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공부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뭔가에 집중하면 괴로움을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3월 1일에 시작한 것이 8월 9일에 끝났다. 그리고 자격증 하나를 얻었다. 5개월 여간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한 셈이다.
올 초 2월에 아주 심각한 ‘번아웃(burn out)’을 겪으면서 약식 가족회의를 했다. 어딘가 홀로 떠나 여행을 좀 하고 와야겠다고 말했다. 목적지는 군산. 처음부터 군산으로 정한 건 아니었는데, 이왕 나선 길이니만큼 아는 사람을 한 번 만나볼까 하고 전라도 지역을 선택했다. 그 지인이라는 분은 지방에 있는 모 기념관의 관장으로 일하고 있는 분이다. 평소에 만날 일이 없었으니 그 분을 만나 세상 사는 이야기나 해볼까 하는 요량이었다. 필요한 몇 가지를 배낭에 욱여넣고 집에서 무작정 나서서는 터미널까지 갔다. 그때까지 지인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가 터미널에서 통화가 됐는데, 내가 그곳에 가더라도 만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즉시, 그 자리에서 목적지를 정해야 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찾다가 새만금방조제를 떠올리고는 바로 군산으로 정했다.
여행을 한다기 보다 그냥 혼자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고속버스를 타고 군산에 도착해서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앉아 한가롭게 스마트폰 검색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모텔로 바로 향했다. 그간 나를 괴롭혀왔던 상념들이 머릿속을 휘저어놓았지만 애써 무시한 채, 이 색다른 여행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여행하는 게 목적은 아니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고 내가 저지른 실수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했을 뿐이다.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가장이 홀로 정처없는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이전엔 한 번도 없었던 터라 막연한 기대감이나 설렘 같은 것이 약간 들긴 했다. 갱년기 증후군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난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아, 맞다. 번아웃 때문이지. ㅎㅎㅎ. 어쨋든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건 맞다.’ 잠 들기 전에 검색을 해서 주변 지역 관광명소를 찾았다.
이튿날, 여행 노선을 짰다. 경암동철길마을, 진포해양테마공원, 테디베어뮤지엄군산, 초원사진관(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 신흥동일본식가옥을 구경하기로 했다. 노선대로 움직여서 이곳을 모두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 초원사진관 맞은편에 있는 한일옥을 맛집으로 소개받아 소고기무우국을 먹기도 했다. 신흥동일본식가옥까지 구경을 마친 다음 선유도해수욕장에 가려다가 대중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발길을 돌려 군산시외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갔다. 애초부터 목적은 여행이 아니었던 바, 그냥 낯선 거리를 구경이나 하면서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터덜터덜 천천히 한걸음씩 뗐다. 배낭을 멘 채 낯선 지방도시를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실 이 날은 대단히 추웠다. 늦겨울 마지막 추위여서인지 더욱 매서운 추위가 옷 속을 파고 들었다. 그래서 숙소에서 나올 땐 추위에 대비한답시고, 바지를 두 겹으로 껴입고, 장갑을 끼고 모자를 눌러썼기 때문에 그다지 춥진 않았다. 오히려 추위 때문에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고,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하겠냐는 생각을 하면서 한 걸음씩 떼며 앞으로 나아갔다.
군산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는 전날 시간을 보냈던 그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부터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를 루덴시아로 정했다. 전날 저녁에 숙소에서 여행지를 검색하다 발견한 곳인데, 유럽식 건물들을 지어놓아 이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는 설명이 나왔다. 커피숍에 잠시 앉아있다가 바로 옆에 있는 터미널에 가서 대전복합버스터미널까지 가는 차편의 시간을 알아보니 출발할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커피숍에 두었던 배낭을 잽싸게 들고 나와 바로 버스에 올랐다. 대전복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선 바로 이천종합터미널까지 가는 버스에 승차했는데 이천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터미널 앞 해장국 집에 가서 뜨끈한 국물과 함께 든든한 식사를 마치고는 찜질방까지 3.5km를 걸었다. 이번에는 이색적인 숙소인 찜질방에서 자기로 한 것이다. 네이버지도를 켜놓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대로 터덜터덜 걸었다. 그냥 마냥 걷고 싶었다. 다리가 아픈 줄도, 추운 줄도 모른 채, 그냥 낯선 땅을 걸었다. 걷다 보니 널찍한 강을 가로지르는 교각에 이르렀고, 주변을 살펴보니 드문드문 다니는 차 몇 대를 제외하고는 눈에 띄지 않았다. 교각에서 강바닥까지의 높이는 매우 높았고, 주변은 어두웠으며, 멀리 보이는 등불 몇 개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소리를 지른다 해도 나를 쳐다볼 사람이 없을 것은 뻔해보였다. 이때다 싶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아니 울부짖었다. 울분을 토해내고 싶었다. 지난 2년여에 걸쳐 개발했던 신상품이 실패로 판명나는 순간 번아웃에 빠진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이 정처없는 방황을 시작했다. 교각 위에서 토해냈던 외마디 외침은 욕이 아니었다. 사실은 욕을 하고 싶었다. 나를 향해서, 아니 세상을 향해서,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낸 세상을 향해서 욕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입을 통해 터져나온 말은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였다. 짐승같이 울부짖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리고 통곡하면서.
