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하늘을 향한 도약, 황금기의 시작_3

신문로 흥국생명본사사옥

by 김영조


서울의 심장부, 서대문에서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신문로 길목 구세군회관 맞은편. 그곳에는 매 1분 17초마다 묵직한 망치질을 하며 노동의 신성함을 일깨우는 거인이 서 있다.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그 거대한 조각상을 품고 있는 건물은 태광산업그룹의 흥국생명보험 본사사옥이며 나에게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내 건설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전성기이자, 기술자로서의 자부심이 마천루처럼 솟아올랐던 기록이다.


이 건물은 지하 7층, 지상 24층 그리고 옥탑이 5개 층이나 되며, 연면적 72,054 m2 규모로 흥국생명보험의 남대문 시대를 대신할 본사사옥으로 도심 재개발을 통하여 1997.01월 착공 후 48개월의 대 장정 끝에 2000년 1월에 준공하고 입주를 하였다.


그 당시 흔치 않았던 R.C.D (Φ 2500, Φ3000), PRD(Φ800) 기초 공법을 적용한 RC Full Top Down 공법으로 시공한 현장으로 IMF라는 뼈아픈 시기에 강남 역삼동의 대표 프로젝트였던 GS타워와 같이 건설되었던 강북 최대의 빌딩 프로젝트였다.

gmdrnr.jpg 흥국생명보험 사옥 전경(사진: 구글)

두려움을 확신으로 바꾼 흙먼지 속의 독학


1996년 12월, LG마트 고양점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나는 신문로 현장으로 발령받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허*소장, 이석* 과장과 김영조대리 셋이서 처음 마주한 현장은 철거가 한창이었는데, 그 막막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수백 년 동안 묵어 온 서울 강북 구도심의 복잡한 인접 가옥들과 땅을 파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어지러운 각종 상하수 관로들. 그리고 당시로서는 생소하기 그지없던 RC Full Top-Down 공법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슬러리 월(Slurry Wall), RCD, PRD 등등 이름조차 낯선 최첨단 공법들과 거대한 장비들을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흙막이공사(사진: 작가 소장)
발주처, 감리단 건축담당(사진: 작가 소장)

인터넷도 없던 시절, 나는 발로 뛰었다. 탑다운 토공 전문업체인 삼보지질 전문가들을 붙잡고 밤낮없이 질문을 퍼부었고, 수많은 시공 사례들을 찾아 답사를 다니며 타 현장들의 실패사례들과 우수사례들을 분석했다. 현장 초기에는 거의 밤을 셀 정도로 날마다 기술서적들과 씨름을 했다.


적어도 각종 기술서적과 장비 Manual들을 수십권은 공부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장비 제조사에서 제공한 원문 Manual에서 정말 많은 지식을 얻었고, 기술에 대한 이해가 높았던 것 같았다. 그때 얻었던 교훈으로 난 항상 새로운 자재나 장비, 또는 시스템을 접할 땐 Manual과 Material Specification을 자세하게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고, 이 부분은 지금도 기술자가 가져야 할 아주 중요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후배들에겐 국내 장비나 자재가 아닌 경우는 반드시 원본 매뉴얼을 찾아 직접 확인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


Top Down 지하 공사 중 지하 7층까지 내려가는 열악한 환경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비 매연과 먼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무리 강제 환기 설비를 하였다고는 하나 현장을 한 바퀴 돌고 나와 코를 풀면 하얀 수건이 새카맣게 변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검은 그을음은 나에게 훈장이었다. 김 모 반장님을 비롯한 상진건설의 진짜 목수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부딪히며, 나는 이론만이 아닌 몸으로 신공법의 토대를 쌓아갔다.


평생을 해 온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던 골조업체 소장님과 목수 책임자는 공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실패사례등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나와의 설전에서 번번이 고개를 숙이곤 하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젊은 과장 놈이 얼마나 똑똑한지 정말 힘들어, 함부로 했다가는 큰일 나겠어”라고 자기들끼리 경계를 많이 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러기에 잘못된 작업지시나 공정 조율의 실수로 인한 재시공을 한 적이 거의 없었으므로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많이 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골조공사가 끝나갈 무렵 골조공사 현장소장이 저녁 자리에서 “어려운 공사였는데 김 과장님이 있어서 돈도 벌었고 우리도 또 배웠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라고 진심 어린 표현을 해 주었을 땐 사실 뿌듯하기도 했다. 기술자는 자기 분야의 기술지식이 완벽하여야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존중받을 수 있음을 실감했다.


