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색정남녀> (Viva Erotica, 1996)
원초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
두 영화에서 흥행 실패를 맛본 감독 아성(장국영 분)은 여자친구인 메이(막문위 분)의 집에 얹혀 사는 처지이지만 여전히 예술을 하고 싶다. 자신이 쓴 세번째 시나리오에 제작자가 흥미를 보인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달려가지만, 생뚱맞게도 그가 제안받은 영화는 포르노이다. 그 많고 많은 장르 중 왜 하필 ‘포르노’인가?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로 돌아가 보자. 영화의 타이틀 시퀀스가 지나간 후, 카메라는 트래킹 숏으로 집 안을 걷는다. 그러다 아성과 메이가 침대 위에서 애무를 나누고 있는 것을 발견한 듯 방 안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카메라가 아성 위에 올라가 있는 메이의 정면을 찍기 시작하자 비로소 이들은 격정적인 섹스를 나눈다. 마침내 카메라가 그 위치까지 왔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섹스가 절정에 이를 때 갑자기 장소가 바뀌고 난데없이 비가 내린다. 땀과 비가 섞여 더 에로틱해진 그들의 섹스는 그 바깥에 존재하는 감독의 ‘컷’ 대사가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가 없다. 감독의 ‘컷’ 사인은 모두 아성의 상상이었음이 밝혀지는 때, 비로소 그들의 섹스는 끝이 난다. 연인과의 잠자리는 사람의 사적인 영역이기에 자극적이다. 한 개인의 가장 내밀하고,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삶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야 만 사람들은 영화에 관심을 보인다. 사람들을 극장으로 부르기 위해서 그 지점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직접 카메라의 시선을 보여준 셈이다.
이러한 영화계의 분위기를 두 가지 측면으로 영화는 제시한다. 첫번째는 제작자의 시선이다. 여기서는 90년대 후반 홍콩 영화계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내는 데에 집중한다. 아성이 자신의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었다는 제작자의 말을 듣고 동료 감독과 함께 그를 찾아가지만, 제작자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영화관으로 사람들을 많이 불러모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데에 그친다. 이미 흥행했던 영화의 아류작이나 자극적인 이야기가 담긴 영화를 제작하길 원하는 것이다. 제작자의 사무실에서 아성(감독)과 제작자는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보는 듯 하지만 자본과 예술, 둘 모두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그 중심축이 자본으로 경도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며, 영화가 결국 자본의 예술임을 체감하게 한다. 두번째는 관객의 시선인데, 감독 이동승(유청운 분)의 신작을 보러 간 아성의 상황을 활용하여 영화는 이동승의 신작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과 아성의 그것을 대조시킨다. 그와 더불어 관객들의 인터뷰 내용을 담아내면서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영화를 재미가 없고 수준 이하의 졸작으로 치부해 버리는 관객의 반응을 보여준다. 원초적인 웃음, 성적 자극만을 추구하는 홍콩 영화계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장면들을 뒤로하고 영화 <색정남녀>에서는 이러한 분위기에 자조하는 태도가 돋보이는데, 이동승의 자살 시퀀스가 그것이다.
바다 근처 공원에 앉아 있던 이동승은 청년들이 습작 영화를 촬영하는 것을 바라 보다 연기자가 달리는 연기를 시작하자 자신도 덩달아 달려 나간다. 처음에는 영화를 찍는 그들을 바라보며 달렸지만 이내 앞을 보고 냅다 달려 나가 난간 끝을 마주했을 때 망설임 없이 뛰어 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감독이 자살했다'는 소식과 그와 관련된 가십들이 신문에 실린다. 이러한 그의 마지막 선택이 무겁지 않고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가볍게 도구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일차적으로 이동승의 자살 시퀀스를 통해 영화가 힘을 주어 보여주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그의 신작 영화는 유작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흥행을 한다. 이 흥행은 그의 자살 소식 전과 비교해 보았을 때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감독의 슬픈 개인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에 가깝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접한 영화 스태프들이 처음에는 예전 영화들은 좋았는데 죽기 직전 개봉한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다가 관객수가 많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유능한' 감독이 죽었다고 안타까워 한다. 관객 스코어로 작품성을 인정하는 모양새인 것이다. 즉, 그의 죽음을 통해 의도적으로 관객의 원초적인 감정을 건들어야 흥행하는 홍콩 영화계를 꼬집은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또 어떤 것을 위해 도구화되었는가?
