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바람을 맞으며 서다, 해외 현장의 시간들_5

2008년 12월 31일, 여의도 성모병원의 경고

by 김영조

2008년 12월 29일 캄보디아에서 국내로 철수하며 6년여의 해외현장 근무를 마무리하였으나 가족들은 아이들 학교문제로 북경에 있어 할 수 없이 혼자 귀국하여 서여의도에 오피스텔을 렌트하여 짐을 풀었다.


한동안은 캄보디아에서의 미완의 공사들, 그리고 갑작스레 7년 만에 접하는 국내현장. 막막함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던 것 같다. 건설인의 삶이란 늘 이렇듯 예측 불가능한 변수에 노출되어 있었다.


2008년 12월 30일, 세상이 새해를 맞이할 준비로 들떠 있던 그날 밤. 오피스텔에 쉬고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복통과 함께 혈변을 쏟았다. 덜컥 겁이 났고 정신없이 택시를 잡아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온 기계가 마침내 비명을 지른 것이었다. 2일간의 정밀 검사결과 진단은 소장에 구멍이 나서 피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만성적인 과로와 스트레스, 해외 생활의 불규칙한 생활습관과 음주, 흡연등 제대로 돌보지 않은 내 몸, 그리고 만성적인 두통으로 현장에서 진통제처럼 복용했던 아스피린의 부작용이 겹친 결과였다. 의사는 내 위장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경고를 보냈다고 말했다.


보호자 없이 응급실 침대에 누워 희미한 의식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는 지난 19년간 내가 참여했던 많은 프로젝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울산의 아파트, 분당의 매화마을, 그리고 북경의 트윈타워까지. 나는 세상의 풍파에도 끄떡없는 견고한 건축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초 공사는 부실하게 다루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이라는 토대 위에 과로와 음주, 흡연이라는 부실자재를 계속 쌓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12월 31일 새벽 1시, 병실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여의도 63 빌딩이 반짝였다. 나는 그 빛 속에서 나 자신에게 대수선 공사를 결정했다.


그날, 나는 20년간 한 몸처럼 피워왔던 담배를 단숨에 끊었다. 그것은 단순한 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내 인생의 설계도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획기적인 결단이었다.


나를 지탱했던 것은 건물이 아니라, 내가 지켜야 할 가족이었고, 내가 걸어야 할 명예로운 기술자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받은 경고는 나를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또렷한 등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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