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정마을, 마지막 아이

나는 왜 식상한 사람이 됐을까

by 프리힐리아나

“하하, 역시,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군.”


내 리액션에 대한 신랑의 반응. 뭐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톡톡 튀는 사람은 아닌 줄 알았지만 이 반응은 좀 아쉽다. 내가 가진 평범한 생각이 바르고, 바람직하며, 반듯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요즘 나는 뻔한 내가 좀 싫어졌다. 왜 나는 식상한 사람이 됐을까.


어린 시절, 나는 우리 동네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이였다. 고로 나는 또래 친구 하나 없이 자랐다. 대신 동네 여러 할머니들의 공동육아와 야옹이, 멍뭉이, 운무(소)를 친구 삼아 컸다. 어른들은 우리 집이 있는 마을을 ‘감나무정’이라고 불렀다. 동네 감나무가 많아서 그렇게 부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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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이른 봄, 나는 감나무정마을 딸부잣집 막내로 태어났다. 바로 위 언니인 넷째 언니와 나는 다섯 살 차이. 큰언니랑은 열네 살 차이. 큰언니는 도시에 있는 여고로 진학하면서 집을 나가 살았고, 때문에 오자매가 모두 함께 산 기억이 내게는 없다. 여섯일곱 살 무렵, 내가 기억하는 나의 하루는 이랬다.


“안 춥나? 고마 들어온나, 춥다.”


내 하루 시작은 아침에 일어나서 셋째, 넷째 언니가 엄마가 갓 지어준 아침을 든든히 먹고, 학교 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부터였다. 분홍색 내복 바람으로 밥을 두어 숟가락 먹다가 언니 둘과 옆집 언니, 동네 언니 두어 명해서 네다섯 명 정도가 가방을 메고 수다를 떨면서 걸어서 학교에 간다. 넷째 언니는 초등학생, 셋째 언니와 동네 언니들은 중학생, 고등학생이었다.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거리는 2km. 중학교까지는 3.3km.(처음으로 거리를 검색해 봤다) "찌찌뽕", "도레미 통과반사", "야! 너 거기 서"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장난치는 소리, 웃음소리가 부럽기만 하다. 몸에 있던 온기가 사라져 가고 스멀스멀 추위가 느껴질 때쯤이 되면, 엄마는 또 부른다. "춥다, 빨리 들어온나" 등굣길 언니들의 뒷모습이 사라져 간다. 저~기 동네 어귀 마을회관을 지나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언니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면서 ‘나는 언제쯤 학교에 갈 수 있을까?’, ‘언니들은 밤이 돼야 돌아오겠지?’, ‘나도 학교에 가고 싶다’, 더는 보이지 않는 언니들을 뒤로하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아빠는 소죽을 끓여 소부터 아침을 먹이고, 방으로 들어오신다. 엄마는 큰방에 놓인 밥상에 언니 둘이 먼저 먹고 간 밥그릇, 국그릇을 치우고, 새로 밥과 국을 담는다. 엄마는 신을 신는 부엌에서 새벽같이 불을 지펴 밥을 했다. 부엌과 큰방 사이 쪽문으로 밥과 국, 반찬이 들어왔다. 엄마, 아빠, 나, 그리고 야옹이 넷이 같이 아침밥을 먹는다. 사십 년 전, 아빠는 추워 얼어있던 새끼고양이를 따뜻한 방에 데려왔는데 그 고양이는 여름이 돼도 바깥 활동 후에는 항상 방으로 돌아왔다. 나의 룸메이트였던 셈. 아빠는 우리가 밥 먹을 때 고양이가 ‘야옹~’ 울면, “응~ 그래, 너희만 먹고 나는 안 주냥~” 한다면서, 얼른 밥상 아래에 야옹이 밥그릇에 아빠 그릇의 밥을 두세 숟가락 떠 담고, 생선을 밥 위에 얹고, 찌개 국물도 살짝 둘러서 줬다. 지금 반려묘를 키우는 분들은 그렇게 먹이면 안 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아빤 나와 야옹이를 편견 없이 대했다. 90년대 초반 시골에서 방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건 파격적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은 볼 때마다 고양이를 방에서 키우는 거 아니라고 야단이셨다. 털 날린다고 야단, 고양이가 요물이라고 하셨던 것도 같다. 암튼, 아빠는 나와 야옹이 밥을 같이 먹이며 키우셨다. 야옹이는 밥 다 먹고 나면 양반다리한 아빠 다리 위에 올라가서 편안하게 앉아있기를 잘했다. 나도 아빠 다리에 앉아 있길 좋아했는데, 야옹이와 라이벌이었구나.