포르노 영화 또한 ‘영화’이므로
이동승의 자살 시퀀스가 말하는 것은 감독으로서 실패를 해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영화가 실패하고 더 이상 영화를 찍게 못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도 끝까지 이동승 감독에게 남아 있는 감정은 영화 찍기에 대한 열정이다. 청년들이 영화를 찍는 모습을 지켜 보다가 연기자와 함께 뛰기 시작할 때, 끝까지 그들이 촬영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뛰어 내린 것이 아니라 결국 앞을 보고 달려 나갔다는 점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었던 감정은 영화를 순수하게 찍을 수 있는 그들에 대한 부러움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었을 것이다.
영화 보기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관객들의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영화만이 흥행한다는 것에서, '원초적인 감정'은 관객들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최후의 만족감이자 영화가 줄 수 있는 가장 마지막 감정이다. 어쨌든 관객들은 영화관을 계속 찾아 가서 영화를 보고 있으니, 자극적인 영화를 찾는 관객들의 모습은 어쩌면 관객들이 영화에게 마지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인 셈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90년대 후반 당시의 홍콩 영화계의 어수선함을 드러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이동승 캐릭터와 관객들의 반응을 통해 아직 남아 있는 영화에 대한 사랑을 포착하고, 아성이 포르노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선 계속 영화가 만들어 지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한다.
포르노 영화를 연출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고 못마땅해 하는 아성은 카메라 감독의 열정을 마주한 후 영화 제작에 진지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리고 차기 스타가 될 사람이라며 허세를 부리고 다니는 몽교(서기 분)는 자신이 이런 포르노를 찍는 것에 못마땅해하지만 남주인공이 소문과 다르게 연기를 열심히 하는 모습과 촬영 디렉팅을 진지하게 주는 아성에 감명을 받는다. 즉, 포르노 영화라고 할지라도 누군가에겐 영화를 만드는 일, 연기를 하는 일 자체가 소중한 일인 것이다. 아성과 몽교는 자신이 찍는 영화가 무엇이든 진지하게 그 영화에 임하는 마음, 직업인으로서 프로페셔널함을 인지하고 그것이 모두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이제 이러한 사랑을 예찬한다.
포르노라고 할지라도 그것마저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임을 인정하는 아성과 몽교를 보여주는 장면은 옥상에서 장국영과 천으로 덮여 있는 서기가 애무하는 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성에 의해 서기가 대상화된 듯 묘사되지만 그것은 여성의 대상화라기 보다는 감독과 배우의 위치성을 보여주는 장치로 작동하는 것에 가깝다. 배우는 감독의 디렉팅대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감독 역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위해 열심히 디렉팅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세트에 화재가 나 버려 세트장과 필름이 모두 사라진 후의 모습을 차례대로 보여주는 것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감독의 의도가 드러난다. 감독도, 배우도, 스탭들도 모두 혼신에 힘을 다해 완성한 촬영본과, 홍콩금상장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는 아성의 꿈이 모두 허무하게 타 버렸을 때 누군가는 영화판을 떠나고, 다른 누군가는 그곳에 계속 머물며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것을 불살랐기에 과감히 그 판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도, 모진 일들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떠날 수 없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는 힘을 갖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리고 90년대 후반 홍콩에 남아 있던 홍콩 영화인들에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예전같지 못한 홍콩 영화계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영화를 계속 제작하게 만드는 (마지막 남은) 힘이 된다. 그래서 아성은 여전히 외친다. ‘컷, 오케이!’
‘감독’ 장국영을 상상하며
이번 영화엔 사담을 덧붙이고 싶다. 장국영은 영화 <중경삼림>에서 양조위가 맡았던 ‘경찰 663’ 역을 거절하고 이 영화를 택했다. 감독 입봉을 꿈꿨던 그를 생각하면,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 자리에 앉아서 ‘컷’과 ‘오케이’를 외치고, 배우에게 다가가 연기 디렉팅을 하고, 카메라 감독 옆에 앉아 촬영본을 함께 보는 ‘감독’ 장국영을 상상한다. 아마 레슬리 스스로도 이 영화를 찍으며 자신이 연출할 작품을 떠올리고, ‘감독’이 된 자신을 꿈꿨을 것이다.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기뻐하는 그의 모습이 이 영화에 담겨 있기에, 그의 못다 이룬 꿈이 더욱 안타깝고 애틋해진다. 끝으로 생전에 그가 남겼던 단편 작품 <연전연승>(煙飛煙滅 : From ashes to ashes)을 덧붙인다. 그는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재능 있는 아티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