교각 위에서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토해낸 뒤에 맥이 빠진 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추운 줄도 모르고 터벅터벅 걸어서 찜질방에 도착했다. 아주 소규모로 운영하는 24시간 찜질방이었는데 그 작은 면적도 손님들로 다 채워지지는 못했다. 시골스러움과 소박함이 더 마음에 들었다. 특히,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가 자신들의 영업지를 아끼고 소중히 관리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다음날 찜질방에서 나와 버스를 타려 했으나 지방 소도시에서는 원하는 시간에 차가 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타야 했다. 이날은 루덴시아로 목적지를 정하고 나왔으나 그게 그렇게 쉽게 될 일이 아니었다. 이천역에 가서 다시 경강선으로 곤지암역까지 이동했다. 그곳에서 다시 차편을 검색했으나 버스가 제때 오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목적지에 가서 구경을 한다 해도 다시 돌아오는 차편을 제때 잡아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이번 여행을 여기서 끝내기로 마음 먹고는 곤지암역에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로 향했다. 그 거리가 2km 이지만 걸어갔다. 그렇게 도착한 스타벅스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편에 몸을 실었다.
이 여행을 통해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하지만 극한으로 치닫는 번아웃의 템포를 약간 늦추면서, 제 자리를 찾아가는 출발점으로 들어섰다. 집에 돌아와서는 여행을 길게 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기분이 나아진 건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기사 자격증 시험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심리적 안정이 필요했고, 또다른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로 나를 밀어넣는 것만이 번아웃을 이겨내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또다른 새로운 경험이 시작됐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군산에 내려갈 때 등에 짊어졌던 배낭에는 이제 자격증 시험 수험서가 들어있었다. 처음 며칠동안은 도서관 의자에 2시간 앉아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날이 흐를수록 그 시간은 길어졌고, 급기야는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해도 견딜만했다. 늦은 나이에 하는 공부라 외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외워도 외워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한 스트레스로 압박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번아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나미 볼펜을 여러 개 갈아치우면서 노트에 쓰면서 외웠다. 1차 시험 공부를 할 때는 개수를 세보지 않아 몇 개인지 모르겠으나, 2차 시험 공부를 할 때는 약 10개의 볼펜을 갈아치웠다. 또한, 쓰면서 외우는 과정에서 사용한 노트가 내겐 아주 특별한 물건이었다. 이것을 설명하자면 글이 좀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간단히만 언급한다.
번아웃이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신제품 개발을 위해서 이것저것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몇 개의 실패작이 있었다. 핸드 메이드로 제작하는 다이어리인데, 본드를 제대로 붙이지 않아서 실패한 시제품이다. 그런 이유로, 종이를 쉽게 떼어낼 수 있는 상태였다. 버리기 아까워 그것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자격증 공부를 할 때 암기용으로 사용했던 연습장이 바로 이 실패한 다이어리였다. 공교롭게도 난 이 다이어리를 도서관에 갈 때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암기할 때마다 연습장으로 사용했다. 그 다이어리를 바라보면서 다소 신기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아! 공부할 때 연습장으로 사용하려고 이 시제품을 만들었구나…….’ 이런 걸 어떤 기분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괴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좋게 표현해서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면 어떨까.
1차 시험 때는 암기할 것이 너무 많아서 커트라인을 넘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합격했고, 2차 시험은 두 차례에 나누어 치러지기 때문에 사실상 3차 시험까지 치르는 것과 같았다. 1차 시험은 객관식이기 때문에 모르는 문제는 찍을 수라도 있겠지만, 2차 시험은 필답형이라서 모르는 내용은 아예 손도 댈 수 없다. 마침내 2차의 두 번째인 작업형 시험까지 치르고 나서야 5개월 여의 긴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결국 원하던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
이 특별한 경험들이 내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그리고 어떻게 삶의 방향이 바뀔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내 인생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