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바람을 맞으며 서다, 해외 현장의 시간들_4

Phnom Penh IFC Cambodia

by 김영조

Phnom Penh IFC, Cambodia(연면적 553,228 m2) 현장은 프놈펜 시내 메콩강변을 신도시로 개발하는 개발구역에 위치하여 52층 초고층 복합빌딩과 한국형 고급아파트를 짓는 프로젝트로 부지 면적이 6.4ha( 64,000m2)로서 GS건설의 캄보디아 진출 첫 사업이었으며, 건축사업본부와 주택사업본부가 협업해서 수행해야 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캄보1.png Phnom Penh IFC 조감도(사진: GS건설)


캄보2.png 평면도


그 당시 공사비가 약 십억달러 규모였는데 당시 1달러에 950원이었으니 지금으로 보면 초대형 프로젝트였으므로 현장 조직 구성 또한 화려하게 꾸려졌다. 건축사업본부와 주택사업본부의 우수한 인원들로만 선발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사업의 성패가 회사의 사운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었다. 때문에 두 사업본부 본부장들의 관심과 의욕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상무급 주재 임원이 있었고 건축소장과 초고층 시공조직, 주택소장과 공동주택 시공조직, 그리고 공무/관리등 공통조직등 실로 방대한 조직이 구성되었다.


해외현장 유경험자들 우선으로 조직이 구성되었고 영어구사 능력이 가능한 직원들이 사내에서 선발되었다. 나 역시 해외 현장 경험자이며 초고층 전문가 그룹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 철수 후 곧바로 합류하였다. 또한 현지 Sub Contractor 및 자재 장비 조달을 위한 본사의 구매공무 조직도 별도로 팀을 만들어 현지에 상주하게 되었다. 물론 향후 이어질 사업에 대한 지원까지 고려한 조직이었다. 마치 하나의 건설회사가 만들어진 듯한 조직 규모였다.


캄보4.png 착공식에 참석한 훈센 총리(사진: 머니투데이)

사업부지는 풀이 무성한 정글 같은 나대지였고 담장하나 사이로 러시아 대사관이 위치하고 있어서 부지정지 및 초기 Mob공사에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GS건설이라는 한국기업의 브랜드였기에 기존 캄보디아 현지에 진출해 잇는 동남아국가(일본, 태국, 베트남등) 건설사들과는 차별화가 필요했고 GS건설의 캄보디아사업 전초기지였기에 한국에서와 같은 수준의 Mob 계획을 세웠다.


현지에서 처음 시도하는 RPP휀스, 자동 세륜시설, 3층 규모 현대식 시설을 갖춘 가설사무실, 가설전기시설등 대부분 한국과 중국에서 자재를 수입하여 시공하였다. 또한 프로젝트 규모가 워낙 컸으므로 동남아 건설사는 수행 역량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태국의 메이저 건설사와 중국건설사를 대상으로 입찰을 통하여 업체를 선정하고 착공을 하였다.


캄보3.png 프놈펜 시내 전경(사진: 구글이미지)

초고층빌딩에 대한 기술적인 이슈들은 이미 베트남 프로젝트 수행 준비 과정에서 충분히 준비가 되어있었다. 자재 장비 또한 한국을 비롯한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등 survey를 통해 supplier를 충분히 확보한 상태였다.


동남아 지역의 공통적인 연약지반에 대한 현장타설말뚝(Bored Pile)과 흙막이 공사의 기술적 해결이 가장 큰 숙제였다. Bored Pile은 특별한 문제없이 시험시공 및 동재하 시험을 통해 실증 검증을 마쳤고, 흙막이공 사는 현지의 여건 상 Slurry wall + Earth anchor 공법이 가장 경제적이면서 적합한 공법으로 검토하였는데 문제는 연약지반에서 어스앙카의 정착력 확보가 관건이었다.


물론 베트남 프로젝트에서도 동일한 문제로 여러 번 시험시공을 하고 데이터를 확보하였지만 캄보디아의 지반은 베트남과는 달랐다. 수개월 동안 기술본부 토질기초팀과의 수차례 시험시공 과정을 거쳐 최종 공법으로 확정하고 모든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한 후 순조롭게 착공을 하였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뙤약볕과 스콜의 소나기 아래에서도 초기 가이드월 공사는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슬러리월 공사에 소요되는 수백 톤의 철근도 중국에서 수입하여 현장에 야적을 해 둔 상태였다.


2008년 9월에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부동산 개발사업은 거의 대부분 중단의 위기에 봉착했다. 나는 마치 또 벼랑 끝에 섰던 기분이었다.


공사 착공 후 수 천 톤의 철근을 수입하여 현장에 산더미처럼 쌓아 두었고 공사규모에 걸맞은 현장사무실도 3개 동이 나 구축을 완료한 상태였다. 또한 시공을 위해 파견된 직원만 해도 30명, 현지 채용 엔지니어 30명 등 많은 인원들이 혼란에 빠졌고 본사의 사업 축소에 이은 철수 결정에 따라 Demob 절차를 밟는 과정이 3개월 정도 소요되었다.


그동안 진행해 왔던 업체들과의 정산작업을 마치고, 1년여의 캄보디아 생활을 접고 2008년 12월 29일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도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금도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당시 부소장을 맡고 있던 내가 현지에서 채용한 엔지니어들에게 회사의 상황과 갑작스러운 사업철수에 따른 직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직접 설명하는 것이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할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날마다 기술회의 하고 자재 survey 하러 다니며 파이팅을 외치며 희망고문 했는데 그 직원들을 하루아침에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통보를 하는 게 정말 마음 아팠고 미안했다. 지금도 그들이 눈에 선하다.


이렇게 2002년 시작한 나의 해외현장 생활은 캄보디아 프놈펜을 끝으로 마무리했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머릿속에 혼재했다. 하지만 낯설고 힘들었던 해외에서의 숱한 사연 속에서도 미련은 없었다. 회사는 항상 냉정하다. 그저 개인의 혼돈이고 알아서 정리를 해야 한다.


자그마치 6년이란 시간을 한국을 떠나 있었기에 마치 유럽여행 후 시차적응이 필요하듯이 나도 한국과의 시차에 대한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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