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 깃든 봄볕

by 현경미


[한밭춘추] 골목에 깃든 봄볕




봄이다 싶다가도 쌀쌀하고 어느새 또 덥다. 들쭉날쭉 변덕스러워도 봄은 봄이라 걷기에 더없이 좋다. 올해 삼월, 새로 발령을 받은 곳은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 한 정류장 거리에 있다. 출퇴근할 때면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는다.


어제는 저쪽, 오늘은 이쪽 갈래갈래 골목을 걸어보리라 맘먹는다. 낯선 동네 낯선 길은 얄궂은 불안도 일게 하지만 설렘이 더 큰 거 같다.


아파트가 즐비한 길 건너 동네는 옹기종기 주택들이 모여 있다. 골목골목 담과 담이 이어지고 지붕과 지붕들이 이어진다. 사이사이 골목들은 집과 집을, 집과 사람을 이어준다.


골목에 들어서면 어디랄 곳 없이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울고 웃으며 뛰어 놀았다. 골목길이 비좁을 만큼 덩치가 커져서야 골목을 떠날 수 있었다. 골목 구석구석에는 그때 그 시절 남겨진 것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곤 한다.


골목에는 냄새도 함께 살았다. 집집마다 밥이 익어가고 된장이 보글보글 끓었다. 담을 넘어온 구수한 냄새가 골목을 채우면 아이들은 놀이를 접고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잠시 상념에 빠져보지만 이내 빵빵, 좁은 골목을 지나는 승용차가 비켜서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어느 집 담장 위로 잎사귀도 열매도 예쁜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폰을 꺼내 든다. 마침 물을 주던 주인이 대문 사이로 나를 본 모양이다. 이른 아침에 남의 집 안을 이리 찍고 저리 찍는 게 별스럽기도 할 텐데. 들어와서 찍으라며 활짝, 대문을 연다.


갖가지 화초들이 봄볕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방금 찍은 게 무화과라며 익으면 먹으러 오라는 말을 덧붙인다. 길치인 내가 이 골목 이 집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싶지만 '그러겠노라' 인사하며 돌아 나온다.


골목을 빠져 나오고도 내내 따뜻하다. 아직 햇살이 비취기도 전 나를 데운 건, 낯선 이를 반겨 맞아준 주인아주머니의 훈훈한 마음씨일 테다. 골목에 깃든 봄볕 한 자락에 이끌려 자꾸만 나는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을 것만 같다.



2025. 5. 7. 07:00

현경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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