지금은 대부분 철골버팀보를 활용하여 Top Down 지하공사를 하지만 흥국생명사옥 현장은 S.O.G (Slab on Grade) 시스템을 이용한 재래식 공법이었으므로 토공사와 골조공사의 Sequence와 일정관리가 아주 중요하였다. 자칫 한쪽으로 치우치면 공정 전체가 흔들리는, 말하자면 대안이 없는 외길밖에 없는 공법이었기에 날마다 머리를 맞대고 소통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밖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날마다 전쟁이었고 현장의 작업 여건은 최악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같이 했던 토공, 철골, 골조공사의 협력사 소장님들과 작업팀들의 실력과 기술자로서의 자존심은 실로 높았다.


그분들 덕분에 함께 한 그 시간이 나에게도 영광이었고, 지지 않겠다는 노력과 기술지식을 습득한 덕분에 건축 기술자로서의 역량 향상과 리더십을 배울 수 있었고, 이후 GS건설 사내에서 탑다운 전문가라는 평을 받을 수 있었음에 지금도 감사한다.


발주처, 감리단 건축담당(사진: 작가 소장)


열정으로 똘똘 뭉친 팀웍


이 프로젝트의 백미는 단연 지하 기초 콘크리트 타설 작전이었다. 도심 한복판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대형차 통제 시간과 출퇴근 시간 교통정체등 낮 시간에는 수백 대에 달하는 레미콘 차량의 진입이 거의 불가능했다. 우리는 고민 끝에 차라리 퇴근시간 이후에 시작해서 새벽 6시까지 철야 콘크리트 타설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나의 생각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제일 먼저 발주처, 감리단, 현장소장님과 협력회사를 설득하고 동의를 받아야 했고, 레미콘 공장을 설득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했으며, 경찰서를 설득하고, 인근 주민들에게도 양해를 구하며 치밀하게 작전을 짰다.


차량 통행이 뜸해진 심야 시간, 적막한 신문로의 어둠을 뚫고 첫 번째 레미콘 차량의 라이트가 현장을 비췄다. 시작합시다! 신호와 함께 거대한 펌프카의 엔진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줄지어 들어오는 레미콘 트럭들의 불빛은 마치 어둠 속의 기함들 같았고, 기계음은 장엄한 교향곡처럼 들렸다.


새벽 6시, 동이 트기 직전 마지막 한 방울의 콘크리트가 채워지는 순간, 우리는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날 새벽의 성공은 대리에서 과장으로 성장하던 나에게 기술자로서의 무게감을 온전히 실감하게 해 준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이렇게 지하를 담당했던 안봉*과장님과 류재*대리의 도전과 추진력은 흥국생명빌딩의 윤활유이자 우리 모두의 은혜였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힘든 내색 한번 없이 책임을 다해준 지하팀이 있었고 그리고 지상층을 담당해 준 염경*대리, 설재*대리도 신문로 대로변에서 두말 할 것 없이 고군분투 하였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그 어려운 건물을 완성시킨 일등 공신이었다.


요즘같은 건설 환경에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그 시절엔 절실함에서 묻어 나온 몸부림이었고, 열정이었다. 유태*본부장(현 태광산업 대표)을 비롯한 발주처 건설본부 전 직원, 감리단 직원들 그리고 LG건설의 안봉*과장(현 관리소장), 류재*대리(현 GS건설), 염경*대리(현 현장소장), 설재*대리(현 GS건설 현장소장), 윤필*과장(현 GS건설 현장소장), 변배*부장(현 태광산업 본부장), 오윤*과장, 오인*대리, 나채*부장, 장*과장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부소장을 맡았던 하태*차장과 협력회사 직원들.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았고, 포기하지도 않았으며, 다 함께 오로지 열정으로 똘똘 뭉쳐 외치며 만들었던 흥국생명사옥 빌딩이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1997년 IMF를 겪으면서 구조조정에 따른 인원 감축으로 동료 한 명이 고배를 마셨고, 건축 신입사원 한 명이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 퇴사 한 것은 옥에 티라고나 할까.



1밀리미터의 미학, 그리고 옥상의 드라마


흥국생명 사옥은 예술적 완성도에서도 타협이 없었다. 외벽의 알루미늄 커튼월과 스페인산 화이트 펄 화강석이 만나는 줄눈(Joint) 하나까지 밀리미터 단위로 관리했다. 워낙 깐깐한 발주처 팀장과 그룹 오너의 관심 덕분에 커튼월 Mock up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고, 스페인산 석재 검수를 위해 건설본부장이 직접 석산에 가서 석재 원석 컨테이너에 사인을 할 정도로 애정을 들이다 보니 시공정밀도를 밀리미터 단위로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지금도 이 건물은 준공한지 25년이 지났지만 마치 몇 년 전에 지은 건물처럼 아주 말끔하다.


