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FC(서울국제금융센터)
대수선 공사를 마친 나는 더욱 단단해져 현장으로 복귀했다. 2009년 1월 2일, 나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바꿀 초대형 프로젝트,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SIFC) 현장에 투입되었다. 최고높이 284미터(54층) 포함 4개의 타워, 지하 5층, 연면적 507,000m 2의 대규모 복합 공간을 짓는 것은 단순한 건설 공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이자, 한국 건설 기술력의 현주소를 세계에 증명하는 무대이며 거대한 도전이었다.
특히 284미터(준공당시 서울시 최고 높이), 200미터, 170미터 높이의 3개 오피스 타워와 200미터 36층 호텔 타워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속도전은, 마치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는 것과 같았다. 고성능 콘크리트의 배합, 초고층용 펌프카의 성능 검증, 그리고 매 순간 변화하는 풍속과 온도에 대응하는 철골 안전 관리까지, 우리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정밀 기술자가 되어야 했다.
이 현장의 기술적 특징을 소개하면,
첫째, 인공위성 기반의 초정밀 수직도(Verticality) 관리로 전통적인 광파기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GNSS(Global Navigation Satellite System) 기술이 도입되었다. 건물 상단에 3~4개의 GPS 수신기를 설치하고, 지상의 기준점과 연동하여 건물의 절대 좌표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기상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밀리미터(mm) 단위의 수직도를 유지할 수 있고, 이는 엘리베이터 레일 설치와 커튼월 정밀 시공의 기초가 되었다.
둘째는 횡력 저항 시스템으로 아웃리거 & 벨트 트러스(Outrigger & Belt Truss)를 적용하여 코어와 외곽 메가 칼럼을 연결함으로써 건물 전체의 강성을 높였다. 이를 통해 건물 상부의 변위를 획기적으로 줄였으며, 입주사들에게는 기둥 없는(Column-free) 넓은 내부 공간(코어에서 외벽까지 약 12~13m)을 제공할 수 있었다.
셋째는 하이테크 코어(Core) 시공 기술(코어 후행)로 별도의 타워크레인 도움 없이 유압잭을 이용해 거푸집이 스스로 상승하는 ACS(Auto Climbing System) Form이 채용되었고, 국내 최초로 코어 후행공법을 적용하여 원가 절감과 함께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하였다.
넷째는 크리스털 커튼월 디자인으로 아키텍토니카(Arquitectonica)의 설계에 따라 조각된 크리스털 형상의 역동적인 외관을 구현했다. 이는 심미성뿐 아니라 공기역학적으로 풍하중을 분산하는 역할도 하였다.
마지막은 Column shortening 반영으로 초고층 빌딩에서 철골 기둥과 RC 코어의 수축률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미리 계산하여 시공 시 철골기둥을 설계치보다 약간 더 길게 제작하는 Up-shortening 기법을 적용했다. 층별로 센서를 설치해 실제 축소량을 측정하고, 그 데이터를 피드백하여 상부층 시공 시 보정치에 반영하는 고난도 구조 관리 기술이었다.
초고층 현장은 자연의 섭리와 중력에 저항하는 최전선이다. Tower가 완공되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위기와 맞닥뜨렸으며, 그때마다 공학적 냉철함과 치열한 현장 관리로 이를 극복하였다.
첫 번째는, 내가 아제르바이잔에 있을 때인 2007년에 여의대로 지반 침하(싱크홀) 발생으로 공사 초기 대심도 굴착이 진행되던 중, 인접한 지반이 일부 침하하며 대형 싱크홀이 발생한 사건이다. 이는 여의도가 모래섬이라는 지질적 특성과 한강 수위의 영향으로 지하수 제어가 극도로 어려웠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토류판 흙막이의 이음부 등 미세한 틈으로 토사가 지하수와 함께 유출된 것이 원인이었다. 즉각적인 도로 통제 및 긴급 복구 작업과 함께 차수벽의 무결성을 재검증하고, 지반 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계측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여 추가적인 붕괴 위험을 원천 봉쇄하며 주민 불안을 해소했다.
두 번째 아픈 기억은 콘크리트 타설 장비 낙하 사고였다. Tower C 골조 공사가 한창이던 2009년 9월 11일 아침, 지상 약 12층 높이에서 콘크리트 타설을 위해 설치된 CPB(Concrete Placing Boom) 장비의 지지 구조물이 파손되면서 하부층으로 추락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소중한 현장 근로자가 목숨을 잃고 다수가 부상을 입었다.
비록 내가 담당한 구역은 아니었지만, 이를 수습하기 위하여 500톤 크레인을 동원해 한 밤중에 상공에 매달려 있는 CPB를 철거하던 일은 전 직원 100명이 혼연일체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처리하기도 했다. 현장의 안전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명복을 빈다. 현장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가장 가슴 아프고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 순간이었다.
사고 직후 전 현장의 작업을 중단시키고 강도 높은 안전 진단과 원인 규명에 착수했다. 이 사고를 계기로 고소 작업 장비의 설치 및 운용 매뉴얼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다중 안전 잠금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현장의 안전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는 고강도 혁신을 단행하게 되었다.
세 번째는 초대형 태풍의 내습 (곤파스 2010, 볼라벤 2012)이었다. 초고층 건설 현장에서 바람은 가장 큰 적이다. 2010년 태풍 '곤파스'와 준공을 앞둔 2012년 태풍 '볼라벤' 등 기록적인 강풍을 동반한 태풍들이 서울을 강타했을 때, 현장은 전시 상황과 다름없었다.
