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선 할머니와 누룽지

by 프리힐리아나

미취학아동 시절, 빼놓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는 황재선 할머니다. 친할머니는 아빠가 군대 있을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황재선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살기 시작한, 말하자면 할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셨던 분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와 한동네에 살았다. 아빠는 큰아버지, 큰고모, 아빠, 작은 고모로 2남 2녀 중 차남이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큰아버지가 아닌 우리와 함께하셨다.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할머니 댁이 있었다. 친구가 없는 나는 어릴 때, 자주 놀러 갔던 것 같다. 할머니는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으면서 “우리 강새이(강아지) 왔나?” 하시며 유독 예뻐해 주셨다. 특히 가마솥에 불을 때서 밥을 하시곤 누룽지를 긁어서 동그랗게 공처럼 만들어 뒀다가 내가 가면 꺼내주셨는데 맛이 정말 기가 막혔다. 촉촉한데 고소하기까지 한 누룽지. 그 누룽지를 나는 매번 진짜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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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동네 할머니들과 엄마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 황재선 할머니 귀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다고 했다. 잘 못 들으신다는 거다. 게다가 눈까지 잘 안 보이신다고 했다. 그때 너무 놀랐다. ‘아~그래서 늘 내 얼굴을 손으로 더듬어서 확인하셨구나~’ 할머니는 가족도 아무도 없고 혼자라고 들었다. 아프다고 따로 보살펴 줄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여섯일곱 살 때 할머니는 말도 할머니 귀 가까이에 대고 크게 해야 했고, 잘 안 보이다 보니 손에 물건을 만져 확인하시도록 지어드려야 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에피소드는 할머니가 낮에 혼자 집에 있는 나를 봐주러 우리 집에 오셨던 날이 있었다. 할머니는 집안 정리도 하시고, 엄마를 도울만한 일들을 찾아 하시고 계셨다. 이때는 병환이 좀 덜하실 때였던 것 같다. 이날 내가 창고 벽에 기대 세워둔 평상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장난을 하다가 평상이 넘어졌다. 하필 그 앞에서 밤을 까고 계시던 할머니 이마에 평상이 쓰러져 부딪혔다. 미처 피하지 못한 할머니는 평상 모서리에 이마를 맞고 찢어져 피가 났다. 나는 깜짝 놀라 얼음이 됐다. 나 때문에 할머니가 다쳐서 피가 나다니. 할머니는 내가 걱정할까 봐 그런지 자꾸만 괜찮다고 하셨다. 오후에 엄마가 와서는 할머니 이마가 왜 그러시냐고 물어도 할머니는 문에 부딪혔는데 괜찮다고 하셨다. 혹시라도 내가 혼날까 봐 그러시지 않으셨을까. 그날 이후 나는 늘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좀 시간이 흘러서, 한날 할머니 집에 놀러 갔는데 방에 불을 켜지도 않고 깜깜한 채로 바느질을 하고 계셨다. 뭘 저렇게 늘 바느질을 하실까 하고 보면 바지나 양말을 엄마가 사다 드리면 몸에 맞지 않아 불편하신지 잘라서 천을 덧대고 바늘로 기우셨다. 그러다 한 번씩 담뱃대에 담뱃잎을 넣어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셨다. 담배 냄새가 많이 났다. 내가 온 기척을 하면, 할머니는 한결같이 “우리 강새이 왔느냐”며 반갑게 맞아주시고,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어 확인하셨다. 그러곤 나 주려고 만들어뒀다며 찬장 속에 손을 넣고 더듬어 누룽지를 꺼내주셨다.


그날 누룽지를 건네받으면서 밝은 데서 보니 할머니 손은 시커멓게 검정이 묻어 있었고 손톱도 길고 손톱에 때가 끼어 있었다. 매번 맛있게 먹던 누룽지를 받아 들고서 그날은 왜 그랬는지 선뜻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손에 들고 만지작만지작했다. 할머니가 누룽지가 맛이 없느냐고 물었던 것 같다. 손에 들고 있던 누룽지를 쳐다보며 머뭇거리다가 할머니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한입 베어 먹었는데 고소한 맛이 났다. 딱딱하지 않으면서 고소했다. 겉바속촉. “할머니, 누룽지 진짜 맛있어!” 아는 맛이 무서웠다. 그런데 그날은 누룽지를 다 먹지 못하고 버렸던 것 같다.


이날 이후 한두 번 더 할머니 누룽지를 먹었다. 내가 할머니한테 가는 게 뜸해졌을 때 할머니는 엄마 편에 누룽지를 보내주셨다. 점점 할머니의 증상은 악화되면서 더 이상 할머니는 불을 지펴 밥을 하지 않으셨다. 전기밥솥으로 바뀌었고, 엄마는 집에서 반찬을 해서 매일 아침과 저녁에 가져다 드렸다. 배달은 셋째 언니와 넷째 언니가 맡아했다. 나도 하고 싶었지만 내가 들고 가기엔 무겁기도 하고 뜨거운 국이나 찌개는 위험하기도 해서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셋째 언니는 황재선 할머니의 최고의 심부름꾼이었다. 할머니는 종종 언니에게 파스와 물파스, 안약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셨다. 셋째 언니가 어릴 때 할머니 댁에 놀러도 많이 가고, 가서 할머니한테 우리가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 다 얘기해 드려서 별명을 ‘간첩’으로 지어주셨다고 했다. 할머니도 편찮으시기 전에는 유머도 있는 분이셨다는데 나는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 할머니 댁에 놀러 가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할머니도 집 밖을 나오는 일이 없으셨다.


언젠가 한 번 언니 대신 반찬을 가져다 드리러 갔는데 그때 할머니는 거의 안 들리고 안 보이시는 것 같았다. 여전히 방엔 불도 켜지 않으시고 껌껌한데 파스 냄새와 담배 냄새가 진동을 했다. 냄새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반찬을 방에 두고 혼자 계신 할머니를 두고 나오면 집으로 가는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초등학교 2학년 때쯤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다시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까 슬퍼서 눈물이 났다. 그날 밤엔 늦게까지 언니와 함께 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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