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을까. 뭘 입을까. 뭘 할까. 크고 작은 질문으로 하루를 채운다. '예, 아니오.' 정도로 답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질문과 답들이 대부분이다. 그마저도 내키지 않을 때는 습관처럼 먹고 입으며 시간을 보낸다.
역량 강화 전문교육 시간이었다. 경청과 질문이라는 과정에서 화두처럼 다가온 키워드는 다름 아닌 '질문'이었다. 미뤄둔 숙제를 한꺼번에 하려는 듯 질문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질문에 익숙하다. 학창 시절 내내 시험을 치러내지 않았던가. 단답형을 요구하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시절 그 질문들 속에서 우리를 성장했을 것이다.
질문 수업 우수사례를 접한 적이 있다. 질문 교육과 더불어 학생 질문을 중심으로 한 수업 적용에 초점을 둔 교육활동이었다. 질문이 교육에 미치는 긍정적인 성과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배울 수 있었다. 예전과는 달라진 수업 분위기였다. 그 중심에는 달라진 질문이 있었다.
요즘은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AI에게 묻는 분위기이다. 묻는 정도에 맞게 답을 해준다니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질문을 잘해야 좋은 답변을 얻어 낼 수 있기에 질문의 기술이 능력이 되는 시대가 되는가 싶다.
언제까지나 글을 쓰고 사람으로 살고 싶지만 종종 한계에 부딪히곤 한다. 더는 안 되겠어, 힘이 빠진 채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할 때가 있다. 생각해 보니 왜? 궁금해하지 않았고 어떻게? 질문하지 않았던 나 자신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매 순간은 아니더라도 어느 지점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한 번쯤 질문했더라면 어땠을까. 한 걸음이라도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갔을까.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다 보니, 좋은 질문이 좋은 삶으로 이끄는 힘이 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희망이 들기도 한다.
지나온 시간을 더듬거리고 있을 때, 돌연 유월이 내게 묻는다. 남은 나날들에게는 어떻게 질문할 것인지, 그 남은 나날이 단 하루뿐이라면 또 무엇을 할 것인지를.
2025. 6. 20. 07:00
현경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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