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까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냐는 아화(장만옥)의 원망 어린 말에 소화(유덕화)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한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도 있지만, '내일' 없이 사는 건달인 소화는 자신의 처지를 되려 잘 알기에 마음을 접는 법이 몸에 배어 있었다.
아화와 재회한 기쁨도 잠시, 뒤에 따라오던 그녀의 의사인 젊은 남자의 모습에 시무룩해진 소화.
엇갈릴뻔했으나, 공중전화 부스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소화와 아화.
영화 "열혈남아 (旺角卡門, As Tears Go by)"의 주인공 소화는 내일-미래에 대한 기약 없이 오늘, 그리고 또 오늘만을 마주하며 혼란스러운 몽콕 거리를 살아가는 건달이다. 속해 있는 조직의 일을 처리하고, 부하이자 아끼는 아우인 창파(장학우)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오늘-현재에 머물러 있던 어느 날, 생면부지의 아화가 병원 진료를 위해 그의 집에 며칠 신세를 지며 소화의 삶에 작은 파문이 인다. 짧게나마 평온한 일상을 알려주고 고향 란타우 섬으로 돌아간 아화로 인해, 소화는 저도 모르게 작디작은 욕심을 품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내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무심한 듯한 말투로 병원은 다녀왔냐며 아화에게 말을 건네는 소화. 무미건조했던 집안에 아화가 들어옴으로 인해 밝아진다.
사실 '내일'이 없는 생활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순응한 듯한 소화이나, 가만히 보면 영화 전반에 걸쳐 '내일'에 대해 반복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말을 꺼내고 있었다.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소화를 탓하며 헤어지자는 여자친구에게, 소화는 결혼하고 싶고 돈이 필요하다면-즉 '내일'을 꿈꾼다면 자신을 떠나라며 이를 악물고 받아친다. 란타우 섬으로 아화를 찾아갔을 때도, "아무것도 약속해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아화에게 내비친다.
사고를 치고 토니(만자량) 일당에게 잡혀 있던 창파를 구해온 뒤, 엉망이 된 아우에게 소화는 또 뭐라고 했던가.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냐며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한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토니 일당에게 보복을 당하고 초주검이 된 몸을 끌고 겨우 란타우 섬으로 돌아와 아화에게 간호를 받을 때도,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처음으로 아화와 여행 가는 일-'내일(미래)'-에 대해 생각이 닿았음을 고백한다.
이렇듯 '내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던 소화였지만, 무의식적으로 '내일'에 대한 갈망을 항상 내비치고 있었다.
반복된 '오늘'의 굴레에 지친 소화는 문득 아화를 떠올리고, 그녀를 만나러 훌쩍 란타우 섬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맡긴다. 그렇게 아화와 재회하고, 그녀의 식당 일을 도우며 단란한 생활을 시작한 듯 보였다.
창가를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맞는 소화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득해 보인다.
이런 소화를 '내일'에서 한 발자국 남기고 '오늘'로 돌아오게 만든 건 천둥벌거숭이 아우 창파였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창파는 소화에게 있어 '오늘'같은 존재였고, 아화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내일'이었다. 아화 덕분에 처음으로 '내일'에 대해 자각하고 미래에 대해 꿈꾸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지만, 결국 '오늘'을 향해 달려가는 소화의 발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오늘 없이 내일은 없으며, 내일 없는 오늘 또한 의미를 상실한다. 그러나 독자적인 개체로서도 유의미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오늘만을 생각하는 삶에 대해 혹자는 내일을 염두에 두지 않는 미련함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이기에-오늘이어서만이 가지고 있는 찬란함이 있다.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본인에게 의미가 있다면, 누구도 깎아내릴 수 없는 귀중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것이 창파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수준과 처지가 어떠하든 '1분이라도 영웅이 되고 싶다'라는 간절한 바람이었으며, 소화에게 있어서는 아우 창파를 지극히 아끼는 마음이었다.
