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하늘을 향한 도약, 황금기의 시작_2

대한민국 1호 할인점, LG마트 고양점

by 김영조

1996년, 나는 광양의 바닷바람을 뒤로하고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당시 능곡지구)으로 자리를 옮겼다. LG그룹이 유통업에 사활을 걸고 야심 차게 준비한 국내 1호 할인점, ‘LG마트 고양점(현 롯데마트)’ 건설 현장이었다.


지하 2층, 지상 6층, 연면적 약 7,200평 규모의 이 육중한 철근콘크리트 건물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공간이었다. 식품과 비식품을 한곳에서 파는 슈퍼센터 개념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고, 파격적인 24시간 연중무휴 영업을 내걸었다. 고객이 차를 타고 지상 3~5층 주차장까지 직접 올라갈 수 있는 램프(진입로) 시공은 공사의 핵심이었다.

쏟아지는 이마트, 까르푸, 홈플러스등 경쟁사들과의 치열한 유통 전쟁 속에서 공사 기간 단축은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골조 공사부터 마감까지 매일 밤 불을 밝히는 돌관공사가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 현장에는 나에게만 적용되는 특별한 운명이 있었다. 당시 내 집은 현장에서 불과 10분 거리인 행신동 무원마을 1단지였다. 시공 담당 대리에게 집이 가깝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자, 동시에 피할 수 없는 굴레였다.


“김 대리, 집도 가까우니까 오늘 야간작업 좀 부탁해.” 동료들이 사무실을 나설 때, 나는 어김없이 현장에 남아야 했다. 현장이 곧 집이었고, 집이 곧 현장이었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가짐은 달랐다. 지금 내가 시공하고 있는 저 건물, 저 바닥을 내 이웃들이, 내 가족이 밟고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충이란 있을 수 없었다.


Picture5.png 무전기로 지시하는 작가(사진: 작가 소장)


대형 마트 특성상 넓은 매장 슬래브의 평탄도는 생명이었다. 낮 동안 민원과 차량 통행 때문에 지연되었던 콘크리트 타설은 늘 밤늦게 시작되었다. 행신동의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맞으며 레미콘 차량을 유도하고, 마지막 미장 작업이 끝나 반들반들해진 바닥을 확인하고서야 집으로 향했다. 그 고요한 새벽, 오직 시공 기술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있었다.


LG마트의 상징인 붉은색 로고가 외벽에 붙던 날, 나는 밤새 투광기 불빛 아래 서 있었다. 가끔 응원차 온 아내가 현장 펜스 너머로 손을 흔들고 지나가곤 했다. 그 애틋하고 미안한 풍경이 나의 1996년 행신동의 기억이다.


고양1.png 당시모습 그대로의 외관(사진: 네이버)


보도블록을 던지다


1996년 가을, 준공을 코앞에 둔 현장은 폭발 직전의 압력밥솥 같았다. 우리는 개점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었지만, 현장 밖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인근 택지조성 공사가 지연되면서 마트로 들어오는 유일한 진입로는 진흙탕과 타 공사 차량으로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


그날도 야간작업을 위해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내일 아침 마감작업을 위해 자재 트럭들이 줄지어 들어와야 하는데, 택지조성 공사업체의 굴착기 한 대가 예고도 없이 도로 한복판을 점거하고 도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우리 자재 차량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경적만 울려댔다.

“기사님, 장비 좀 빼주세요. 우리 자재 차량 들어와야 합니다”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굴착기 기사는 들은 체도 않고 무심한 엔진 소리만 내뿜었다. 곁에 있던 토목공사 건설사(당시 동신주택) 직원의 거만하고 안일한 태도에 결국 이성이 끊어지고 말았다. 서로의 공기를 맞추기 위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상황에서 욕설이 오갔고, 순식간에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


분노와 절박함을 참지 못한 나는 바닥에 굴러 다니던 보도블록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성을 잃은 채 굴착기 붐대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던졌다. “ 야이, XX들아.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이놈들아”

깡!

날카로운 금속 파열음이 나는 순간 모든 이들을 일시 정지시켰고, 거칠기로 소문난 장비기사가 씩씩거리며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것은 단순한 돌팔매질이 아니었다. 막힌 공정에 가슴을 졸이던, 어떻게든 내일의 공정을 지켜내야 한다는 시공 담당자의 절규였다. 그 미친듯한 기세에 눌려서였을까, 결국 상대방 건설사 직원은 더러워서였는지 투덜투덜하면서 길을 비켜주었다.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타일과 마감자재를 실은 트럭들이 현장으로 들어왔다. 자재가 하차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웃들은 모두 잠든 시간, 흙먼지 묻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나는 다시 무전기를 고쳐 잡았다. 화려하게 빛나는 대형 마트의 간판 뒤에는, 이렇게 보도블록이라도 던져서 길을 터야만 했던 시공자들의 피 말리는 밤이 숨겨져 있었다.


고양3.png 골조공사(출처:AI 재구성)


전현*소장님을 비롯 이석*과장, 성기*과장, 백운*대리, 그리고 공사과장인 딱따구리 유제*과장, 건축 이*기사, 신입사원 전홍*기사와 관리담당 이종*대리가 현장 멤버였는데 지금은 다들 퇴직을 하거나 이직하고 전홍* 기사만 GS건설에 남아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Picture3.png 작가와 건축기사들(사진: 작가 소장)


준공 후, 나는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손님으로 그 매장에 들어섰다. 아내는 세일 품목을 고르느라 바빴지만, 나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카트를 밀면서도 천장 덕트의 마감 상태를 살피고, 매장 바닥의 에폭시 라이닝의 수평이 잘 맞았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내 땀과 절규가 섞인 건물에서 내 가족이 장을 보는 모습. 그것은 기술자만이 누릴 수 있는 묘하고도 뿌듯한 보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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