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않은 당연함

by 현경미

[한밭춘추] 당연하지 않은 당연함




푹푹 찌고 펄펄 끓어오르다가도 한풀 꺾이고 마는 절기, 입추에는 그랬다. 고추잠자리 떼 날고 점점 하늘이 높아지며 코스모스 한들한들 길모퉁이를 지키던 계절, 그런 가을이 있었다.


입추라고 해서 그때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줄 거라고 믿기에는 뭔가 수상쩍다. 개나리는 봄꽃, 코스모스는 가을꽃이라고 우기기에도 어딘가 미심쩍은 시대를 맞이하고 말았다.


때아닌 우박이 쏟아지는가 하면 느닷없게도 폭우나 폭염이 지속되기도 한다. 이런 나날이 이어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우리 곁에 있던 일상의 것들이 일순간 사라져 버리고 마는 건 아닌가 싶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절을 떠올리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지금 상영 중인 영화 '좀비딸'은 코로나19 발병 시절을 모티브로 삼은 듯 보인다. 예기치 못한 질병에 걸린 이들이 좀비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가족일지라도 신고해야 하며 발견되는 즉시 그 자리에서 사살되고 만다.


그 극한 상황에서도 좀비가 된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와 그 주변인들의 사랑이 찡하게 가슴을 울린다. 하지만 그보다 이 이야기가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으면 어쩌나, 얄궂은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상기온에 이상현상들이 급증하다보니 그런게 아닐까.


자고 나면 달라져 있을 만큼 시대는 빠르게 자라고 변한다. 눈을 맞추고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쑥쑥 커가는 신기술들이다. 유전공학, 나노기술, 인공지능 등 평범한 이로써는 가늠하기엔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분명, 우리에게 지금보다도 더 눈이 부신 편리를 가져다줄 테지만 너무 눈이 부신 나머지 보는 순간 까맣게 타버리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눈을 뜨니 창을 넘어온 실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간간이 풀벌레 소리 들리다 말다 그 사이로 새소리 들린다. 창가에 높게 서 있는 나뭇잎들이 가늘게 흔들린다. 당연하던 것이 당연함만은 아니라고 여겨지는 이 아침.


아직은 당연한 듯,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것이 아주 미미하고 사소하다 할지라도.



2025. 8. 13. 07:01

현경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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