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에 썼던 글입니다. 여기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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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에 봤던 영화가 생각났다. 무의식에 가까우리만치 멀리 떨어진 그 어디쯤엔가 기억의 편린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수십 년 간 다른 기억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그 영화에 대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부터다. 혹시나 인터넷에서 간단한 기록이라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 싹텄다. 지금은 포털 사이트에서 영화 제목만 쳐도 5,000원에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으로 인터넷을 통해 검색했을 때만 해도 아주 간단한 정보 외엔 찾아볼 수 없었다. 영화가 주는 매력도 물론 충분히 있지만 그 보다는 그와 얽힌 추억이 더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와 함께 관람했던 그 영화.
‘메리 포핀스’는 1975년 12월에 개봉한 디즈니 영화다. 주인공 줄리 앤드류스는 ‘사운드 오브 뮤직(1969.10 개봉작)’의 여주인공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개봉일로 봐서는 아마 내 나이 여덟 살 때쯤인 것 같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찾아간 극장에선 디즈니사의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나 역시 꿈과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디즈니의 영화가 기억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 영화를 보는 내내 아주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극장 내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코에 기분 좋은 냄새가 와 닿은 것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 똑같은 냄새를 지금 다른 곳에서 맡는다 해도 같은 냄새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뇌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냄새를 담당하는 기관이 뇌의 해마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냄새 기억은 오래 간다고 한다. 그것이 아마 극장에서 맡았던 그 향기가 지금까지 향수를 자극하는 이유일 것이다.
영화는 그야말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황당한 설정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메리 포핀스는 구름 위에서 화장하고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 막대기의 꼭대기에는 말하는 앵무새의 머리가 달려있다. 땅에 그려놓은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 한바탕 신나게 놀다가 다시 그림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남자 주인공 버트는 런던에 아침이 찾아오면 가스등을 끄고 다니고, 굴뚝을 청소하는 청소부들과 함께 지붕 위에서 신나게 춤을 춘다. 1910년 런던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주어 아련한 신비감을 더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참으로 강직하고 권위적인 분이라 아들인 내게 살갑게 대하신 적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표면적으로 느낄 수 없었고, 심지어는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위기 상황에 처하면 아버지는 해결사로 나서길 주저하지 않으셨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던 아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아버지는 담임선생님을 기꺼이 만나주셨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와 다르게 자식들을 속으로 깊이 사랑하고 계셨다.
그런 아버지가 86세 할아버지가 되어 병상에 누워 내 간호를 받으셨다. 간암 판정을 받으신 아버지는 수술 날짜가 다가와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수술을 앞두고 2박 3일간 병원에서 아버지와 함께 했다. 평소에 아버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 소재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간간이 옛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코에 산소를 공급하는 줄을 달고, 위에서 나오는 노폐물을 빨아들이는 줄까지 달고 계셨지만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그저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를 병마와 싸우는 시간에도 여전히 갖고 계셨다.
2박 3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병원에서 지내야 했으므로 태블릿을 가지고 갔었는데 그것을 요긴하게 쓸 기회가 왔다. 아버지를 간호하는 동안 태블릿으로 영화를 보기로 하고 넷플릭스에서 검색했다. ‘메리 포핀스’와 ‘메리 포핀스 리턴즈’가 눈에 확 들어왔다. 1975년에 개봉했던 ‘메리 포핀스’를 선택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5년 만에 다시 맞이한 바로 그 영화. 아버지와 함께 봤던 그 영화. 감개무량했다.
아버지는 깨어있는 시간보다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아버지가 눈을 뜨셨을 때 태블릿을 보여드리며, 이것이 아버지와 45년 전에 함께 봤던 영화라고 말씀드렸다.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그렇냐고 하셨다.
아버지를 간호하는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네가 아버지를 간호한 이 시간이 나중에 너에게도 기억이 많이 나겠구나.” 하셨다. 그랬다. 아버지와 나는 이 시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함과 절실함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아버지를 위해서 해 드린 일도 없는데…….’ 이 생각이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이 지난 후 수술실로 들어가시는 아버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버지, 지금이 기도할 시간이에요. 수술 잘 마치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알았다고 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시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수술실을 돌아섰다.
장시간 수술을 마친 후 의사가 불렀다. 떼어낸 위를 가리키며 수술은 잘 되었으니 다음 치료에 집중하자고 했다. 수술 후 중환자실로 옮겨진 아버지를 본 순간 마음이 무너지는 듯했다. 마취가 풀리며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보니 고령에 잘 견뎌내실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의사가 한 마디 했다. “할아버지, 저 알아보시겠어요?” 할아버지라는 말을 듣게 되다니……. 나에겐 아버지지만 그에겐 그저 다 죽어가는 한 노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연세로 보아서는 ‘할아버지’라는 용어가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내게는 너무나 야속하고 속상한 단어였다. 나에겐 영웅인데 타인에겐 그저 한낱 노인에 불과하단 말인가.
하지만 그 이후에 들려오는 소식은 희망적이었다. 그 다음날 바로 일반 병실로 옮겨드렸다는 것이다. 빠르게 회복하여 지금은 통원치료만 받고 계신다. 속히 쾌차하시길 빈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메리 포핀스’ 외에도 많진 않지만 몇 가지가 더 있다. 다섯 살쯤 되었을 때 가족여행으로 함께 갔던 인천 작약도, 그리고 국민학교 시절에 여러 번 가족과 함께 갔던 어린이대공원, 그리고 장성한 후 효도여행으로 가족과 함께 했던 곳들이 생각나지만 내 기억 속에서 잊혀진 추억들도 많으리라 짐작한다. 횟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부모와 자식이 상호간에 공유하는 느낌과 생각이 있다면 그것이 많든 적든 분명, 그것은 사랑이라 말할 것이다.
‘메리 포핀스’는 아버지와 나를 아름다운 추억의 공간으로 이끌어준 고마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