특히 200 미터 상공의 타워크레인과 외벽 커튼월이 강풍에 직접 노출되었다. 태풍 내습 전, 모든 타워크레인의 브레이크를 풀어 바람 방향에 따라 회전하게 하는 웨더 베이닝(Weather-vaning) 조치를 취하고, ACS 폼과 야적 자재들의 결속 상태를 밤새 점검하며 비상 대기 체제를 유지했다.
또한 태풍 볼라벤 당시에는 막 시공된 커튼월의 파손을 막기 위해 전 직원이 필사적으로 방재 활동에 매달렸고, 결국 단 한 건의 대형 구조물 피해 없이 소중한 마천루를 지켜냈다.
시공과정의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정말 많았다. 4개 타워를 연결하는 Podium 공간 중앙에는 파빌리온(Pavilion)이라 불리는 선큰이 있는데 유리지붕의 구조물이 Φ200 강관 튜브로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다양한 각도로 이어지는 연결부위등이 지금이야 3D 설계가 보편화 되어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소프트웨어 지원이 없어 손으로 그림을 그려도 보고 스티로폼으로 수십 차례 만들어도 보고 하면서 복잡하고 기형적인 구조물을 오로지 머리와 손으로 완성해 낸 양준호기사,
그리고 Retail 지하 2층에 대형 쓰레기 수거차량의 진입을 위한 대공간 장스팬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초중량 대형 철골보 설치가 필요했다. 철골보 크기가 높이 3.2미터, 길이가 18미터에 1개 무게가 무려 50톤에 달하는 초중량 대형 철골보를 설치하여야 하는데 현장 내에서 중량물을 인양할 수 있는 장비 공간이 부족하여 왕복 16차선 여의대로의 3개 차선을 점용하고 새벽시간에 대형 크레인을 이용하여 철골보 설치를 준비하고 주도했던 신광식기사,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순간은 TOWER “C”의 옥탑층 마지막 철골구조물을 올리던 날이었다. 오전 10시, 여의도의 강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마지막 철골 부재가 타워크레인에 매달려 200미터 상공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지상에서 바라본 그 모습은, 내가 대학시절 1톤 트럭을 몰며 꿈꿨던 뽀대 나는 인생을 넘어, 한 기술자가 자신의 땀으로 하늘에 그리는 서명 같았다. 무전기 너머로 “부장님, 설치 끝났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라며 나를 목메게 했던 장강우기사,
또한 최고층 건축기사로 발바닥 부러 터도록 뛰어다니며 여의도의 역사를 만들었던 오재진기사, 이 네 명은 여의도 국제금융센터현장이 신입사원으로 입사 후 첫 현장이었다. 20년 전 내가 신입사원으로 첫 현장에서 가졌었던 그 열정과 불꽃이 이 친구들에게도 활활 타고 있었다.
이 네 명의 신입 건축기사들이 여의도의 역사를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고 난 자신 있게 말한다. 물론 이들이 역량을 다 발휘하고 열정을 다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선배이자 멘토였던 김장*차장(현 자이 C&A본부장)과 고재용 차장(현 자이 C&A 현장소장)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이 두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열정과 노력 앞에 장애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들의 역할을 보며 나는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현재 이들은 각자의 서로 다른 자리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역할들을 하고 있다. 이들 덕분에 이 건물이 앞으로도 수백 년 동안 여의도를 지켜볼 것이라고 자부한다.
현장 규모가 큰 만큼 사연들도 많았다. 2010년 4월, 외벽에 사용할 석재 검수를 위해 이탈리아에 갔다가 하필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인해 비행기가 결항되면서 며칠 동안 발이 묶여 있었는데 하필 일행이었던 감리분의 부친께서 사망하셨는데도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일, 티르키에 산(産) 특수 대리석을 찾기 위해 중국의 온갖 석재대리점과 전시회들을 찾아다니며 헤매었던 일, 전면 스테인리스 캐노피 시공 후 현장소장과 의견이 달랐는데 내가 태어나 들은 욕 중 가장 심한 욕을 듣선 현장소장과 한바탕 다투고 다소 어색한 사이가 되었던 일들이 기억난다.
GS건설, 대림산업, 현대산업개발, 포스코건설 4개 회사 컨소시엄이었는데 나와 동갑인 대림산업 이규*부장, 현대산업개발 김달*부장은 요즘도 가끔씩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옛 추억을 나누는 사이로 지낸다.
SIFC는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로 울다가 웃다가를 수없이 반복하며 스스로를 담금질하게 하였고, 한편으론 역시 현장은 사람이 하는 것이며 사람이 곧 자산임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고 나를 다시 현장 기술자의 심장으로 뛰게 한 프로젝트였다. 그 압도적인 규모만큼이나 거친 파고를 넘어야 했던 현장이었고,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대한민국의 금융 중심지를 재 정의 한 역사적 대업이었다.
SIFC의 마지막 층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았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성취감이 아니라 안도와 자부심이었다. 수천 명의 땀방울을 함께 하며 한강변에 새로운 랜드마크를 일구어낸 시간들. 그것은 단순한 시공이 아니라 서울의 새로운 중심을 세우는 거룩한 여정이었다.
SIFC는 지금도 여전히 여의도의 하늘을 지키고 있으며, 나의 뜨거웠던 건설 인생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