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본 걸까. 어제 퇴근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었건만. 오늘 아침 목련은 나뭇가지마다 희디흰 꽃을 틔워 올리고 서 있다. 창문을 열다 말고 나도 가만히 서서 목련꽃 아래로 간다.
두꺼운 콘크리트 건물 안은 아직 찬 기운이 감돌 뿐인데 밖엔 봄이 온 모양이다. 남풍이 북풍을 내모는 사이 햇살도 더 따뜻해졌나 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부지런히 봄은 나를 향해 오고 있었던 게다.
2월 어느 날이었다. 현관문밖에 화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웃에 사는 지인이 두고 간다는 문자가 왔다. 검정 비닐 포트에 담긴 채 몸집은 작아도 예닐곱이나 되는 꽃봉오리들을 품고 있었다. 화분에 옮겨 심을까 하다가 제 몸 크기에 맞는 접시에 받쳐 거실 창가에 두었다.
하루가 다르게 꽁꽁 닫혔던 봉오리가 열리는가 싶더니 샛노란 꽃이 피어올랐다. 조그마한 꽃이 봄을 마구 불러들이는 느낌이라고 할까.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하기만 했던 살림살이에도 돌보지 않은 내 마음에도 봄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환했다.
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남쪽 창을 열면 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봄을 가져다주리라 여겼던 것 같다. 봄인가 싶으면 쌀쌀하고 왔나 싶으면 가려들었다. 꽃이 폈다는 소식이 내게 당도할 즈음엔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봄은 늘 스쳐 지나가고 마는 짧은 존재였다.
남에서 시작된 봄만 봄이었을까. 입김 폴폴 날리는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위층 할머니 눈인사에, 시골에서 가져와 나눠준 푸성귀 한 움큼에, 어느 날 문 앞에 두고 간 화초 한 포기 집으로 들이는 일에도 봄은 깃들어 서로를 채워주었다.
한철 봄은 봄대로 누리고도 우리 안에 사철 봄을 들일 수 있다니. 오늘 아침 목련이 폈다는 소식만큼 설레는 일이 아닌가. 흐드러진 꽃들이 지는 날에도 차갑기만 한 한겨울에도 봄이 곁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일 테다.
한마디 말이, 소박한 마음 한 자락이 서로에게 봄이 될 수 있다면 우리 삶이 사철 봄날일 수 있겠다는 꿈 하나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아침이다.
2025. 3. 14. 07:00
현경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