창파는 도대체 소화에게 어떤 존재이길래 언제나 '오늘'을 택하게 만들었을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처음 영화를 감상했을 때는 소화(유덕화)와 아화(장만옥)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영화로 느껴졌지만, 차근히 다시 영화를 보면서 눈길이 간 건 소화(유덕화)와 창파(장학우)의 삶, 그리고 그들의 관계였다.
같은 고향일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나, 창파와 소화 모두 외진 시골 출신이라며 줄곧 토니에게 무시당한다. 아무리 기세등등한 토니라도 잔뼈가 굵은 소화는 함부로 하지 못하나, 상대적으로 건달 일을 한 기간이 짧고 허약한 창파를 눈에 띄면 괴롭히기 일쑤이다. 사고를 치고 소화가 시켜 하는 수 없이 오뎅을 팔고 있는데 와서 깽판을 치고 소화가 곁에 없을 때마다 이죽거리며 창파의 속을 긁는다. 이런 도발에 항상 넘어간 창파가 정신 나간 짓을 감행하려 할 때마다 소화는 발 벗고 나서 아우를 말리고, 보호하려 한다.
따끔하게 질책도 하고, 훈수도 두지만 비정한 몽콕 거리에서 창파를 감싸주는 건 소화뿐이었다. 소화가 창파를 왜 그렇게 싸고 드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언젠가 그의 발목을 잡을 거라고 토니마저도 혀를 차며 충고를 하기까지 하니 오죽했을까.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창파를 어르고 달래는 소화. 한가득 핀잔을 주지만 창파를 보는 소화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 보인다.
이렇듯 겉으로 보기에는 창파가 소화에게 일방적으로 의지하고 매달려 있지만, 소화도 창파에게 심적으로 기댄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날이 서있던 소화가 표정을 푸는 건 아화를 제외하면 창파 앞에서뿐이었다. 게다가 집안 꼴을 보면 혈혈단신에 챙겨줄 피붙이 하나 없어 보이는 소화에게 사람 간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건 창파 정도지 않았을까.
창파가 조직에서 승승장구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꿀 때마다 소화에 얼굴에 스친 회한 서린 표정을 보면, 14살에 처음 사람을 죽여 돈을 받고 건달 생활에 닳고 닳은 자신의 전철을 밟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느껴진다.
건달이지만 오뎅파는 일부터 시작해 그래도 안전한 길을 걷게 하려던 소화에게 창파는 불만이 가득하다.
그런 소화의 마음을 창파는 헤아리지 못했다.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당장의 찬란함을 바라는 창파에게 소화의 말은 잔소리였고, 소화에게 받은 온정과 호의에 보답은커녕 번번이 뒤처리만 하게 만든 데에 대한 미안함과 자격지심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창파의 복잡한 감정은 토니의 습격으로 소화가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터져 나오고 만다. 소화의 체면을 구겼다며 이제 자신을 모르는 체하라고 울먹거리며 도망치듯 사라진 창파의 말에서 그의 복잡한 감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심경은 창파 동생의 연락을 받고 고향까지 쫓아온 소화에게 폭발하고 만다.
그래도 소화는 끝까지 창파를 놓지 않았고, 같은 말로를 맞이하고 만다. 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완연한 가족의 형태가 아닐까. 불안한 공기가 가득한 몽콕 거리에서 서로 의지하며 꿋꿋하게 살아온 두 사람은 이미 '가족'이 된 지 오래였다.
영화 "열혈남아 (旺角卡門, As Tears Go by)"는 '데뷔작' 특유의 거칢과 30여 년 전의 시대상, 수동적인 한계를 지닌 인물 아화 등 눈에 밟히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2019년을 살아가고 있는 이의 마음을 두드리는 울림이 느껴지는 건 '내일'-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주권반환 계획이 시작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혼란한 홍콩의 1980년대와, 급변하는 현재의 '내일'에 대한 불안함이 기인하는 원인은 다르나 일맥상통하는 감정을 느끼고 생각할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