당시 LG건설(현 GS건설)이라는 새로운 문이 열린 것이다. 마침 경력직 모집에 합격하여 대구 지하철 현장에서 지켜낸 기술자의 자존심은 내 인생의 준공 검사를 적격으로 이끄는 가장 위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LG건설(현 GS건설)이라는 대기업의 거대한 조직에 경력 대리로 입사하며 나의 건설 인생은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1990년대 중, 후반, 대한민국은 팽창하고 있었고 건설 현장은 그 최전선이었다. 이 시기는 나에게 있어 단순한 경력의 확장을 넘어, 기술자로서의 자부심과 한계 상황에서의 절박함을 동시에 맛보게 해 준, 그야말로 황금기이자 가장 뜨거웠던 용광로 같은 시간이었다.


나의 LG건설 첫 명함이 새겨진 현장은 전남 광양, 포스코 광양기술연구소였다. 광양제철소 내, 바다를 매립해 만든 약 15만㎡의 광활한 부지 위에 세워지는 이 연구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술 자립과 첨단 연구의 중심지로 도약하려는 포스코의 야심 찬 출발이었다. 본관동과 세 개의 연구동, 실험동 등이 들어서는 연면적 5만 6천㎡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바다를 메운 땅은 연약했다. 기술적으로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 하지만 현장의 공기는 기술적 난이도보다 훨씬 더 무겁고 거칠었다.


당시 포스코 특유의 ‘하면 된다, 까라면 까지 말이 많아?’ 하는 식의 군대식 강압적인 건설 문화가 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발주처인 광양제철 감독관의 위세는 실로 대단해서 감독관 앞에서는 항상 차렷자세로 있어야 할 정도였다. 건축공사만 별도로 발주받아 수행했던 포스코개발(현 포스코건설) 직원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또 다른 소위 갑질의 전형이었다.


경력 대리로서 나름의 자부심을 품고 현장에 왔던 나의 자존감은 그들의 거친 언사와 무리한 요구 앞에서 나의 인격과 자존심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곤 했다. 기술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이전에 감정적인 소모가 너무나 컸던, 참으로 힘겨운 현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은 나를 단련시켰다. 처음 접해보는 고급 건축물의 복잡한 디테일과 난도 높은 골조 공사를 하며 나는 기술자로서의 근육을 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남았다.


내가 거친 파도 앞에서 흔들릴 때마다 묵묵히 기다려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고, 발주처와의 거친 대결에서 나의 자존심과 인격적인 상처를 배려해 미리 타 현장으로 이동하게 해 준 함치* 소장님, 그리고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친구처럼 서로의 등을 토닥여 주었던 정해*, 정창* 동료들. 불행하게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중도에 이동발령이 되어 먼저 철수하였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그 짜디짠 바닷바람을 견뎌낼 수 있었다.


힘든 시기에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늘 사람과의 관계에서 배려 잘하고 솔선하는 사람 주변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따른다. 당연한 이치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06화2장. 건설인의 골조를 세우다_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