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에서 수원까지
흥국생명 사옥이라는 거대한 정점을 찍은 후, 나의 발걸음은 더욱 다양한 현장들로 이어졌다. 이 시기는 내가 ‘현장소장’이라는 첫 직함을 달았던 시기이자, 새로운 마감 공법을 체득하고 사내 외에 전파하며 기술자로서의 영향력을 넓혀간 진정한 내실의 시기였다.
2000년 1월, 내 건설 인생에서 처음으로 현장소장이라는 막중한 명칭을 부여받은 곳은 경기도 포천이었다. 비록 대형 마트에 비하면 소규모인 지역 밀착형 슈퍼마켓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어느 프로젝트보다 커 보였던 현장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단 6개월. 개점 날짜를 맞추기 위해 착공부터 야간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전형적인 돌관공사였다. 포천의 겨울은 매서웠다. 서울과는 차원이 다른 칼바람과 낮은 기온은 동절기 공사 관리의 최대 적이었다. 교통 여건도 좋지 않았고 작업자를 수급하는 일조차 녹록지 않았다.
과장 직급으로 혼자 현장을 책임지며 밤낮없이 뛰어야했다. 얼어붙은 땅 위에서 레미콘 타설을 지휘하고,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PEB 철골 구조물을 설치하며 컨테이너 사무실의 전기난로 온기에 의지해 공정을 수정하며 보낸 그해 겨울과 봄. 마침내 기한 내 준공을 마치고 화려한 조명 아래 슈퍼 마트의 문이 열리던 날, 나는 차가운 포천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규모는 작았을지언정,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책임졌던 나의 첫 번째 현장이었기에 그 뿌듯함은 대형 현장 못지않게 뜨거웠다.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 준 협력회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고 평소 좋은 관계를 가졌던 덕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건설은 사람이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포천 현장을 준공하고 기술 지원이 필요하여 발령이 난 LG전자 안양연구소 현장은 나에게 R&D 건축이라는 정밀한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미세한 진동조차 연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고난도 현장이었기에, 모든 공정에는 완벽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했다.
이 현장에서 나는 두 가지 큰 기술적 성취를 이뤘다. 하나는, 국내에 막 도입된 DD FLOOR(시멘트판 OA Floor) 시스템의 적용이었다.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연구소 바닥의 OA Floor 시스템에 기존의 목재나 스틸 패널보다 원가가 저렴하면서도 시공이 간편한 시스템이 필요했다.
마침 일본의 신 기술을 국내에 도입한 벽산니또보 제품이 있었고, 이 새로운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수차례의 목업(Mock-up) 시공과 기술 검증을 하면서 OA Floor에 대한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평활도, 보행감, 시공성등 원가 대비 손색없는 시스템임을 확인하고 현장에 적용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이후 많은 현장에 이 시스템을 확대 적용함으로써 원가 절감에 크게 기여한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는 주차장 기둥 마감의 패러다임을 바꾼 수지미장 공법의 도입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반 건물의 주차장 벽면은 페인트 작업을 하기 전 바탕처리 작업으로 단순히 시멘트 풀칠을 하는 견출이라는 저렴한 마감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평활도가 불량하고 품질이 조잡했다.
당시 현장소장님의 제안으로 미장과 견출의 장점을 결합한 수지미장을 Pilot로 시공하기로 하고 내가 직접 담당해서 추진했다. 시멘트에 접착제를 혼합해 2~3mm 두께로 매끄럽게 펴 바르는 이 방식은 주차장의 마감공사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고 발주처로부터 공사원가 개선과 품질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큰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안양연구소 현장은 콘크리트 면의 평활도와 매끈한 면을 만들기 위해 15밀리미터 두께의 시멘트 몰탈을 덧 바르는 미장이라고 불리는 작업으로 시공하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이러한 시공법은 차량의 진동이나 사계절의 기온 변화로 인해 탈락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사실 알면서도 달리 대안이 없다 보니 하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시공방법을 개선하는 방향으로만 기술자들이 고민을 했었다. 이 현장에서 과감하게 적용한 수지미장 공법의 성공 사례는 이후 사내 외로 널리 전파되어 오늘날 건설 업계의 표준 마감 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김승*(현 KT ESTATE대표) 소장님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꼼꼼한 기술적 안목을 가진 그분은 나와 같은 고양시 행신동 무원마을 주민이기도 했다. 2001년 내가 허리 수술로 입원해 있을 때 마치 가족처럼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기도 했던 고마운 분이다. 훗날 그가 건축수행본부장으로 취임하면서 나를 본사 기술팀장으로 발탁하며 내 인생의 이정표를 세워준, 잊지 못할 은인이자 선배 기술자다.
2002년 초, 대한민국이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그때 나는 수원의 새로운 경제 중심지 인계동에 있었다. 수원의 금융 타운을 완성하는 화룡점정, LG화재 수원사옥 프로젝트의 공사과장으로 선발된 것이다. 기존 건물의 철거부터 복잡한 흙막이 공사 설계까지, 흥국생명 현장에서 쏟았던 열정을 다시 한번 불태웠다. 인계동 사거리의 매서운 찬바람을 맞으며 지하 4층 터파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 긴 공정이었지만, 밤낮없이 뛴 덕분에 현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이 현장 역시 도심지 공사였기에 Slurry Wall 차수벽과 Earth anchor와 Strut 지지 공법으로 지하공사를 하였고, 부지 후면엔 KBS 드라마 제작 센터가 전면 도로보다 20미터가 높은 위치에 있었다. 대지 고저차가 크다 보니 건축 설계에도 풀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당시 설계 사무소는 간삼종합건축사사무소였는데 설계의 완성도가 높지 않았던 터라 현장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건축가의 설계 의도가 100퍼센트 충족하도록 시공사 입장에서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후 우리는 급속도로 친밀해졌고, 그 이후 시공 과정에서 설계문제로 이슈가 된 일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난 현장의 기술직 직우너들은 짓고 있는 건물에 대해 건축가의 진정한 설계 의도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아무리 복잡한 문제가 있더라도 의외로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리를 알아야 해결책도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곧 기본과 원칙의 준수라고 믿고 있다.
골조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02년 9월, 현장 소장이었던 박홍*소장이 LG북경타워 현장으로 발령 나면서 얼마 후 나 역시 같이 이동하게 되어 공사를 마무리 하진 못했지만, 후임 전수*소장과 함께 뱀띠 동갑내기였던 김화*(현 한결에이스 대표), 양승*(개인사업), 김진*(현 한미글로벌 이사)과장과 보낸 그 시절은 기술자로서 누릴 수 있는 치열함과 여유가 공존하던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뱀띠 넷은 "GS'4미래"라고 이름 짓고 그때의 추억을 잊지 않으려 열심히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