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출산을 위한 난자 냉동보관, 꼭 이걸 확인하세요

by 싱싱맘

2017년, 나는 10년 넘게 이어온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해 말, 만 35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난임센터를 찾았다. 결혼이나 출산 계획은 없었지만, 언젠가를 대비한 ‘보험’처럼 난자를 냉동해두고 싶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두면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질문을 잠시 잊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느낌일 것 같았다. 주변에도 내 경험을 공유하면서 적극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나, 비혼출산을 위해 그 난자를 활용하려 하자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다. 이유는 두 가지 – 법(Law), 그리고 배송 (Logistics).


덴마크 병원에서는 국내법상 5년 이상 보관된 난자는 시술에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영국 병원도 “자기들의 프로세스와 프로토콜에 맞게 채취 및 보관된 난자가 아니면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다”며 조금 곤란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국의 난임센터는 해외로 난자 배송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미혼이라 어차피 한국에서 시술을 받을 수 없는데 난자도 못 가져간다고 했다.


그래서 비혼출산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난자 냉동보관 장소를 한국에서 할지, 해외에서 할지를 반드시 미리 고민하길 바란다.


(AMH 수치나 난포 상태가 아직 좋다면, 난자 냉동보관을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의 첫 난자 냉동 경험


2017년 당시만 해도 난자 냉동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연예인들도 난자냉동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미디어에서 많이 접하면서 인식이 많이 개선된 것 같다.


그해 9월, 10년이 넘게 이어온 해외 생활을 마치고 직장 때문에 귀국한 나는, 연말에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난임센터를 찾았다. 결혼이나 출산 계획은 없었지만, 언젠가를 대비한 ‘보험’처럼 난자를 냉동해두고 싶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대기실에는 대부분 부부동반이었고, 엄마와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미혼인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아 매우 어색했다. 의사에게 물었다.


“당장 아이를 낳을 계획은 없지만 난자를 보관해놓고 싶은데 언제가 좋을까요?”
“오늘이 가장 빠른 날이에요. 바로 시작하시죠.”


의사는 만 35세의 나에게 이미 노산이라고 냉정하게 현타를 주었다.


마침 생리가 시작할 무렵이어서 타이밍도 딱 맞았기 때문에, 바로 배란 유도를 위한 호르몬 주사를 시작했다.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Becoming”을 보면 미셸이 아이를 갖기 위해 난임치료(IVF)를 하면서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매일 직접 주사를 배에 놓아야 했던 경험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몸도 힘들지만 마음이 특히 더 힘들었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난임 스트레스는 없었고 단순히 난자를 채취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니 정신적으로도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매일 잊지 않고 일정한 시간에 주사를 놔야 하는 점이 조금 번거로운 정도였다.


출근할 때 아이스박스에 주사를 챙겨가서 회사 탕비실의 냉장고에 주사를 보관해야 했던 날들도 있었다. 괜히 동료들이 볼까 봐 까만 봉지로 싸거나 티가 안 나게 숨겨놓았다. 어떤 주사들은 여러 주사약을 섞어서 맞아야 했는데, 주사약 섞는 것이 익숙지 않아 사내 병원 간호사들의 도움을 구했다.


다행히 충분한 숫자의 난자가 나왔고, 별 후유증 없이 잘 회복하였다.


냉동된 난자로 시험관 시술을 하기 위해 해동하면 그중에 10-30%만 쓸 수 있다고 한다. 혹시 몰라 난자 채취를 한번 더 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회사 일이 바빠 여유를 낼 수가 없었다. 1년 후 병원을 다시 찾았고 두 번째 난자 채취를 했다.


이번에는 호르몬 주사에 대한 반응이 과했는지 준비하는 과정 내내 힘들었다. 난자 개수도 2017년 처음 한 것보다 두 배 가까이나 많이 나왔고 배에 복수가 차서 만삭의 임산부처럼 배가 부풀어 올랐다. 폐에 물이 찰 정도였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회사에는 알리고 싶지 않았으므로 (병가 대신) 연차를 써가면서 버텼다. 솔직히 두 번째 시술은 매우 버거웠다.


그제야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내용이 폭풍 공감되었다. 왜 여자들이 겪는 이런 고통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것인지 속상했다.


어쨌거나 난자채취는 나에게 있어 출산에 가장 근접한 경험이었다. 뭔가 해낸 기분이었고, 이제 한동안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질문은 잊고 살 수 있겠다 생각하였다. 든든한 보험을 들어 둔 느낌이었다.


이후 7년 동안 나는 냉동된 난자가 나의 미래를 지켜줄 것이라 믿고 커리어에 집중했었다.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2021년 파키스탄 한 달 출장도 마다하지 않고 모래바람이 날리는 중동으로 날아가 공장 실사와 계약서 협상을 지원했다. 미국과 유럽, 터키를 오가며 프로젝트를 이어갔고, 승진도 했다. 출장이 없을 때는 주말과 아침저녁 시간을 쪼개 공부하여 영국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했고, 이후 해외로 다시 이직했다.


커리어의 성장곡선은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 사이 내 몸은, 특히 자궁의 나이는 조용히 늙어가고 있었다.


난자냉동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니 시작도 하기 전이다.


7년이 지나 덴마크에서 정자은행과 난임클리닉에서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덴마크 법상 5년 이상 보관된 난자는 시술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프로세스와 프로토콜에 맞게 채취 및 보관된 난자가 아니면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다”며 다시 채취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다.


헐..............


미혼 여성은 한국에서 정자 기증을 받을 수 없고, 시험관 아기 시술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해외에서 시술을 하려면 국내에 보관해 둔 난자를 해외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내 난자를 보관 중이던 병원에 문의하니, 난자의 “해외 배송은 불가하다”라고 했다. 다른 병원으로 난자를 옮겨가서 거기서 해외배송이 되는지 문의해 보라고 했다.


싱가포르와 영국, 덴마크의 병원 의사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라워했다. 그들은 말했다.

“의료 전문 운송업체가 있으니, 환자가 원하면 어디든 난자를 안전하게 배송 가능합니다.”




난자 냉동보관은 내가 임신과 출산에 가장 근접하게 가보았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2017년의 나는 ‘이제 걱정 끝’이라 생각했지만, 7년 뒤의 나는 그 선택이 단지 출발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출발점도 아닌, 출발점에 서기 위한 사전 작업에 불과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제도와 현실은 여전히 복잡하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언젠가 비혼출산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어디에, 어떻게 보관을 할 것인가’를 미리 고려하길 권한다.


예상치 못한 ‘법’과 ‘물류’의 장벽으로 인해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난자 냉동 당시에는 해외에 갈 계획이 없었더라도 이후 학업이나 직장 때문에 해외로 이주하게 되는 경우도 감안하자.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알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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