외벽공사를 담당했던 설재*대리는 아마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라면 그 당시 고생한 생각을 하며 아마 손사레를 칠지도 모를거 같다. "재*아. 그때 정말 고생많이 했어. 이건창호와 천연석재는 아마 전생에 너의 형제였을거야."


염경*대리와 설재*대리가 담당했던 지상층 건물 옥상에 세워진 20미터 높이의 스테인리스 원통형 첨탑과 군사 보안 시설, 헬리포트 시공은 기술적 난이도의 정점이었다. 북쪽으로는 광화문과 경복궁 뒤편이 훤히 보이고, 남쪽으로는 덕수궁이 발아래로 펼쳐져 보이는 상징성이 있고 랜드마크가 되는 건물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징성 있는 뭔가가 필요했는데 바로 옥탑 서측면에 설치 한 원형 첨탑이다. 일반적으로 첨탑이라 하면 옥상 같은 바닥에 설치하는 것이 대부분이나 건물 측면에 자그마치 20미터나 되는 직경 600밀리미터짜리 스테인리스 원형첨탑을 세웠다. 제작부터 설치(충남공영)까지 국내에 거의 사례가 없을 정도의 시도였으므로 지금도 헬리포트와 함께 너무나 늘름하게 떡 하니 신문로를 지키고 광화문의 하늘을 지키고 있다.


또한 옥상 중앙에 위치한 타워크레인을 해체하던 밤은 지금도 심장이 쫄깃해진다. 협소한 공간 때문에 대형 크레인을 쓸 수 없어, 옥상에 별도의 데릭(Derrick)을 설치해 야간 해체 작업을 강행했다.


외벽 유리와 매달린 장비 사이의 간격은 고작 1미터 남짓. 지상에서 비추는 강렬한 투광기 불빛 아래, 당시 발주처 유태* 건설본부장을 비롯하여 전 직원이 숨을 죽이고 현장을 지켰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마지막 자재가 무사히 상차되었을 때의 그 카타르시스는 겪어보지 않은 이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건설본부장의 마지막 한마디는 그간의 모든 시름을 다 해소하기에 충분했다.


“김 과장, 정말 고생했어. 이 빌딩에 LG건설 직원들 모두의 정성이 담겼어. 정말 고맙다”


기술자는 이 한마디로 족했다.


덕수궁에서 바라본 흥국생명빌딩(사진: 연합뉴스)
흥국5.png 내부 유리 계단(사진: 작가소장)

지국회, 25년을 이어온 약속


지금 돌아보니 흥국생명 현장은 내게 최고의 스승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당시 허* 소장님은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셨고, 덕분에 나는 거침없이 날개를 펼 수 있었다. “김과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 너 믿는다” 이 말씀에 난 단 한 번도 소장님께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한 번은 철골 협력업체 임원이 현장에 와서 나와한 약속을 현장소장님한테 가서 핑계를 대면서 번복한 적이 있었다. 소장실에서 나오면서 자리에 앉아 있는 나에게 의기양양하게 큰소리로 “김 과장님, 소장님 하고 얘기 다 끝났으니까 그리 아세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또 한 번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난 1초도 안 걸려 폭발해 버렸다.


“ 뭐라고요? 나하고 한 약속을 왜 소장님한테 가서 번복을 하세요, 그러면 앞으로는 소장님 하고 직접 일하세요. XX”이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소장님실에 달려가 저 업체 당장 잘라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 적이 있었다. 물론 나중에는 서로 화해하고 잘 지냈지만 일에서 만큼은 현장 소장님의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업고 절대 식지 않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갑이지만 갑질하지 않았던 발주처 흥국생명보험, 다소 까칠하고 거북했지만 실력 있었던 감리단과 설계사 진아건축, 그리고 열정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LG건설(현 GS건설)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던 그 조직은 그야말로 드림팀이었다.


그 인연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발주처, 설계사, 시공사가 멤버인 지국회(엘건설 흥생명)라는 모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월이 흘러 벌써 두 분의 소중한 동료를 먼저 떠나보냈지만, 우리는 여전히 만나면 그날의 무용담을 안주 삼아 행복했던 시간을 마주한다.


신문로를 지날 때면 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어 그 건물을 바라본다. 망치질하는 사람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그 치열했던 밤의 현장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흥국생명 사옥은 내 청춘의 열정이 빚어낸,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건축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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