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나도 드디어 감나무정 마을 밖을 나갈 수 있게 됐다. 생일이 빠른 나는 유치원에 가지 않고 바로 학교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한 날 아빠가 물었다. “유치원에 가고 싶어? 국민학교에 가고 싶어?” 차이는 잘 모르지만, 학교 입학은 뭔가 겁이 났다. 나는 유치원에 가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서 앞으로 가방끈이 가장 긴 사람이 됐다. 넷째 언닌 유치원에 못 다닌 학력 콤플렉스가 나름 있는 편이다. 가방끈을 뒤로 늘릴 수 있지만 앞으론 늘릴 수 없다며 늘 속상해했다.
유치원 하면 떠오르는 몇몇 장면이 있다. 1990년, 당시 단성국민학교 병설유치원에는 여섯 살 진달래반과 일곱 살 개나리반 두 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일곱 살이었던 나는 개나리반에 들어갔다. 가서 보니 진달래반을 다녔던 애들이 개나리반으로 진급해 이미 자기네들끼리 친해 보였고, 선생님이랑도 친하게 지내는 걸로 보였다. 나는 모든 게 다 신기했다. 처음 본 풍경. 내 또래 아이들이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정도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선생님의 존재도 너무 신기했다. 수업 시간에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구연동화를 들려주셨고, 또 다른 시간에는 선생님 풍금 반주에 맞춰 노래를 배우고, 노래에 따라 율동을 배우기도 했다. 자유시간도 줬던 것 같은데 나는 인형이나 장난감 같은 게 집에 없었던 터라 유치원에 있는 물건들이 다 신기하기만 했다.
자유시간에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둥글게 선생님을 둘러싸고 “이것도 쳐보세요~”, “저것도 해주세요~”, 까르르까르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물건은 실로폰이었고, 트라이앵글 같은 악기였다. 나는 저만치 떨어져서 신기한 눈으로 선생님과 아이들을 바라봤다. 내가 살면서 가장 순수했던 순간. 그 무리에 속하지 못한 것에 대한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못 했다. 마냥 신기하기만 했으니까.
친구도 몰랐고,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유치원에 갔다. 유치원은 9시까지 가면 되지만, 난 8시가 되기도 전에 1등으로 교실에 도착했다. 매번 교무실에 가서 유치원 교실 열쇠를 가지고 와서 열었다. 그건, 넷째 언니가 5학년이었고, 학교에서 배구부로 운동을 했는데 언니와 함께 가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일찍 가게 된 거다. 지금은 30분 남짓하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데, 그땐 1시간 남짓 걸렸다. 엄마가 차려주신 아침을 둘이 먹고, 7시쯤 언니랑 걸어서 학교에 갔다. 나도 얼마나 가고 싶었던 학교인데… 비록 유치원이지만. 유치원 교실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멀뚱멀뚱 있다 보면 친구들이 하나둘씩 왔다. 중간에 우유 급식이 한 번 있었고, 12시 반쯤 모든 수업이 끝났다. 처음엔 끝나고 혼자 걸어서 집에 갔다. 집에 가면 아무도 없었고, 엄마가 차려놓고 간 밥상에 밥이랑 국을 떠서 먹고 또 야옹이와 시간을 보냈다. 이때부턴 동네 할머니들도 덜 놀러 오셨다.
집에 가도 혼자 있다 보니 집에 가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동네 방향에 정기라는 남자 친구 한 명, 혜련이라는 여자 친구 한 명이 있었다. 두 사람 집은 마을 어귀 회관 근처로 비슷했고, 나는 거기서도 온 만큼을 더 가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방향이 같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혜련이는 매일 아빠가 차로 데려다주고 데리러 왔다. 그것도 몹시 부러웠던 일 중 하나. 가끔은 얻어 타기도 했지만 주로 정기랑 걸어서 집에 갔는데 중간중간 쉬었다 가느라 집에 가면 2시 반 3시쯤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유치원이 익숙해질 때쯤, 학교에 남아 놀면서 넷째 언니 운동부 훈련이 끝나길 기다렸다. 6시쯤 언니 운동이 끝나면 문방구 가서 과자 사서 해가 뉘엿뉘엿 지는 걸 보면서 같이 걸어서 집에 갔다. 그때의 하루하루는 유난히 길었고, 느리게 흘러갔던 것 같다.
가을쯤이었을까. 유치원에서 꼭두각시 춤 발표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날 아침 교실에 있는데, 다른 친구들이 오늘 한복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아침에 유치원 간 애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는 깜짝 놀라셨고, 씻으려고 꺼내던 한복을 챙겨 주셨다. 다시 걸어서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 길이 너무 멀고, 다리도 아파서 가다가 살짝 눈물이 나기도 했다. 문제는 유치원에 다시 도착했을 때, 시간은 열 시가 넘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 왜 선생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한복을 가지러 집엘 갔느냐고 꾸중을 하셨다. 세상 서러웠다. 유치원을 다닌 이래로 처음으로 울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집이 가까운 것도 아니고, 집에 한복을 가지러 가면 차로 데려다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썼는데 그 결과가 꾸중이라니 슬펐다.
비가 왔던 날, 학부모 회의가 있었다. 엄마가 유치원에 오셨는데 회의에 오신 엄마들에게 믹스커피를 줬다. 나는 엄마가 유치원에 온 게 좋아서 엄마 옆에 뛰어갔다. 엄마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도록 종이컵을 내 입에 대줬다. 한 입 홀짝 마시는데 달달한 게 맛있었다. 그러다 어떻게 된 건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 치마에 종이컵을 떨어뜨려 커피를 다 쏟아서 선생님이 휴지를 들고 달려와 막 닦아줬던 장면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리곤, 마지막 기억은 유치원 졸업식. 그날은 사범대학교 영어교육과에 다니고 있던 큰언니가 내 유치원 졸업식에 왔다. 학사모 쓰고 꽃을 든 나랑 선생님이랑 큰언니랑 셋이 내 유치원 졸업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나의 첫 사회생활이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