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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호 Sep 24. 2024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를 읽고

독후감


  딸이 중학생 때 읽었다고 하는 책이 내 눈에 들어온 건 TV를 보려고 소파에 앉을 때였다. 누가 그 책을 소파에 가져다 놨는지 모르겠지만 책 표지에는 ‘전 세계 51개국, 2100만 독자를 감동시킨 최고의 소설’이라는 문구가 상단을 채우고 있었다. 책을 펼친 건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냥 내용이 궁금했다.


  소설의 초반과 중반부에서는 그다지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밝혀지는 진실, 그리고 가슴에 사무치는 절절한 이야기가 이 소설을 베스트셀러 자리에까지 올려놓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번역자가 쓴 ‘옮긴이의 말’ 까지 읽어보니, 내가 예상했던 대로 이 소설 역시 자전적 소설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서 그 내용이 실화라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소설가 개인이 경험했던 사실의 일부를 근간으로 하되, 상상을 가미해 스토리텔링을 한 픽션이라는 뜻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프가니스탄의 두 소년 ‘아미르’와 ‘하산’이다.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사회지도층 인사다. 하산은 아미르와 둘도 없는 친구지만 신분이 다르다. 바바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는 ‘알리’의 아들이 ‘하산’이다.

  바바는 몸집이 큰 거구인데다, 돈도 많고, 고아원을 지어 사람들의 평판도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아들에게 정을 주지 않고 근엄하며, 칭찬에 인색하다. 언뜻 생각해보면 그러한 그가 하인의 아들인 하산에게는 더 엄격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다정다감까지는 아니더라도 하산을 천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애틋한 정서를 보이기까지 한다. 하산에 대한 바바의 행동은 이야기의 후반부에 그 이유가 드러난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는 매년 ‘연 날리기 대회’가 열린다. 겨울에 열리는 이 대회는 추운 계절의 하이라이트다. 아프가니스탄에선 오래된 전통이고, 이 대회는 아침 일찍 시작되어 연이 하나만 남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아미르는 아버지 ‘바바’의 신임을 얻는 게 쉽지 않다. 아미르의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죽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바바에게 인정받을 기회가 주어진다. 연날리기 대회에 나가 우승하면 아버지에게 신임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대회가 열린다. 스무 개쯤 되는 연들이 먹이를 찾아 떠도는 상어처럼 하늘에 떠 있다. 상대의 연줄을 끊고 살아남아야 최후의 승자가 된다. 하산의 도움을 받으며 아미르는 끝까지 분투한다.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됐지만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바닥에 떨어진 연을 먼저 가서 차지해야 우승하는 경기인지라, 하산이 먼저 뛰어가고 아미르가 뒤를 따른다. 하산이 아미르를 향해 한 마디 한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아미르와 하산에게는 공포를 가져다주는 ‘아세프’라는 친구가 있다. 그는 아버지의 친구인 마무드의 아들이다. 손가락 관절에 끼우는 격투용 쇠장갑을 끼고 다니며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다.  또래 아이들에게 ‘아세프’는 공포의 대상이다.


  연을 찾아 뛰어가던 아미르는 먼저 도착한 하산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장소에 악명높은 아세프가 있었으니 아미르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아세프가 하산을 성폭행한다. (책에는 성폭행이 아니라 ‘강간’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래서 하산이 여자 아이인가 하고 앞에서 읽은 내용을 다시 찾아 읽었지만 하산이 여자 아이라는 단서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아미르는 공포로 몸이 얼음처럼 굳어 움직이지 못한다. 하산을 아세프로부터 구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이후 수많은 시간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그 일이 있은 후, 아미르는 하산을 의도적으로 피해보지만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는 없다. 바바는 아미르가 연날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매우 흡족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미르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하산과의 관계가 너무 불편했던 아미르는 바바에게 제안을 한다. “바바, 새 하인을 들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말을 들은 바바는 불같이 화를 낸다. 하산의 아버지 알리와 지낸 세월이 40년이며, 알리와 하산은 아무 데도 안 간다고 잘라 말한다.


