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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 May 22. 2022

알록달록한 홍콩의 밤거리에도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건

영화 <홍콩의 밤> (The Night:良夜不能留, 2021)

조용한 밤거리를 넌지시 비춘다. 뜯긴 포스터도 보인다. 버스정류장, 횡단보도. 똑같은 장소를 몇 분간 한 대의 카메라로 관찰하길 반복한다. 특별함은 없다. 이곳이 홍콩이라고 구태여 말하지 않는다면 혹자는 그저 어딘가의 밤을 비추는 단조로운 장면들의 나열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인 <우산 혁명: 소년 vs. 제국>이 홍콩의 뜨거운 낮을 비췄다면, 감독 차이밍량은 영화 <홍콩의 밤>을 통해 시위가 끝나고 적막만이 가득한 홍콩의 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2019년, 홍콩을 방문한 차이밍량이 어두운 코즈웨이베이를 쏘다니며 담아낸 풍경에 중국의 옛 노래가 덧입혀져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조용하지만 마냥 평화로워 보이지만은 않는 밤거리다. 디스토피아를 재현한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폭풍이 지나가고 남은 자리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카메라는 오랜 시간 정처 없이 도로를 비추다 이내 어느 한 곳으로 정착한다. 횡단보도 위 어느 한 육교에서 멈추고, 멀리서 모든 것을 바라보던 카메라는 육교 안으로 들어간다. 강제로 뜯기다 말아서 내용을 알 수 없는 포스터, 대자보가 이리저리 더럽게 붙어 있다. 관객은 순식간에 달라진 분위기를 직감한다. 얼룩이 되어버린 종이투성이의 벽 뒤로 사람들과 차가 이리저리 바삐 지나다닌다.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려 애써도 지울 수 없고, 절대 사라지지 않을 그 기억이 상처로 남아 그들을 괴롭히는 다양한 순간을 육교의 모습으로 재현해내는 것 같기도 하다.

<홍콩의 밤>은 일방적으로 영화가 관객에게 특정 시선을 전달하면서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합쳐지면서 비로소 영화는 완성된다. 배경지식 없이 영화를 감상했다면 그 사람에겐 그저 고요한 타국의 모습일 테다. 하지만 지금의 홍콩을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홍콩의 밤>은 더 이상 평범한 하루를 비춘 작품이 아니고, 다양한 장면들 사이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 더러운 종이가 난무한 육교는 상처로 가득한 홍콩인의 모습인지, 카메라에 담긴 고요가 평화가 아니라 묵살되는 홍콩인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관객은 작품의 일부가 되고 해석에 따라 다양한 단상으로 존재하게 된다. 무언가를 기억하고 환기하는 방식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홍콩의 밤>은 관객을 끌어들여 쌍방향으로 소통하고자 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함께 상영되었던 <데블 스피크>와 비교한다면 두 작품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시위가 한창이던 홍콩을 번잡스럽고 어지럽게, 세게 말하면 공포스럽게 비추기 때문이다. 청각적 자극이 강하고 영화 내내 강렬한 느낌이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암전 이후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작품의 색채가 달라진다. 무언가를 위협하는 화염은 따뜻함을 주는 불쏘시개로 변하고, 누군가를 가뒀던 철창이 물건을 보관하는 문으로 변화한다. 분위기의 전복을 통해 이전 홍콩에 대한 그리움과 염원을 담아낸다. <홍콩의 밤>이 개입 없는 관조를 통해 조용하지만, 흉터투성이의 홍콩을 보여줬다면, <데블 스피크>는 시각적, 청각적 반전으로 시위 전의 평온한 홍콩을 소망한다. 국가 정세가 급히 변화함에 따라 달라지는 홍콩은 여러 시선으로 하여금 다양하게 표현되고 기억된다. 홍콩의 밤은 여전히 형형색색의 매력적인 곳이지만, 이젠 무언가 달라진 느낌이다. 알록달록한 밤거리에도 이제 예전처럼 감히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알아버렸으니까. 우리가 동경하던 그 시절의 홍콩이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Written by 나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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