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2023)
이젠 (멀리서나마) 마주할 수 있게 된 ‘홍콩인’들의 얼굴
2021년 초반부터 국제영화제에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3년 부산에 당도한 영화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의 프로그램 노트를 무언가 달라졌음을 감지했다. 익명 혹은 감독 본인의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던 이전과 달리 이 영화의 감독인 알란 라우는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한다.
이전의 흐름과 미세하게 달라진 이 영화는 ‘가공된 영상’을 쓴다. 현장의 날 것이라고 하기 보다 어딘가 침착하고, 화면의 명도가 다소 낮다. 마치 화면 위에 필터가 한 겹 올려진 것만 같다. 물론 중간 중간에 푸티지 영상이 포함되어 있지만,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에서 최대한 담담하게 2019년의 홍콩을 바라보고자 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이러한 거리감은 홍콩 경찰의 진압으로 커다란 시위가 종료 당하고, 관련 인물들이 법원에서 재판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을 비추는 버드 아이 숏에서 구체화된다. 카메라는 회색 안개가 끼여 있는 홍콩의 도심을 날고 있다. 회색 안개 속을 비집고 앞으로 날아 가고 있는 카메라는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보고 있는가?
홍콩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하는 시위 현장에 머물러 있던 다른 영화들과 달리 영화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는 다양한 장소를 탐색한다.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의 입법이 이루어질 입법회 뿐만 아니라 레논벽이 있는 도시 공간, 캐리 람을 비롯한 홍콩 관료인들의 기자회견장, 심지어 친 중국 시위의 현장까지 나아간다. 홍콩 경찰으로 위시 되는 공권력의 폭력을 비추던 홍콩 시위 다큐멘터리가 이제는 분열되고 있는 홍콩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홍콩 시위를 다룬 이전의 다큐멘터리들과는 다른 위치에 있음이 드러난다.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홍콩 시민들이 창을 깨고 입법회에 입성을 하였으나, 공권력의 폭압에 질려 어찌 할 줄 모르고 그 안에서 숨을 거칠게 쉬며 어쨌든 우리는 여기에 살아 있다는 것을 기록한 영화 <입법회 점령 사건> 이나 2019년 홍콩 시위의 전사를 보여주느라 무려 4시간 25분이라는 RT를 가지게 된 <우리가 불타면,>은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전쟁 시’와 다름없다. 이 작품들에 담긴 푸티지 영상을 꼼짝 없이 극장 좌석에 앉아 보고 있자면 모자이크 되어 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저 홍콩인들이 모여 싸우고 있는 현장을 ‘체험’하게 된다. 하지만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는 시위 현장과 거리감을 가지고 있다. 비록 시위 현장의 홍콩인들은 마스크와 모자로 무장해 있지만, 편집을 거친 영상은 그들에게 또 다른 가림막을 씌우지 않는다. 이미 새가 된 카메라가 그들을 가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감의 거리감 덕분에 관객은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와 또렷이 마주할 수 있게 된다.
화석화가 되어 가는 2019년의 홍콩 시위 현장을 지켜보며
이들의 얼굴과 마주친 카메라는 더 멀리 나아가 홍콩인들의 보호막을 더 넓히려고 시도한다. 시위 현장을, 홍콩을 벗어난 카메라는 사실 2019년으로부터도 벗어났다. 중국에서 바다를 헤엄쳐 홍콩으로 건너온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영화를 시작한 알란 라우 감독은 그렇게 할아버지가 회색 빛 바다에서 둥둥 떠 있지 않고 홍콩이라는 땅을 밟았기에 손자인 자신은 하고 싶은 공부를 홍콩에서 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중국의 탄압을 피해 영국으로 날아간 감독 본인의 이야기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회색 빛 바다를 헤쳐 나왔기에 기회의 땅, 홍콩에 당도할 수 있었다면 회색 빛 안개 속을 뚫고 날아간다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 준 자유의 홍콩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물음표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자 애쓰는 감독의 의지는 본토 이민자 출신 홍콩인 가족의 미시사를 거쳐 홍콩 시위의 진상을 기록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현장의 다른 여러 카메라들과 같은 곳을 향한다. 다만, 알란 라우 감독의 시선에서 홍콩 시위는 이제 현재라기보다 과거에 가깝다는 점에서 홍콩 시위는 이제 ‘역사’가 되어 간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람하였습니다.
Written by 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