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소리가 잦아졌다. 쨍쨍 쏟아 붓는 불볕과 더위가 이젠 한풀 꺾이겠거니 여겼다. 입추가 되고 처서를 지나 찬이슬이 내려서 가을다운 기운을 더해준다는 절기, 백로(白露)에 다다른 지 여러 날이나 더위는 가시질 않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된 구월 이즈음이었다. 이른 새벽 아버지가 논으로 밭으로 한 바퀴 휘 돌아올 때쯤 그제야 우리는 부스스 일어났다. 물기 뚝뚝 듣는 소 풀을 한 짐 마당에 부려놓으면 개망초 향이 코끝을 간질여 마저 잠을 깨웠다. 정신이 번쩍 들어 부랴부랴 학교 갈 채비를 서둘렀다.
동네에서 학교로 이어진 길가에 희고 붉은 코스모스가 무리지어 피었다. 꽃잎을 따며 청군이 이기나 백군이 이기나 가을 운동회를 미리 내다보았다. 코스모스가 바람 따라 한들한들 아이들 등살에 흔들흔들 피고 졌다. 우리도 따라 흔들리며 자랐다.
구멍 숭숭 뚫린 문풍지를 새로 바른 것도 그맘때쯤 일이었다. 차가운 기운이 피부에 까슬까슬 와 닿는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높고 푸른 하늘은 한껏 부푼 꿈을 쏘아 올리기에 더없이 좋았다.
이제는 뭔가 수상하다. 선선한 기운이 감돌아야 할 시기가 와도 폭염주의보를 알린다. 구월 꽃이 사월 꽃이 되기도 삼월 꽃이 시월 꽃이 되기도 한다. 코스모스가 가을꽃이라고, 백로에 이슬꽃이 피어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없다.
올 한가위에도 푹푹 찌는 더위가 이어졌다. 구월다운 것들이 시절을 잃고 오락가락 한다. 그런 가운데 달은 여전히 둥그렇게 떠서 동네를 밝혀주었다. 아직은, 우리의 바람을 잊지 않고 보내온 구월의 마음 같았다.
구월이 예전 같지 않게 구월답지 못한 건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걸까. 구월의 마음이 아니, 열두 달 열두 개 마음이 우리 곁을 영영 떠나버리기 전 우리는 어떻게, 그 마음을 붙잡아야 하는 것일까.
현경미 시인
2024. 9. 25.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