밥을 먹다 보면, 텔레비전에선 뽀뽀뽀도 하고, 끝나면 TV유치원 하나 둘 셋도 했다.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매일 봤다. 내가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엄마는 밥상을 정리하고, 설거지도 하셨다. 집안을 정리해 놓고 내 옷을 입혀놓고 9시 남짓, 아빠와 엄마는 일하러 나가셨다. 그즈음 동네 사시는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차례로 집으로 놀러 오셨다. 도산할머니, 동개할머니, 강누할머니, 할머니들은 앞에 붙는 택호가 있었다. 아마도 그 지역에서 시집오신 것 같았다. 일 년 중 두어 달은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와 계시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우리 집 큰방에 와서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시면서, 동네사람들 이야기, 동네에서 살다가 이사 간 사람 이야기, 옛날이야기, 서울 사는 손주 이야기, 부산 사는 손주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셨다. 이야기를 주도하시는 분은 늘 도산할머니셨는데, 할머니 머리는 새하얀 백발이셨다. 이야기도 잘하시고, 도라지타령 같은 노래도 잘 불러주셨다. 나는 옆에 앉아 듣다가 누웠다가 앉았다가 야옹이를 안았다가 털을 쓰다듬어줬다가 그러다 한 번씩 “할머니, 우리 엄마, 아빠는 언제 와?”하고 묻기도 하고 그랬다.


점심때가 되면 엄마,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바쁘게 점심을 준비했다. 손칼국수를 뚝딱 만들어서 나랑 놀아준 할머니들에게 대접했다. 할머니들은 엄마 음식 솜씨를 늘 칭찬했다. “어째 그리 금세 칼국수를 다 만들었어~”, “맛이 참 좋다”, “간이 딱 맞네”하시면서. 나는 칼국수에 들어간 폭신한 감자를 좋아했다. 숟가락으로 감자를 반 잘라서 뜨끈뜨끈한 국물이랑 같이 떠서 먹었다. 배부르게 한 그릇 먹고, 칼국수 육수를 낸 띠포리랑 멸치를 야옹이 밥그릇에 담아 준다. 야옹이도 배가 고팠는지 잘 먹는다. 지켜보면서 “야옹아, 천천히 먹어. 안 뺏어 먹어”하고 안심을 시킨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려고 할 때, 저 멀리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언니들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재미가 있었는지 시끄럽다. 고함소리도 들리고, 뛰어가면서 붙잡는 소리, 도망가는 소리. 아침과 똑같이 대문 앞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서 집 앞까지 언니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원아~ 오늘 뭐 했써?, 왜 나와 있노~ 추운데 얼른 들어가자.” 두 언니는 학교는 달랐지만 같이 왔다. 따뜻한 방으로 졸졸 따라 들어가면, 언니들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과자를 꺼내준다. 돌돌돌 말려있는 테이프 과자는 혀끝만 대면 녹아버렸다. 쫀득이도 좋았고, 반지 사탕도 좋았다. 오늘은 뭘 사 올까?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했다.


저녁엔 밥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도시로 유학 간 큰언니와 야간자율학습 하는 둘째 언니는 빼고. 대신 야옹이도 밥상 아래에 함께 했다. 마당에는 멍뭉이도 있다. 언니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하고, 밥상에 올라온 반찬 이야기, 텔레비전 뉴스 이야기를 하면서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끝냈다. 엄마는 설거지하고, 언니들은 반찬 정리를 돕고, 씻고, 어느새 캄캄한 밤이 됐다.


우리는 언니들 방인 작은 방에 모였다. 엄마, 아빠는 큰방에서 텔레비전을 보시고, 작은 방에서 언니들은 숙제를 하거나 책을 봤다. 나는 무슨 얘기라도 듣고 싶어서 야옹이랑 그 방에 끼여 앉아 있었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면 “그게, 뭐냐? 그건 무슨 말이냐?, 나도 학교에 가면 그런 걸 배우는 거야?” 묻기도 하고, 또 “넌 몰라도 돼, 설명해도 모른다니까. 글자부터 배워야지.”하는 말에 삐쳐서 야옹이 데리고 엄마, 아빠가 있는 큰방에 간다. 언니들이 안 놀아준다고 일러주고 울기도 하고. 그러면 아빠가, “동생 잘 데리고 놀아야지, 친구도 하나 없고 아가 얼마나 심심했겠노.”하고 위로한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그때 친구가 뭔지 잘 몰랐다. 그냥 온종일 같이 있는 야옹이한테 이런저런 말을 많이 했고, 안아주고, 팔베개도 해주고, 이불도 덮어주고,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그러다가 야옹이가 할퀴기라도 하면 손으로 야옹이 배를 때리며 복수하기도 했다.


어릴 때 시골의 밤은 진짜 깜깜했다. 가로등도 없고 불빛이 없어서 더 어두웠던 것 같다. 수돗가, 세면대가 밖에 있었는데 아빠가 밤에 물이라도 떠달라고 하면 깜깜한 암흙 속에 귀신이 '퍽'하고 나타날 것 같아서 방문을 열고 놓고 뛰어갔다 오기도 했다. 그때부터 어둠에 대해 겁이 유독 많았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내가 기억하는 내 세계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런 비슷비슷한 하루를 반복해 지나면서 심심한 게 뭔지, 외로운 게 뭔지, 친구가 뭐 하는 건지도 모른 채 엄마, 아빠 따라 산이고 들에 뛰어다니고, 할머니들과 가족들, 동물들 속에서 그냥 그렇게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