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Kids Dec 01. 2021

홍콩에 홍콩인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믿음 하나로

영화 <페이스리스> (Faceless, 2020)


2019년, 아직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기 전에 마스크도 모자라 방독면을 쓰고 얼굴을 꽁꽁 숨긴 채 거리 바깥으로 나선 이들이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바깥으로 뛰쳐나온 이들을, 영화는 젊은 홍콩인들이라 소개한다.



<페이스리스>와 마찬가지로 2019년 홍콩 시위를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 <입법회 점령사건>은 홍콩인들이 ‘범죄인 인도 법안’ 통과를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면서 (제목 그대로) 입법회를 점령하고자 한 ‘사건’의 현장을 다루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그 현장에 '홍콩인'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페이스리스>의 경우 현재(제작 당시 기준, 2019년) 홍콩인 ‘개인’을 한 명 한 명 불러내고자 한다. 그래서 영화에는 4명의 홍콩인, 신자(The believer), 학생(the student), 딸(the daughter), 예술가(the artist)가 그 인물들이다. 그들은 얼굴을 보이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실체는 보인다. 즉, <페이스리스>는 홍콩인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등장시키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다만, 이들은 '얼굴 없는’ 홍콩인에서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화면 안에서 딱 그 정도의 이름을 가지고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4명은 각자의 자리에서 홍콩인으로서의 삶을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위기에 놓인 홍콩을 위해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은 물론 홍콩인이기 이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질에 대해 목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대의 아래 소수자들의 주장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며 입체적으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LGBT ‘예술가’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홍콩인 4명의 이야기는 조화를 이루며 ‘홍콩’을 지켜 내려는 움직임으로 나아간다. 2019년 홍콩에 홍콩인이 살아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영화 중반으로 갈수록 위태로워진다. 이러한 기조는 영화가 ‘학생(the student)’의 시선(카메라)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시작된다. 홍콩 폴리텍 대학을 다니는 ‘학생’은 교내에서 벌어진 시위를 자신의 헬멧에 설치한 GoPro 카메라로 담아낸다. 이에 따라 관객은 ‘학생’과 대치하고 있는 경찰과 마주하고, 그와 몸싸움을 벌이며 고통스러워하는 ‘학생’의 시선과 호흡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그때, 각자 입장과 상황이 달랐던 4명의 홍콩인은 자취를 감춘다. 홍콩 시위 현장에서 힘겹게 저항하고 있는 홍콩인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장면을 목도했을 때 ‘홍콩에는 홍콩인이 있을 것이다’는 믿음에 서서히 틈이 생긴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홍콩인들의 고통, 좌절, 절망이다. 영화는 이러한 풍경들을 가감 없이 전한다. ‘정말 홍콩에 홍콩인들이 있을까? 그들은 버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머리를 맴도는 그 순간, 또 다른 ‘얼굴 없는’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페이스리스>의 제목은 4명의 등장인물 이외에 또 다른 얼굴을 지시하고 있다. 바로 ‘홍콩 경찰’이다. 완전 무장을 하고 있는 홍콩 경찰들의 얼굴 또한 'Police'에 가려진 채로 등장한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은 그저 시위를 진압하는 '홍콩 경찰'일 뿐이다. 얼굴 없는 홍콩 경찰들의 얼굴은 영화의 수미상관을 장식하고 있는 ‘시진핑’의 얼굴과 겹쳐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구호를 외치던 홍콩인들은 2019년을 지나, 2020년 이후 자취를 감춘 듯 보인다. 2020년 코로나19 이후 좁은 도로에 많은 사람들이 밀집하는 시위가 진행되기엔 무척 어려워졌다. 2021년 3월, 일국양제를 무력화시키는 법이 통과되면서 더더욱 2021년의 홍콩은 위축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 문장을 애매한 진술로 남겨두는 이유는 영화에서 보여준 홍콩인들의 실낱 같은 믿음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살고 있지 않은 우리는 2021년의 홍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여전히 홍콩인들은 ‘홍콩’에 있을 것이며 싸우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기에 현재 한국으로 출품되는 다큐멘터리는 2019년 홍콩에 머물러 있지만 여전히 지금-홍콩에서는 그 투쟁을 기록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 것이 어쩌면 지금의 홍콩을 응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자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람한 작품입니다.


Written by 아림




이전 09화 자신도 모른 채 밟아간 삶의 궤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