  아미르는 평생을 두고 후회할 죄를 짓는다. 자신의 시계와 돈봉투를 가지고 알리와 하산이 기거하는 오두막에 들어간다. 하산의 매트리스를 들추고 시계와 한 줌의 지폐를 넣는다. 결국 하산이 도둑으로 누명을 쓰게 되자 알리는 바바를 찾아가서 말한다. 바바의 집에서 나가겠다고 하자 바바는 울부짖으며 제발 부탁이니 나가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 알리와 하산은 홀연히 떠난다.


  1979년 12월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부르조아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떠난다. 1981년 3월에 바바와 아미르 역시 고향을 버리고 트럭에 몸을 싣는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 정착한 두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서 무일푼으로 다시 시작한다. 고향에서 사회지도층 인사로 존경받으며 호의호식하던 시절은 물건너 가고 낯선 이국 땅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된 두 사람에게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바바는 주유소 종업원으로서 휘발유를 넣고 물건을 팔고 엔진오일을 바꾸고 차의 앞유리를 닦는 일을 한다.


  1983년 여름에 아미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선 영문학을 전공해서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 다음 해 여름에 바바는 낡은 폭스바겐 버스를 산다. 지역신문에 난 광고를 살피며 개라지 세일하는 곳을 찾아다닌다. 재봉틀, 애꾸눈 바비인형, 나무 프레임 테니스 라켓, 줄 없는 기타, 낡은 일렉트로닉스 진공 청소기 등을 구입하고는 벼룩시장마다 돌아다니며 물건을 판다.


  그해 7월 어느 일요일 아침에 벼룩시장에서 바바는 타헤리 장군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망명 온 장군과 아미르가 그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는데, 아리따운 아가씨가 다가오더니 장군의 딸이라며 아버지에게 차를 타드린다. 첫눈에 반한 아미르는 장군의 딸 소라야에게 온 마음을 빼앗긴다.


  바바는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 아미르는 소라야와 결혼하고 싶다며, 아버지에게 자신의 청혼을 부탁한다. 이슬람문화에 따라 바바가 장군을 찾아가 자식의 결혼을 부탁한다. 아미르는 소라야와 결혼하고, 소라야는 시아버지의 시한부 인생을 극진히 돌본다.


  아미르가 소라야와 결혼하고 4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 원인미상의 불임이라는 판정을 받고는 시험관 수정까지 생각해봤지만 의사로부터 입양 권유까지 받게 된다. 그 사이 아미르는 작가가 되어 출판을 하고 유명인사가 된다. 두 번째 소설에 대한 선인세로 받은 돈으로는 예쁜 빅토리아풍 집으로 이사도 한다.


  2001년 6월, 아미르는 파키스탄으로부터 온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로 오랜시간 함께 했던 ‘라힘 칸’은 아미르에게는 삼촌과 같은 존재다. 그가 병에 걸렸는데, 아미르가 보고 싶으니 파키스탄으로 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오거라. 다시 착해질 수 있는 길이 있어.”


  파키스탄에 도착한 아미르는 라힘 칸을 찾아가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바바와 아미르가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후, 라힘 칸이 바바의 집을 지키고 관리했으며, 하산도 그 집에 들어와 살았다고 말한다. 라힘 칸이 수소문 끝에 하산을 찾아내어 데려와 살았던 것이다. 하산의 아내가 그 집에서 낳은 아들이 ‘소랍’이다.

  라힘 칸은 아미르에게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건넨다. 그 집에서 찍은 것인데, 하산과 소랍이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는 사진이다. 아미르는 편지도 한 통 받는다. 하산이 아미르를 생각하며 쓴 편지다. 그리고 아미르는 라힘 칸으로부터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하산의 아버지는 ‘알리’가 아니라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라는 것이다. 바바는 아미르에게 하산이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을 끝내 말하지 않고 숨졌다.

  라힘 칸은 하산의 아들 ‘소랍’을 아미르가 거둬주기를 부탁한다. 그것이 아미르가 지은 죄에 대한 속죄가 된다는 것도 상기시켜준다. 처음엔 완강히 거부하던 아미르도 결국 소랍을 찾아 떠난다.

