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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 Nov 05. 2023

유해해도 중독적인 사랑의 평행선

<해피투게더>(春光乍洩, Happy Together(1997)) 

위험하고 아련한, 그리고 끝끝내 후회해 잊지 못하는 사랑에 대해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감독 왕가위는 <해피 투게더>를 통해 사랑의 본질을 설명함과 동시에 한 번쯤 생각해봤을 불같은 사랑에 대한 관객의 호기심, 내지는 판타지를 양조위와 장국영을 활용해 충족시켜준다. 거칠고 아슬아슬하지만, 유혹적인 양조위의 '아휘'와 장국영의 '보영'이 표현하는 관계성은 아르헨티나가 갖는 이국적 요소로 배가 된다. 

물론 상호 간의 사랑을 기반으로 하지만 두 인물이 지향하는 사랑법은 매우 달라 절대 만날 수 없는 평행선과도 같다. 아휘는 보영에게 끝도 없이 휘둘리고 보영은 아휘를 끝도 없이 휘어잡는다. 보영은 가볍고 자유로운 방식의 불같은 사랑을 꿈꾼다면 아휘는 비교적 무겁고 진지한 물 같은 사랑을 지향한다. 관객이 아휘에게 좀 더 마음이 기우는 이유 또한 비슷한 결에서 양조위의 흔들리는 동공에서 아휘의 순수함을 투명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일테다. 보영은 관객과의 소통을 완전히 차단한 채 카메라 너머로 절대 감정을 비치지 않으니 관객은 아휘의 시선에서 보영을 관찰할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별과 재회를 통해 권태와 행복, 동정과 애정 따위의 수많은 양가감정을 겪은 둘은 결국 함께 이과수 폭포에 가보지 못하고 관계를 매듭짓게 된다.   

소모가 전부인 위태롭고 어지러운 관계에서 잠시 벗어나 관객의 숨통을 트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아휘의 동료 장이다. 영화를 환기하는 장치로서 자리매김하는 장은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두 사람에 의견을 더하지 않고 한 발짝 물러나 관망한다. 다만 아휘를 돕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은 틈틈이 해낸다. 술을 마시며 아휘의 삶에 생기 한 스푼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보영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녹음기에 쏟아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기도 한다. 어쩌면 카메라 안을 이리저리 쏘다닐 뿐 관객과 같은 마음으로 보영과 아휘를 바라보고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는 매개체일지도 모르겠다. 

아휘는 길을 잃고 한동안 헤맸지만, 드디어 이과수 폭포에 도착했고 조금 슬퍼했다. 줄곧 이 곳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친듯이 낙하하는 폭포수를 맞는 아휘의 얼굴에는 왠지 후련함이 엿보인다. 장의 도움을 받아 아휘는 울음을 삼킨 녹음기와 함께 보영을 세상에 끝에 두고 올 수 있었으니까. 반면 그렇게도 요구하던 여권을 받게 되었음에도 보영은 아르헨티나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 아휘가 떠나고서야 아휘의 사랑을 체감하고 자신이 갖고 있던 미련을 깨닫는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폭포가 아닌 폭포 램프 옆에서 아휘의 살 내음이 묻은 이불을 부여잡고 울어대는 것뿐, 함께 살던 방안에 덕지덕지 묻은 후회와 아쉬움을 채워줄 사람은 더 이상 없다. 각자 다른 얼굴을 끝으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과도 같았던 보영과 아휘의 사랑은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는 이과수 폭포 저 너머로 영원히 사라졌다. 알록달록 화려했던 아르헨티나도, 불타오르던 유약한 사랑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Written by 나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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