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어요."
운동장을 걷던 동료가 지나쳐 가는 내게 툭 던졌다. 같이, 걷는다, 나도 모르게 몇 번을 되뇐 기억이 떠오른다.
같이 걷는다는 것에는 많은 것이 담겼다는 생각이 든다. 잘했어! 손뼉 쳐줄 수 있을 만큼, 더러는 손잡아 줄 수 있을 만큼, 아주 가깝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로를 맞춘다는 뜻이 담긴 듯하다.
발걸음을 맞추려면 마음부터 맞춰야 하나 싶다. 마음을 맞추지 못해 삐거덕거리며 흘려보낸 시간들을 마주한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해 저 혼자 내달리고 더러는 엉뚱한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나 보다.
서로가 서로를 맞추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더듬어 보면, 어디에서는 원망의 소리가 높았고 또 어디에서는 울음이 터져 올랐다. 같이 걷자는 말에 보폭을 줄이거나 늘여가며 걸음을 맞출 수도 있었을 텐데. 무심히 지나치기만 했던 기억들이 한겨울 찬바람 되어 가슴을 가로지른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일월에 친구가 보내준 서재환 선생님의 '새 달력'을 들여다본다.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 새끼 비둘기 같은 숫자들이 / 반듯반듯한 창문을 열고 나와 / 피어나는 꽃잎의 몸짓으로 / 줄을 지어 앉아 있다. //중략// 종소리를 울려주고 / 언 강물을 풀어주고 / 휴전선을 열어줄 것 같은 숫자들이 / 비둘기장 같은 새해 새 달력 속에 / 저마다 날아오를 날을 기다리며 / 푸른 날개를 다듬고 있다.'
반듯반듯한 창문 달린 하루하루. 문을 열면 갓 깨어난 비둘기 같은 숫자들이, 종소리를 울려주고 언 강물을 풀어주고 휴전선을 열어줄 것 같은 숫자들이,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를 다듬고 있을 것 같다. 그런 숫자에 깃든 푸르른 나날들이 활짝, 펼쳐질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달력이리라.
새해에는 서로에게 조금 더 마음을 맞추고 발걸음을 맞춘다면 어떨까. 달력 속 칸칸에 박힌 숫자들 그 하루하루가 더 다정해지지 않을까. 해마다 돌아오는 일월은 우리에게 주워진 다시 없는 기회며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2025. 1. 17. 07:00
현경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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