  카불에 가서 카르테세의 북부 지역에 있는 새 고아원을 찾아낸다. 고아원 원장에게 소랍에 대해 말하고 데리러왔다고 하자, 원장은 탈레반에게 돈을 받고 팔아넘겼다고 한다. 수소문한 끝에 소랍을 데리고 있다는 탈레반의 저택에 당도했다. 저택에서 만난 탈레반 우두머리는 아미르가 아이를 데리러 왔다고 말하자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더니, 자신이 아미르를 잘 안다고 말한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오래 전, 격투용 쇠장갑을 끼고 아이들을 두들겨패던 아세프였다. 아미르는 그곳에서 소랍을 찾았지만 아세프에게 흠씬 두들겨맞아 갈비뼈 일곱 개가 부러지는 등 만신창이 몸이 된다. 소랍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새총을 쏴 아세프의 왼쪽 눈에 나사를 깊숙이 박아버린다. 싸움은 끝나고 아미르는 페샤와르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는다. 어느 정도 회복된 후 이슬라마바드로 가서 소랍과 함께 호텔방에 투숙한다. 호텔에서 말없이 사라진 소랍을 근처 사원에서 발견하고서, 아미르와 소랍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소랍을 악마같은 소굴에서 빼내 미국에 데려가 같이 살겠다고 약속한다.

  아미르는 소랍을 입양해서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방법을 찾으며 변호사를 만난다. 하지만 절차와 조건이 까다로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거라는 말을 듣는다. 최선의 방법은 2년간 소랍을 고아원에 맡겨놓고, 이민국에 서류를 넣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소랍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고아원에는 절대 안 가겠다며 절규한다. 이윽고 소랍이 욕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미국에서 아미르의 아내 소라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미국에 있는 삼촌 샤리프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즉시 소랍을 미국에 데려올 수 있게 비자를 내주겠다고 한단다. 기쁜 소식을 소랍에게 전해주려고 욕실 문을 열자 기겁을 하고 자빠진다. 소랍이 자살 시도를 한 것이다. 소랍이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는다.

  소랍이 빨리 회복되길 바라면서 아미르는 소랍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고아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을 용서해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에 데려가주겠다고 약속하고서 함께 가주겠나고 묻는다. 그리고는 옛날 기억을 떠올린다.

  “그의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오래 전 겨울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하산과 나는 잎이 다 떨어지고 없는 벚나무 밑 눈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날, 나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흙을 먹을 수 있느냐고 그를 몰아쳤었다. 그런데 이제 반대로 내가 그 대상이 되어 나의 진심을 증명해야 했다. 나는 이런 꼴을 당해도 싼 사람이었다.”


  2001년 8월, 어느 따뜻한 날, 소랍과 아미르는 미국에 있는 집에 도착한다. 온 가족이 따뜻하게 맞아줬지만 소랍은 오랫동안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2002년 3월, 비가 오는 어느 서늘한 날에 식구들은 프리몬트의 엘리자베스 공원에서 열리는 아프간인들의 모임에 참석한다. 반갑고 즐겁게 인사를 나누다가, 소라야는 대여섯 개의 연들이 공원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아미르에게 알려준다. 아미르는 연을 파는 사람에게서 노란색 연을 사들고 소랍이 보는 앞에서 연을 날린다. 소랍에게 한 마디 한다.

  “내가 너한테 네 아버지가 와지르 아크바르 칸 지역에서 연을 쫓는 덴 최고였다고 얘기했었니? 아마 카불을 통틀어 최고였을 거다.”

  아미르는 연에 관심을 보이는 소랍과 함께 다른 아이의 연을 공격해서 떨어뜨렸다. 아미르가 소랍에게 말한다. “저 연을 잡아다줄까?” 그리고는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리고는 연을 쫓아 달린다. 다 큰 어른이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판즈셰르 계곡만큼 널찍한 미소를 입술에 머금은 채.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권선징악’이나 ‘사필귀정’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미르가 하산을 대하는 태도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지만,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용감하게 현실의 벽과 맞닥뜨려 싸워나가는 모습은 칭찬받을만 하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사회와 가정의 파괴,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군상들의 처절한 이야기가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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