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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요일 Sep 05. 2022

박혀있던 가시를 정리하며.

기억과 물건을 정리하다.

두 번째 경험하는 이별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이별이 너무 아팠어서 다시는 마음 같은 거 주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수년간 연애를 하지 않던 나에게 그는 슬그머니 나에게 다가왔다.


첫 번째 이별을 경험하고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고 싶었다. 내 마음속에는 그가 아직 살기에 그의 자리가 분명히 남아있었다. 그 자리를 타인에게 내어주는 순간 내 삶에서 그 사람이 지워질 것 같았다. 슬픔에 갇혀있던 나는 당연하게도 과거에 머물러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닮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너는 참 사람을 곁에 두지 않는 것 같아. 나도 가끔은 너가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니까. 그런데 그 점이 좋아.”


가랑비에 젖어가듯 그에게 빠지고 있던 나는 어느새 그에게 마음을 전부 보여줬다. 평생 그의 자리일 것 같았던 비어져 있던 자리는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살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사랑은 새로운 사랑으로 잊어가는 거라고, 새로운 사람이 정말 좋으면 전에 만난 사람은 기억도 안 난다고 말이다. 아예 생각이 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내 머릿속은 점점 새로운 그로 가득 채워져 갔다.


“너랑 하는 연애는 선인장을 키우는 것 같아. 가만히 둬도 잘 크는 선인장 말이야. 사람을 곁에 두지 않는 게 가시 같아서 매력적이었는데 막상 연애하니까 다가가질 못하겠어. 그만하자.”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와 닮았던 그는 내가 마음을 열지 않았다고 생각했나 보다. 나는 비슷한 사람에게 비슷한 이유로 두 번 버려졌다.  두번이나 버려지면서 내가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된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놓아버렸다. 가치가 없는 나를 붙잡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놓아버린 내게 몇가지의 변화가 생겼다. 그중 제일 심각한 문제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점점 더러워지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니 주변은 당연하게도 시선이 가지 않았다. 설거지가 쌓이고 살 수 있을 만큼 하는 빨래들과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까지 청결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있는지도 몰랐던 먼지 알레르기와 감기 같은 잔병이 심해졌다. 정말 더러워 보일 때나 가끔 정리를 했고 그렇게 계절의 변화를 한 번씩 모두 봤다.


살면서 가장 힘든 겨울을 보냈다. 먼지가 많으니 기관지가 약을 달고 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약해졌고 감기도 달고 살았다. 주변 사람들도 힘들어했다. 이렇게까지 망가진 내가 안타까운 건지 불쌍한 건지 나를 위로하려 했다. 그렇게 나의 시간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sns를 보던 도중 즐거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 치솟았다. 분노? 그리움? 시기 질투? 억울함? 같은 여러 감정들이 충돌했다. 그러다 문득 ‘이 새끼 들은 잘살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망가져있는 거지? 누구보다 잘 살아서 이 개새끼들한테 빛나는 나를 보여줘야 후련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인장이 아니라 그들이 선인장이었다. 내가 그들을 안아서 가시가 박힌 거였다.


억울했다. 미치도록 억울했다. 그래서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당장 빛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사람처럼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스스로에게 당당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저분한 수준을 넘어선 집을 하나 둘 정리했다. 하지만 청소를 한다고 이미 약해진 몸이 바로 돌아오진 않았다. 당장 더러운 집은 쉽게 정리할 수 있어도 이미 망가져버린 몸은 다시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들의 기억을 하나씩 물건과 같이 정리했다. 내 공간이, 내가, 내 기억이 하나씩 정리될 때마다 나는 강해졌고 온전해졌다. 몸에 박혀있던 가시를 하나씩 빼서 차곡차곡 종량제 봉투에 넣는 기분이었다. 내가 묶여있던 과거를 버리려고 내놓았던 현재를 기대하지 않았던 미래가 하나둘씩 정리되니 좋았지만 다시 찾아올 기억들이 무서웠다. 그들이 내게 준 상처는 깊기에 후유증처럼 가슴에 남아 이따금 날 찾아와 괴롭힐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그 기억에게 맞서 싸울 힘이 생기고 있다는 것에 기쁘기도 했다.



완전히 그들에게서 벗어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정말 멋있고 강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힘든 일도 있겠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분명 다시 일어나서 잘 마무리할 것이다. 또 사랑도 할 것이다. 그들보다 나은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고 그들 때문에 사랑이라는 따듯하고 몽실몽실한 감정을 포기하고 사는 것은 살면서 정말 후회될 것 같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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