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간도> (Infernal Affairs, 2003)
개봉한 지 시간이 오래 지난 영화는 기회가 될 때 일찍 봐야 한다는 말을 조금씩 이해하는 중이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세븐>이 그랬고, <무간도>도 그랬다. 이미 많은 영화들의 오마쥬가 되어버린, 그래서 지금 보기엔 시시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인지 해당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 <디파티드>와 <신세계>의 무간도 표절 논란이 빚어진 데는 그만큼 명작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간도는 경찰의 스파이가 된 조직원(유덕화, 유건명 역)과 폭력 조직의 스파이가 된 경찰(양조위, 진영인 역)의 이야기다. 그들은 서로의 정체를 숨긴 채 각자가 따르는 보스의 목표에 충실히 따르고자 한다. 그러나 작전을 진행할 때마다 조직원과 경찰 내부에 첩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유건명과 진영인은 서로의 존재를 들춰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앞서 <무간도>가 워낙 명작이기 때문에 이를 오마쥬한 작품이 많아 막상 영화를 봤을 땐 새로울 것이 없었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향할수록, 결말을 예측할 수 없었고 시종일관 유지한 긴장감이 이 영화가 얼마나 더 대단한 영화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인물들의 표정을 통한 감정 표현, 영화에서 심어놓은 단서들, 얽히고설킨 관계들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인 옥상 씬에서 진가를 발했다. 서로의 정체를 알고 있는 유건명과 진영인, 그리고 유건명을 미행했던 임국평 경관의 대치 상황. 화려한 액션이 아니라 인물의 표정,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가는 영화임을 또 한 번 상기시켜준 장면이었다.
또, 이 영화의 진가는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던 때, 유건명과 진영인이 그들도 모른 채 밟아간 '삶의 궤적'에 있다. 유건명이 구입하러 온 오디오 상점에서 일하는 진영인을 만난 적, 그리고 그 오디오가 나중에 유건명의 정체가 탄로 나는 중요한 물품이라는 것, 그리고 진영인이 "글자도 모르냐"며 봉투에 적은 글자가 나중에 유건명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강력한 단서라는 것. 이러한 장면들이 영화의 마지막에 스쳐가듯 지나가며 우리가 모르고 지낸 것들이 얼마나 우리 삶에 가까이 있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어쩌면 <무간도>에서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관계가 우리 삶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작은 우연, 아주 사소한 만남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크게 다가올 때도 있으니까. 누아르 장르의 교본이라고 불릴 만한 <무간도>, 짧은 러닝타임과 촘촘한 스토리, 그리고 멋진 배우들의 연기까지 합쳐져 인상 깊게 본 영화였다. 멋진 홍콩 누아르 영화가 또 나와주길 기대한다.
Written by 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